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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評

내부의 적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을 가질 때다.

작성자크림과빵|작성시간20.07.22|조회수44 목록 댓글 2


내부의 적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을 가질 때다.

 

 

'봉사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한 마을에 두 사람의 봉사가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동행을 하여 길을 가다가 이상한 울음소리가 나길래 옆에 있는 사람에 무슨 소리냐고 하니 코끼리하고 하여 코끼리가 어찌 생긴 동물인지 궁금했던 봉사들이 코끼리를 만져 보았는데 한 봉사는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았고 한 봉사는 코끼리의 코를 만져본 후 마을로 돌아와서는 코끼리 다리를 만져본 봉사는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기둥처럼 생겼다고 말을 하고, 한 봉사는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주름이 많은 둥글고 긴 막대 같은 모습이라고 하였다. 각각의 봉사로부터 코끼리의 형상에 대해서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대로만 믿게 되었다.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하는 무리와 주름지고 긴 막대 같다는 하는 무리로 나누어져 코끼리 논쟁을 벌였지만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였다. 

 

 

마을 사람 중에 어떤 이가 코끼리를 보게 되었는데 봉사들로부터 들었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코끼리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코끼리에 대해 설명을 하였지만 일부의 사람들만 코끼리에 대한 설명을 들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봉사들이 한 말과 너무나 다른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봉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눈뜬 놈은 본 것을 과장하고 속이려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믿을 수 없다’면서 욕설을 하면서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마을에는 코끼리 때문에 세 부류로 나누어져 시도 때도 없이 싸움질만 하다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모두가 떠나고 봉사 두 명만 남게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두 봉사는 코끼리 논쟁만 결국 죽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인간군상의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자조를 하기도 하지만 왠지 씁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젊었을 때는 수많은 봉사 같은 사람들이 내뱉는 말에 가끔은 관심을 두기도 하지만 거기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도 쏙 빠져서 코를 박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나서서 싸우기도 하고 장기판에 끼어들어 훈수를 두다가 욕바가지를 얻어먹고는 씩씩거리기도 한다. 혹자는 나이 60이 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이 70이면 내려놓을 것이 많아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서인지는 몰라도 60이 되어도 사람답게 살기 어렵고 70이 되어서도 가진 것이나 고집을 내려놓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 정도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오래전에 들었던 봉사들이 사는 마을 이야기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것은 두 사람의 봉사가 겪었던 경험이 사실이 아니지만 봉사로서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변화되고 이념적 갈등이 초고조에 이른 자금은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오늘의 이념의 아군이 내일은 다른 이념이 유사한 한편에서 총을 겨누는 것을 종종 보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사람은 나은 편이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듣보잡 인간이 ‘우리는 친구이고 같은 편이다’라고 외치면서 그럴싸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현혹된 사람이 생기면 그들과 함께 무차별 총질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몇몇의 그런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우리의 내부로 침입하여 우리의 사상과 이념을 파괴하려는 고도의 훈련된 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내부의 적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연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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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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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무릉도원 | 작성시간 20.07.22 에효...선명성이 환갑을 넘어 칠순 아니 팔순이 된듯 합니다.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회의감이 듭니다.
  • 작성자쿠람 | 작성시간 20.07.30 믿는다는 것 또 사랑한다는것이 문제가 되는게 아닌가 한다. "넌 그것을" 그러나 난 이것을"하며 다르게 " 허나 기준은 사회가 가르친 양심과 정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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