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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뉴스 289/1103]‘가을고향의 맛과 멋’ 대봉을 따면서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20.11.03|조회수477 목록 댓글 2

[찬샘뉴스 289/1103]‘가을고향의 맛과 멋’ 대봉을 따면서

 

 

 

어머니가 자리보전을 한 후 5년도 넘게 묵정밭이 된 감나무밭이 있었다. 지난해 가을에 보니, 20여그루의 감나무(대봉)는 거름 한번, 농약 한번 맛보지 못한 채 늙을대로 늙어 ‘자식들’을 거의 낳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묵혀라”는 어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동네 청년과 똥배짱이 맞아 농약을 서너 번 하고, 은근히 기대를 했건만, 유난히 긴 장마와 태풍 또 해걸이 등의 이유로 많이 열리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왕년엔 한 그루에서 200개도 땄건만. 몽땅 해봐야 100여개나 달렸을까? 선물할 곳도 많은데, 오마이갓!이다.

 

어제 오후엔 두어 시간 친구와 함께 수확에 나섰다. 나의 표현으로는 ‘하늘에 젖가슴처럼(청천의 유방)' 달린 가을의 탐스런 열매를 딴 것이었다. 어느 해 어느 일간지에 실린 졸문의 칼럼이 생각났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23/2010112301999.html 보는 사람들은 목이 아파서 어떻게 따느냐고 하지만, 가을하늘 한 켠을 한 개씩 한 개씩 떼내는 마음이니 기분이 붕 뜰 수 밖에 없다. 주렁주렁 주홍색 감이 ‘주저리주저리’가 아니고 나무 통째로 달린 듯한 감나무들을 지금 이 계절 아니면 볼 수가 없다. 기차여행을 하시며 낯선 시골의 수채화 풍경을 감상해 보시라. 감따는 도구로 아기 머리통만한 대봉 하나씩을 안전하게 딴다보면 힘들 줄도 모른다.

 

그런 추억이 못내 아쉬워, 올 봄에 감나무 묘묙을 40주 사다 심었다. 영농자금이 40만원 들었다. 일본종자 ‘아오이’는 국산 대봉보다 당도는 좀 떨어지지만 1.5배쯤 크다고 한다. 3년만 되면 열린다니 아예 묵정밭을 감나무농장으로 만들 심산이었는데, 끝내 착근하지 못한 것이 10여주, 내년 봄 다시 심어야 할 모양이다. 주인의 '노오력'이 없으면 이것도 ‘말짱꽝’이라니, 무엇인들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게 농사인 것을.

 

아무튼, 수확은 형편없을망정, 오늘은 대여섯 군데에 보낼 대봉 상자작업을 해야 한다. 주먹만한 홍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는 ‘가을고향의 맛’을 맛보면 황홀한 게 틀림없다. 비록 나의 수고와 약간의 택배비가 들어가지만 ‘주는 마음’은 왜 이리 좋은 것일까? 게다가 ‘고맙다’는 치사까지 받으니 ‘받는 마음’보다 몇 배 더 좋다. 이래서 우리 부모는 평생 일곱 자식들에게 노놔주려고 농사를 지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줄 것이 없으니 자신이 없다. 뒷산 저수지에서 몇 달에 걸쳐 잡은 민물새우 ‘보시布施’는 친구들에게 좀 하긴 했지만.

 

늙어 비틀어졌지만 생명력이 지독하게 강한 게 감나무라고 한다. 속에 먹이 시커멓게 들어있는 먹감나무, 그것도 몇 백 년 된 먹감나무를 켜 방안에 식탁이나 다탁茶卓으로 애용하는 분을 알고 있다. 감나무 틈에 물이 들어가 먹이 든 것이라지만, 혹자는 해마다 열매를 맺어 세상에 내보내느라 속이 썩을대로 썩어 시커멓게 멍이 들어 그렇다는 먹감나무.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그 귀물貴物들을 볼 때마다 은근히 욕심이 나 눈길이 자주 갔다. 눈치가 빠른 분이 ‘내 맘 변하기 전에 얼른 차에 실으소’하여 가져온 우리집 사랑방의 다탁 그리고 그분 안방의 ‘가보家寶’중의 가보인 ‘부모의 마음’이라는 엄청 큰 먹감나무 작품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곤 한다. 제작기간이 5백년이나 걸렸다는 작품의 제목 ‘부모의 마음’도 기가 막히게 잘 붙였다. 부모의 마음이 저러했으리라 싶으니, 작품 앞에서 어찌 숙연해지고 경건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아아-. 그 집 안방에는 또 하나 엄청난, 귀티나는 보물이 언제든 놓여 있다. 화로가 그것인데, 화로 속 재가 5대째 내려온 것이라니 입이 쩌억 벌어진다. 내가 심은 감나무 묘목들도 백 년이, 2백년이 지나 저런 귀물이 될까? 나의 몇 대 후손이 그것을 귀하게 여길까? 오늘 아침, 대봉과 감나무 단상斷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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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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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따르릉길 | 작성시간 20.11.03 노계 박인로의 대표작인 「조홍시가(早紅柿歌)」를 언제부터인가 좋아한다.
    젊은 시절 술마시다 술안주로 삶은계란이 나왔기에 엄마 생각에 주머니에 넣고오다 넘어져
    곤죽창이 된 기억후 홍시감을 보면 엄마 생각이 절로나 조홍시를 흥얼거린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하나이다.

    울엄마 살아 계실때에 홍시감을
    무척 좋아하셨다.
    난 감을 대충 쪽 빨아먹고 마는데 울엄마는
    내가 먹고 난 감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 드셨다. 울마누라는 손주들이 흘린 음식을 못먹지만 내가 먹던 홍시도 긁어먹던 엄마 생각에 난 손주들이 흘린 음식을 잘도 줏어 먹는다.
    지난번에도 시조 이야기가 나왔지만 첫번째로 외운 시조가 조홍시가 이고 나훈아의 홍시라는 노래도 좋아한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오면 눈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오늘도 엄마 생각에 홍시를 흥얼거린다 .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난다ㆍ
  • 작성자우포 장준상 | 작성시간 20.11.03 우천과 따르릉님의 글을 읽노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덕분에 내 인상이 좋아졌남.

    읽는 나도 맘이 편하고 포근한데, 이글 작가샘들은 더욱더 깨달음이 크리라 생각되는구나.

    처녀 젖가슴보다 더욱 멋진 울엄니 젖가슴이 오늘따라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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