장원의 농민은 크게 자유농과 농노로 구분할 수 있다. 자유민은 그가 소유한 토지를 자영하였고, 영주에 대하여 재판, 군역, 납세의 의무만 지었을 뿐, 일신상의 자유를 누렸다.비록 지주라 하더라도 자유농의 경지를 마음대로 몰수할 수는 없었으며, 자유민은 자기의 소작권을 자유로이 양도할수 있었다. 반면 중세 농민의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농노는 인신적으로 토지에 예속된 농민으로 영주의 승낙없이는 소속 장원을 떠날수가 없었다. 농노의 보유지 경작은 세습되었으나 원칙적으로 영주와의 계약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토지 보유 및 경작의 대가를 지불하였다.
고전 장원 시대의 농노의 부담은 오직 부역과 공납이 중심이었다. 농민들은 1주일에 3,4일간의 영주의 직영지에서 경작 노동에 종사하였고, 그밖에 도로나 교량의 건설, 기타 잡역에 종사하였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자신의 보유지에서 일을 하였다. 농민의 보유지는 물론 영주 의 장원에 소속된 것이어서 여기에서 생산되는 모두가 자기 것이 아니고, 일정량의 생산물을 공납으로 영주에게 바쳐야 했다. 따라서 농민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최저의 생활 물자를 얻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영주의 소유물이 되었다.
부역과 공납 이외에도 농노는 예속민으로서 신분적으로 부자유한 농노는 토지에 결박되어 이동의 자유가 없었다. 그는 장원의 영주직영지 경영에 필요한 노동력의 일부로서 장원의 영주가 바뀌면 장원과 더불어 새로운 영주에게 예속되었다.
농노는 부자유한 신분을 표시하는 인두세를 납부하였다. 그 액수는 많지 않았으며, 프랑스의 경우 4드니에(denier)였기 때문에 농노를 '4드니에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농노는 혼인의 자유도 제한되었다. 특히 다른 영주 소속의 농노의 딸과 결혼하는 경우 해당 영주에게 있어 그것은 자기 소유의 노동력의 감소를 뜻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이를 보상하는 의미에서 혼인세를 물었다. 농민보유지는 농노의 소유지가 아니라, 영주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하여 그에게 할당된 땅이었다. 따라서 농노는 보유지를 상속할 때, 상속세를 물었으며, 상속자가 없는 경우 토지는 영주에게로 돌아갔다. 기본적인 인두세는 그 액수가 정해져 있었으나, 경우에 따라 농노는 영주의 자의에 의하여 많은 액수의 인두세를 납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세 농민의 삶은 매우 비참하고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세는 철저한 위계질서의 사회로 농민들은 평등이란 개념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였다. 자신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영주에게 매여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중세 사회는 피라미드 형태의 신분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봉건사회의 인적 구성을 비유적으로 '기도하는 사람, 싸우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각각 성직자, 기사, 농민을 가르킨다. 사회 구조가 낳은 무거운 짐은 최하층인 농민의 몫이었다. 중세 농민을 가리켜 '반은 노예, 반은 농민'이라는 의미로 농노라 하였다.
- 중세 농노 보도의 하루 -
그날은 보도의 부역 날이었다. 그는 어린 자식 웨이드로 하여금 소를 몰게 하고, 이웃 사람들과 어울려 동네를 나섰다. 이들 모두는 영주의 밭에 일하러 나가려는 참이었다. 어떤 사람은 말이나 소를 끌고 오고, 어떤 사람은 보습과 낫, 또는 도끼, 괭이 등 연장만을 들고 모여 들었다. 관리인의 명령에 따라 직영지의 경지, 채초지, 또는 숲에서 일하기 위해 각각 무리를 지어 일터로 향했다. (중략) 보도의 처 에르만드류도 바빴다, 그 날은 닭을 바치는 날이었다. 살찐 영계와 달걀을 영주관에 바치고 나서, 영주관 하녀들의 방으로 찾아가, 소문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며 오전을 보냈다. (중략) 그러나 그녀는 텃밭과 포도밭을 돌보기 위해 급히 집으로 달려 올 수 밖에 없었다. 밭일이 끝낱 후에는 저녁을 짓고, 아이들을 위해 모포를 짜느라고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 아일린 파워 「중세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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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정표42 작성시간 05.10.07 '세계사 신문'책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올립니다.ㅡ투르 근교의 한 넓은 장원. 한 무리 농부들이 진종일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축 늘어진 어깨. 석양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더욱 가냘프다. 영주 직영지에서 일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이른바 노동지대다. "젠장, 내 농사는 언제 지으란말야!" 혈기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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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정표42 작성시간 05.10.07 한 지라르의 말에 모두 고개만 주억거린다. 말은 않지만 동의한다는 뜻? 이렇게 농민들의 불만이 팽배,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땅은 왕의 소유다. 이 땅을 왕은 영주에게 봉토로서 나누어주며 영주는 충성과 군사적 봉사를 약속한다. 영주는 직영지를 빼고 나머지 땅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준다. 농민들은 직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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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정표42 작성시간 05.10.07 서 일을 함으로써 대가를 지불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이 지긋한 쥬글레씨는 "내 땅에서 농사지으니 노예보다 나은 듯 싶지만 실상 내 목숨이 내 목숨이 아니다"면서 "딴 데로 도망하다 잡히면 그날이 제삿날이니, 반은 자유민이고 반은 노예인 농노신세"라며 한숨이다. "세금을 내고 남은 것도 농기구 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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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정표42 작성시간 05.10.07 값이니 뭐니 하며 다 빼앗아가니 살 맛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영주에 따라서는 농민들에 대한 재판권을 지닌 경우도 있고 심지어 농민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첫날밤을 영주에게 바쳐야 하는 곳도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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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혜영43 무역 작성시간 05.10.17 중세사 공부를 하다보면 여성의 생활과 인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라 화가나다못해 슬퍼집니다. 그런 암흑기를 살아간 모든여성들에 대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역시 피를 보아야 역사가 바뀔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게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시 슬픈여성의 운명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