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숲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이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자루 밝여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만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어마시기만 해도.
생각과 말로 기도하는 것은 못해도 온 몸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미 자신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려 깨닫고
감사하면서 조심스럽게 말로 풀어가면 됩니다.
첫술 밥에 배부르지 않다는 우리 할머니 늘 하시던 말씀은 이미 잘 아실 겁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느티울 작성시간 10.02.01 눈망울 속에 푸른 물이 들것 같은 전나무숲을 오래도록 보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시 전문을 가만가만 읊조려 보았습니다. 2월 초하루에 주신 기쁨지기님의 귀한 선물을 두손 들어 고맙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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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병녀 작성시간 10.02.01 기도~ 너무 쉽네요~!....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마구마구 떼쓰듯 부러짖어요~! -
작성자아침이슬 작성시간 10.02.02 사려니 숲길이 생각이 납니다...그 길을 걸으며 우리들은 계속 기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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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름이 작성시간 10.02.02 저두 요 예수님 ,,,,, ..그럼 삼각관계 ,,, 어떻게 빼앗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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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삼나무 작성시간 10.02.04 저두 사려니 숲길에서 기도하며 걷던 그 시간이 기억되네요.
꼭 사려니 숲길이 아니어도 지금 걷는 길(?)에서도 늘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