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隨想)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의 제자들과 반세기 만의 해후
정 용 원
해발 1,193m로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괴석이 많은 팔공산은 대구 · 경북을 지켜주는 국립공원이다. 그 명산의 품속 동화사 바로 아래에 공산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기도 도량인 갓바위 부처상도 가까이 있다.
1970년 당시엔 행정구역이 달성군 공산면 백안동이었는데 그 뒤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어 대구시 동구가 되었다. 그곳에 자리잡은 유서 깊은 공산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나는 53년 전, 공산초등학교에서 연구주임교사로 6학년 3반 담임을 맡았다. 수려한 경관 속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에서 비록 짧은 기간 동안 근무했다. 당시 첩첩산중 속 비포장도로였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학교가 그립다.
훌륭한 인물은 명당에서 많이 나온다는 걸 증명하듯 달성군 공산면 신용동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태어나 자랐고 공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노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덕장(德將)으로서 국토방위에 앞장섰고 대통령이 되어선 나라를 크게 발전시킨 분이다. 일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물태우라면서 그를 폄훼하기도 했다. 이념이 다른 분자들이 억지로 만든 조어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 대통령의 공과는 후세에 역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다.
노대통령은 생전에 ‘물태우’란 말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5년동안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나라를 번영 발전시켰다. 물이 없는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듯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팔공산 계곡의 청정 약수처럼 노태우 대통령은 순수하고 인정 넘쳤으며 나라를 순리와 덕성(德性)으로 다스렸기에 절대 필요한 생명수의 역할을 하신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6.29선언으로 군사정권을 종식하고 국민이 직접 선출한 문민정부 대통령이다. 경제 발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전시작전권 회수, 북방외교 개척, 88세계올림픽 개최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지도자였다. 특히 그는 군사정권의 그늘을 지우기 위해서 민주주의의 발판을 튼튼하게 마련했고 국위를 크게 선양한 분이다.
내가 30년전, 거제도 대우초등학교 교장 재임시에 노태우 대통령 내외분이 김우중 회장과 함께 학교를 방문했다. 노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약 40분 가량 학교를 안내하게 된 인연을 잊을 수 없다. 대통령은 내 손을 잡고 교육입국을 위해 헌신 노력해 달라며 격려를 해준 인정 넘치는 분이었다. 내가 공산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는 말씀을 말씀드렸더니 내외분이 무척 반가워하며 격려금 까지 쥐어주시던 추억이 내 기억뇌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는 1970년, 공산초등학교에 27세의 나이로 연구주임교사 보직과 6학년 3반 담임교사로 근무했었다. 팔공산, 명산대찰,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학교에서 6학년 3반 60명의 어린이들과 행복한 1년을 보낸 추억을 떠올려본다. 동화사 봄, 가을소풍, 엉금엉금 기어올라갔던 갓바위 등반, 교원 사택에 살면서 채소재배, 뒷산 상수리나무를 흔들어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먹던 일, 작은 양계장을 만들어 20여마리 닭을 기르던 일, 한여름 보름달밤 옥녀탕 계곡에서 우리 신혼부부가 목욕을 즐기던 일 등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중학교 입시가 폐지된 그 해, 시험지옥에서 해방된 제자들에게 운동장에서 오징어게임 등으로 마음껏 뛰놀게 하고 인성교육을 위한 정서, 예능, 도덕교육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그 때 공산초등학교는 18학급, 학생 1,000명이 넘는 큰 학교였다. 나는 연구주임 교사로, 윤계술 교장, 이복봉 교감과 전직원이 연구학교지정 공개발표 추진에 힘쓰는 한편 <공산 어린이>란 등사판 학교 신문을 창간하여 학교 소식, 동화사 관광 소개와 어린이들의 문예작품을 수차례 발표해 주었다.
사범학교 때부터 문학에 심취했던 나는 제자들에게 글짓기와 독서교육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인 결과 제법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발간하는 <소년동아>. <소년한국>, <(소년조선>과 소년잡지에 작품을 보내어 발표되면 연필 한 다스를 상품으로 받았고 각종 백일장, 문예작품 현상공모에 응모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
6.25 전란 후, 박정희 대통령이 세계 최빈국인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새마을 운동을 펼치던 때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강냉이 가루로 주먹 떡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면 꿀맛같이 먹어치우고는 한 덩어리 더 먹고 싶어 하던 그들의 마른버짐 얼굴 표정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23년 5월 28일, 개교 100주년을 맞아한 공산초등학교 제자들이 팔순을 맞이한 나를 초대하였다. ktx로 동대구역에 내리니 열차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선구군과 채종은군이 영접을 하고 고급 세단차에 태워서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 20여명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의 시간을 가졌다. 팔순인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제자도 예쁜 얼굴 그대로인 여제자들, 국가, 사회의 기둥으로 성공한 제자들과 뜨겁게 포옹하고 악수를 하였다.
일제 때 지은 목조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신축한 그림같이 아름다운 2층 건물을 둘러보고 그 옛날 교실 터와 교정을 둘러보면서 추억의 필름을 돌려보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교정에 후배들을 위해서 새긴 친필 휘호 기념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제자들에게 남아도는 교실 한 칸을 노태우대통령 기념관으로 만들어서 자랑스런 모교의 자긍심을 길이길이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식당으로 장소를 옮겼다. 제자들은 벽에다 ‘존경하는 선생님, 팔순 청춘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이소’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 아래서 칠십을 바라보는 초로의 제자들이 식당 바닥에 엎드려 팔순인 나에게 큰 절을 하고 꽃다발과 감사패를 안겨준 뒤 축하 떡케이크를 자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웠다.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고 오찬을 하면서 그들로부터 학창시절의 추억담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특히 자신의 글짓기 작품이 현상모집에 뽑하고 신문에 실려서 상을 받았던 기쁨을 잊을 수 없다는 제자들이 많았다.
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 때 좀 더 잘 가르치지 못한 걸 후회한다. 그냥 말로써 훈계해도 될 제자를 체벌한 것도 반성한다. 배고픈 제자들에게 유엔 원조물자 강냉이떡을 배부르게 나눠주지 못한 것도 가슴 아프다. 오늘 이렇게 훌륭하게 잘 살아온 여러분을 만나보니 고맙기 한량없으며 이제는 여러분이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춘 스승이 되어 靑出於藍 靑於藍이란 말을 실감한다.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인물로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여러분을 보니 교직을 선택한 보람이 한량없구나. 앞으로도 여러분은 늘 건강하고 세상사를 긍정과 사랑으로 실천할 줄 알고 작은 꿈이라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기 바란다”
격려의 말을 마친 뒤, 내가 지어서 펴낸 영역 동시집 <이렇게 살아가래요 Live on Like Them>을 선물로 나눠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노래방에서 한데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제자들은 사은의 정성을 모았다면서 예상치 않은 큰 선물과 여비를 쥐어주어서 부끄럽고 고마웠다.
대구 누님댁에서 1박후, 이튿날 아침, 동대구역 KTX기차 승차장에 갔더니 제자 둘이 배웅하러 나왔다. 기차 좌석까지 무거운 선물 보따리를 들어준뒤, 차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해준 박순철 김예지 두 사람의 모습이 지금껏 지워지지 않는다.
내 반의 모범생이었던 채종은 군은 공산초등 개교 100주년 총동창회 회장이라고 한다. 그는 대구에서 우수 기업인으로 성공하였고 이재희군은 전 공산초등학교운영위원장이며 박순철군은 6학년 1,2,3반 전체 동기회장이고 반장이었던 이선구군은 해군장교를 지낸 든든한 애국자로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그리고 서상복군은 사고로 입은 장애를 극복하고 대구 경북 연예인협회 회장으로 활동중이며 김영철 목사님, 그리고 IT, AI 현대 문명속에서 그룹 카카오톡을 즐기는 제자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제자들과 고향을 지키면서 직장에서 꿈과 보람을 이루며 세파를 헤쳐나가는 제자들을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이번 반세기 만의 모임에 참가한 이선구 채종은 이재희 등 22명의 제자들과 꿈같은 만남을 마치고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날 사정상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마음으로 달려온 김영철 권순윤 장내운 권용해 김수도 우순자 김덕순 등의 제자들도 보고싶은 심정을 달래었다. 특히 이재희군과 김금옥(예지)양이 이번 만남을 위해서 여러가지로 많은 수고를 했다니 미안하고 감사하다. 나는 지금 그들과 헤어져서 서울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것 같은 환상에 젖어있다. 팔공산 정기 받은 공산초등학교, 노태우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 개교 100주년에 이루어진 감동적인 해후였다. 세상 사람들에게 청정한 물과 산소를 공급하는 공산초등학교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이 늘 건강하고 보람된 삶을 누리기를 빌고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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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르뫼(선산) 박근칠 작성시간 23.09.14 53년전에 근무한 공산초등학교 제자들과의 만남의 소회를 자세히 기록한 정용원 시인님
교직에 근무한 보람을 맘껏 느끼게 되었던 2023년 5월 28일, 공산 개교 100주년 자리이었네요.
제자들의 이름 하나하나 생각하며 적은 걸 보니, 아직도 기억이 좋아 추억으로 오래 남겠네요.
팔순 나이에 제자를 만나니 글짓기 지도를 통해 제자들을 사랑한 젊은 교사 시절이 생각나서
감회가 새롭고, 교직생활을 잘 했다는 마음이 더욱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정용원 선생님, 강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