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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편지 82신]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21.06.02|조회수555 목록 댓글 1

[찬샘편지 82신]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고교시절 별명別名이 ‘모가지’였던 친구야.

아무리 국어에 조예가 없어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노천명의 시 ‘사슴’한 대목은 기억나겠지? 흐흐.

한 반 친구들의 별명을 서로서로 지어줬던 것이, 1974년 설악산 수학여행을 갔을 때였을 거야. 그때 내가 자네의 별명을 ‘목이 퉁겁다(두껍다)’고 조금은 상스러운 ‘모가지’로 지어준 것을 지금은 좀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자네가 애칭愛稱으로 여기고 화내지 않고 웃으니 고맙다.

그때 한 친구(전북 완주에서 친환경 에너지재생사업을 하는)가 내 별명을 ‘개밥’이라고 지어서 “그럼 너는 도토리냐”며 싫어했는데, 지금도 나만 보면 개밥이라고 하는 통에 나는 번번이 화를 내지만 말이야. 산을 잘 타‘타잔’이라고 지어준 친구는 45살에 심정지로 죽었고, ‘추장’이라 지어준 친구는 잘 사는지 소식을 전혀 모르고. 엊그제 ‘대인大人’이라 불리는 친구가 몇 년만에 전화를 해 서로 무심했음을 얘기했다네.

 

이 꼭두새벽에 자네가 왜 떠올랐느냐 하면, 어제 <백세신문>(대한노인회가 발간하는 주간신문)에 나의 졸문칼럼이 실렸는데, 언젠가 자네가 우리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네. 물론 싫어했던 친구들도 있었을 건데, 선생님하면 늘 떠오르고 고마운 선생님을 생각하며 ‘스승의 날’(5월 15일)에 쓴 단상斷想을 약간 다듬어 그 신문에 보냈다네. 아버지가 애독하는 신문이기에 보시다가 우연히 당신 자식의 칼럼을 보면 반가워할 것같기도 해서 투고를 한 것이지. 한번 읽어보고 옛 추억에 빙그레 웃으라는 뜻으로 졸문를 덧붙여 편지를 쓰네. 아래는 그 전문全文이고 사진은 백세신문 게재칼럼을 찍은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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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에게는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1936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86세이시다. 지리과목을 가르친 고3때 담임선생님. 지리부도 한 권만 덜렁덜렁 들고 와 지구촌 각나라의 각종 제원(諸元)을 줄줄줄 판서하시던 명석한 선생님. 말 듣지 않은 학생들에게 하는 유일한 체벌이 뿔잣대로 목덜미를 때리는 것이었다. 지금도 1년에 한두어 번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걸 온전히 나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전북의 한 명문고를 떨어지고 허랑하게 보낸 2년. 허랑하게 보냈다는 말을 예로 들자면 흔히 말하는 ‘성적’밖에 없을 것이다. 반에서 40∼50등을 했으니 ‘공부 취미’가 아예 없었다. 마음에 드는 선생님도, 공부하고 싶은 과목도 일체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교과서하고는 조금도 친하지 않았지만, 다른 책들은 손에서 떨어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자 ‘그래도 최소한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은근히 들었다. 일단 첫 시간에 만난 담임선생님이 역대 선생님들과 비교하자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허허실실의 표상같았다. 날마다 종례시간에 단체로 부르게 하던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다>로 시작하는 가수 백년설이 불렀다는 ‘나그네설움’은 또 무엇이던가. 선생님은 왜 이 유행가를 고3 제자들에게 1년간 종례때마다 부르게 했을까? 지금도 그것이 궁금하다. 다른 반 친구들이 노랫소리에 놀라 무슨 일인가 싶어 창으로 기웃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가끔 떠오르면 웃음이 난다.

 

그 선생님을 해마다 ‘스승의 날’만 돌아오면 모시고 싶었다. 마음 뿐이었지 45년 동안 다섯 손가락도 채 안된다. 지난해에는 철썩같이 약속했는데, 제주도 가족여행 중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 못오셨고, 올해는 코로나19 증상 기운이 있으니 의사가 집밖 출입을 삼가라 했다고 한다. 당신은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괜찮지만, 혹시라도 제자에게 감염 등 민폐를 끼치면 안된다하여 약속이 아쉽게 불발됐다. 선생님의 말씀이 재밌다. “또 약속을 못지키게 됐네. 용서하시게” “내가 호전되면 자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번 모시겠네” 어찌 용서, 은혜, 보답, 그런 단어를 쓰실 수 있는가? 참으로 가당치 않은 말들이다. 언젠가 졸저 한 권을 보내드리니 “옥서(玉書) 잘 받았네. 고맙네”라고 문자를 보내셨다. 우수마발(소오줌과 말똥)의 졸문을 옥서라니?

전주 한옥마을 근처 어느 음식점에서 10여명이 선생님을 모셨다. 그것도 벌써 10여년 전이다. 어둑해질 무렵, 골목길에서 부른 ‘나그네설움’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술 한잔에 취하신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만주일대에서 불렸다는 <장백산 줄기줄기…> 어쩌고 하는 ‘독립군가’를 부르셔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고교(전주 신흥고) 시절 전주에 오신 백범 김구 선생의 연설을 듣고 “어찌 동포끼리 남북으로 대립, 총을 겨눌 수 있냐”는 생각으로 군(軍) 입대를 거부하여 교사생활 내내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고도 했다. 그러니, 어찌 내가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선생님의 불민한 제자로, 명색이 ‘인문학 강사’를 5년째 하면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여러 번 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닌가. 금방 이렇게 멀쩡하다가도 5분 후 졸지에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사람이 여러 번 된다는 것도 사실은 순간(瞬間)이자 찰나(刹那)일 것이다. 어느 순간에, 어느 선배나 선생님을, 어느 책이나 그 속의 어느 내용을, 어느 사건이나 현상을 어떤 계기로 만난 후 자기 인생을 통틀어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바뀐 사례가 수없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오늘 제 강의 중 어느 대목에서 번개같은 영감(靈感)을 얻고 ‘회까닥’ 생각의 전환이나 행동의 실천이 잇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늘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일제강점기 이승훈 선생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아 훌륭한 교육자의 삶을 사셨다고 한다.

 

정말 그러하지 않은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게 인생(人生)인 것을. 우리는 그래서 죽을 때까지 늘 학생(學生)이어야 한다. 학생만큼 좋은 게 세상천지에 어디 있는가.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가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며 명명백백하게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엄벙한 학생들을 일깨워주는 선생님이 소중한 까닭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내년 스승의 날에는 댁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아니면 아니고 기면 긴 것'이 세상이어야 하는 것이거늘, 언제까지 미추(美醜)나 선악(善惡), 그리고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도 구별하지 못하는 뒤죽박죽 세상이어야 할까요? 아니, 그 전에 컨디션이 좋아지시면 점심 한번 꼭 사주셔야 합니다. 막걸리 한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언제나 강건하소서.

                        2021년 5월 16일

                                    불민한 제자 고향에서 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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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뒷줄 5번째, 나는 앞줄 3번째에 있군. 흐흐. 아, 옛날이여!

어떠신가? 옛날 생각이 나는가? 달포 전 만난 자네는 술 한잔 안걸치고도 붉으스레한 낯으로 친구들 비위 맞추주느라 바쁜 ‘착한 친구’야. 평생 일어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정년퇴직한 후 지금은 유치원 아이들 통학과 하교를 책임지는 ‘노란 버스’ 운전을 한다고? 손자뻘 ‘노란 병아리’들의 안전을 책임지며, 애들의 재잘거리는 말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했지. 그래, 그런 재취업이라면 약간의 보람도 있겠군.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제 창창한 세월 남아도는 시간에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아파트 경비를, 공사장의 야방(야간 지킴이)을, 시민단체의 이사장을, 초등학교 음악지도를 하는 등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바쁘게 사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 나도 고향에서 나름 열심히 사는 편이라네. 초보이지만 논농사-밭농사도 배우고.

 

그나저나 늘 온다온다 말만 하는 자네가 밉네. 조만간 함 다녀가시게. 하하. 내년 스승의 날엔 우리 선생님 같이 한번 모시며 얘기 나누세. 벌써 6월 2일. 대학 선배인 서유석의 <가는 세월>이 생각나는군. 내가 좋아하는 양희은과 어쩌고저쩌고 했다고 해서 너부데데한 사각형 얼굴의 그 선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건강히 잘 지내시게

 

6월 2일

고향 우거에서 오랜 친구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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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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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따르릉길 | 작성시간 21.06.02 모가지가 짧아서 슬픈 짐승이여!
    열심히 살아가는 순진 순박한 친구가 있어 좋다
    이렇게 예쁘게 친구를 곱게 포장하여 진열시켜주는 누에 똥구녕 친구가 있어 더 고맙고ㆍ
    덕분에 빤쓰.사리마다.깨방정.개밥.타잔. 오랜 친구들을 기억할수있는 추억이 깃든 미소를
    지을수있는 아침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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