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복무를 마치고서...
삼년동안의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학교에 복학도 하고
그 사이에 집도 이사를 멀리하여 성당도 옮겨야 했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려니
여-영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이것을 눈치챈 신부님이 이곳에는 젊은이들이 많으니
잘 모아서 봉사단체를 해 보라고 지나가는 말로 하시더군요.
그래서 내가 전에 다니던 성당에서 활동했던 신심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미사끝나면 빈첸시오회에 가입하라고
젊은이들은 붙들고 설득을 하였죠.
첨에는 몹시 힘들었죠.
뭐하는 회 인가요 ?
이웃돕기 회입니다.
어떻게 요 ?
어려운 이웃을 지속적으로 방문관찰하고
필요한 것을 전달하며 도와드리는겁니다.
돈은 요 ?
우리가 합심해서 벌어야죠...
회원은 몇명인가요 ?
그게 지금은 저 하나 뿐인데... 이제 시작하려구요..
아...네...
한번 생각해 보죠...
그리고는 그 다음 주일에 다시 만나면
저...성가대에 들었슴니다. 바뻐서 시간이 안되네요... 등등
------------------------------------------------------------
2.) 빈첸시오 아 파울로 지회 창립
3개월동안 매일 7시 9시 11시 미사 끝날 때 마다
나오는 젊은이를 잡고 회원 모집을 했죠.
5명을 설득하여 드디어 회를 결성하고 명동성당에 있는 한국 본회에 가서
신고를 하여 뉴질랜드에 있는 세계 본회에 등록을 마쳤습니다.
창립회원은 저를 포함한 박 토마스, 이 아녜스, 김 엘리사벳, 박분도 이었구요
다시 열심히 회원배가운동을 하여 3개월 뒤에 12명이 되었죠.
이제 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데...
우선 겨울이므로 새벽 미사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판매하였구요
(시중에서 300원 할 때 , 우리는 100원 받았죠 원두커피를... 반응 좋았습니다.
반응 좋은것을 본 신부님이 아예 상설 다방을 개설하라고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교회와는 구조가 조금 다르죠. 성당은 일단 시작하면 수천명이거든요.
그러니 새로 부임한 신설 성당이라고 해도 신부님께는 미사끝나면 횡하니
가버리는 신자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장소가 없었죠.
성당지하실에 100평쯤 되는 다목적 회합실을 사용하라고 하시더군요.
근데 사방이 시멘트 벽으로 이루어진 정말 말 그대로 지하실에
다방을 하면 누가 거기 와서 차를 마시고 얘기 하겠어요.
마침 신부님이 연수피정기도를 3일 떠나신 다고 하네요.
그래서 손재주 좋은 박분도를 데리고 3일 동안 다방으로 개조하기로
했죠. 다른 회원들은 그걸 어케하냐고 모두 고개를 흔들며 찬성을 하지 않거나
신부님께 야단맞을거라고 하며 비협조적이었죠.
결국 저는 박분도와 둘이서 했죠.
우선 벽은 모두 수성 페인트로 예쁘게, 조금은 혼란스러운 분홍 하늘색 초록색등으로
피카소의 알쏭 달쏭한 그림을 그리며 바닥빼고 몽땅 칠해 버렸죠. 어린이집 분위기가
되었죠. 그 담에 한쪽에 다방의 주방을 베니어판으로 뚝딱 만들고 카운터도 하나
만들었죠. 문 꽉 닫고 , 3일 하루 20시간씩 작업해서 환기 잘 되게 팬까지 사다 달았죠.
드디어 주일날 새벽 미사 끝나고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들어 와서는 모두들 눈을 의심했죠.
신부님 표정... 누가 이렇게 했니 ~ ? 부드러운 목소리 톤 뒤에 분노를 읽을수 있었슴니다.
모두들 조용~~ 예 제가 했슴니다. 그래 ? 이따가 내 방으로 들리렴~~ .
네... 기어들어갈것 같은 목소리...
결국 그날 무지 무지 꾸중 듣고 모두 원상복구 시키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잠시 얼굴이 굳어지시더니...길게 한숨 쉬시며...그냥 놔둬라 !
헤헤... 왜냐면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다른 많은 연세드신 어른들께서
모두 제 칭찬을 엄청 했답니다.
그 청년, 정말 우리 성당에 보배여~~ !
저런 청년이 신부해야 되는데... 안 그랴 ?
하여간 대단한 청년이야 ...
난, 사위삼고 싶어, 우리 딸아이도 좋아하는거 같더구먼...
이상은 모두, 제 추측이지만, 뭐 이런.. 등등의 칭찬이 아니었을까요...? 하하하!!!
---------------------------------------------------------------------
3,) 빈첸시오회의 활동은...
일주일에 한 번. 커피장사는 생각외로 돈이 잘 벌렸구요
여름에는 콜라 사이다. 그리고 환타 같은 것을 컵에 얼음 반 채워서
주면 한병에 2잔씩 나오고요, 오백원 받으니 정말 수입이 짭짤했지요.
우리는 이돈을 모아서 가난해서 연탄 못사는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그리고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이웃들에게 연탄과 쌀과 약과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2인 1조로 짝을 지어 한주일에 2번 이상 정기방문을
하여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힘들어 하는가를 보고하여 적절한 지원을 물질적으로
하는것이 이회의 목적이었죠.
여기서 몇가지 잊지 못할 슬픈이야기도 있었슴니다.
고 조돈옥씨.
당시에, 그 분의 나이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아서 3십 칠팔 정도이었지만
오랜 투병으로 오륙십은 되어 보이는 분이었죠...
처음에 그 분의 이웃에게 소개 받기를 위장병이 심해서 그렇다고요...
회원들 모두...피골이 상접한 그 분을 담당하기 꺼려해서 제가 담당을 했죠.
의대 다니는 친구들과 아는 선배 의사들을 통해서 위장병에 가장 좋다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암포젤엠(파란병)을 구해서 드리기도 했구요...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 몰래 추석때 쓸려고 사다놓은 계란 3판중 1판을
그리고 냉동실에 넣어둔 갈비를 절반을 확 덜어서 몰래 그 분께 가져다 드리기도
했죠. 물론 쌀과 연탄도 사다가 드렸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친해진 어느 날, 저에게 고백하더군요
자기는 위장병이 아니라 결핵 말기이어서 시립 요양원에서도 받아 주지 않아
여기 혼자 있는거라고요... 눈물을 흘리며 말 하더군요... 그동안 미안했다고...
머리가 띵 하더군요... 결핵말기 환자가 약을 먹지 않으면 전염력은 대단하거든요
이미 저는 서부시립결핵요양소에서 봉사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잘 알고 있는 병이죠.
하지만 , 표정관리를 잘 해야죠. 애이 ... 형 ... 진작 말하지 그랬어 ... 내가 그병은
잘 알고 있구, 약도 기가 막히게 좋은 약 구해다가 줄께... 걱정마 , 뭘 그런거 가지고 !
큰소리 펑치고 나서 , 결핵요양소에서 봉사하다가 알게된 내과 선생님을 찾아갔죠.
그 분이 깜짝 놀라면서 여러가지 검사를 하시더니 , 아직 발병하지는 않았지만
감염된것이 틀림없으니, 저도 두달이상 결핵약을 먹는것이 좋겠다고 결론내리셨죠.
그후 저도 결핵약을 2달동안 먹으면서 조돈옥씨를 계속 방문하였죠.
병세는 점점 심해져서 결국 조돈옥씨를 제가 감당하기 어려워, 용문에 있는 천주교봉사자들이
돌보는 결핵환자가 모여 있는 곳에 조돈옥씨를 공기 맑은 곳에 살라고 데려다 주었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 회는 용문에 있는 환우의 집을 정기 지원하기로 하고
해마다 일정한 금액과 노력 봉사 를 시작하게 되었슴니다.
조 돈옥씨는 3개월시한부 라고 했으나 거기 가서 3년을 더 살다 우리곁을 떠났슴니다.
저는 그 때 너무나 무력한 제 자신을 엄청 원망했습니다.
당시, 저와 회원들은 봉사를 더 잘 하려면,
성직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모두들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신부가 되면 많은 후원자들이 쉽게 생기더라구요...
남자회원은 누구나 모두 신부가 되고 싶었구요,
여자회원은 모두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모두들 열심히 빈첸시오회를 하였습니다.
그 때는 너나 할것없이 지금과는 달리 정말 천사같은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
4.) 그 때의 그 젊은이들...
젊은 후배 회원들이 계속 들어와 번창하던 빈첸시오회.
처음 들어와서 수년동안 천사같은 생각만 가지고 20대를 보내던 젊은이들...
20대의 끝무렵에는 누구나 각각 제 갈 길을 가죠.
언제나 말이 없던 신부가 되려고 했던 요셉은 결국 카톨릭신학대학에 들어가
모든 과정을 잘 마치고 13년만에 신부님이 되었구요...
말괄랑이 오 아녜스와 허리까지 내려오던 검은 긴머리를 자랑하던 박 세실리아
그리고 말없이 힘들일을 도 맡아하던 허 아가다 자매는 수녀님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었고요....
남몰래 둘이서 사귀던 이젬마자매와 김 마태오 형제,
이 아녜스와 박 갈리스도 형제는 결혼을 하였구요...
신부가 되고 싶어하던 김말구와 박토마스는 계속 갈등 하더니
결국 뒤 늦게 늦 장가를 갔구요...
키크고 모델같이 예쁘고 눈 높은 이 이사벨라자매는 늦게 결혼하였으나 사람을
잘못 만나 결혼에 실패하여 갈라선 후 마음의 병을 얻어 죽음을 넘나드는
투병생활을 하며, 지금은 홀로 ... ㅠㅠ
강원도처녀 이 벨라젯다는 고졸검정고시 합격한 후 늦게 대학에 진학하더니
대학에서 좋은 신랑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4명이나 낳았다고 하네요...
빈첸시오회를 시작 할 때 부터 바람 잘 잡고 , 리더쉽있고, 잘 생기고 , 멋진 여학생들을
언제나 좌우로 서너명씩 데리고 다니며... 농담인듯 하며 잘난체를 잘 하는
그리고 빈첸시오회의 필요 경비를 항상 엄청 잘 벌어 들이던 김 펠릭스.
(작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글 읽으시는데 거부감 생깁니다.ㅋㅋ)
그가 눈이 높을 줄 알고 있었던 여자 회원들에게 엄청 실망을 주더니,
갑자기 선 봐서 늦장가를 가더군요. 정말 모든 많은 회원들이 실망 했죠...
아니 여자친구 많은 것 처럼 늘 여자 앞에서 초연하고, 가끔 미스코리아 여자친구라도
있는 것 처럼 오해하게 만들며... 으시대더니 ...
알고보니...정작, 결혼할 여자가 없어, 간신히 늙으신 부모 졸라서 급하기는 급했는지...
첫 선 보자 마자 바로 장가 갔죠...눈 높은척 까불더니...욕 먹어 싸죠... ㅋㅋ
하여간 그 때 그 젊은이들은 모두 아름다운 20대를 보낸 훌륭한 젊은이들임에
틀림없슴니다. 저도 포함되기를 바라며...
지금도 그 성당에 그 회가 아직도 존재하여 재작년에 30주년행사를 했다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국민은행 지점장하는 박토마스가 말해 주더군요...
형 !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냉담 그만하고 이제 주님곁으로 와요.!
알았어... 한 3년만 더 놀다가 ...
이렇게 말한지 어언 3년이 다 지나가는데...
하루 빨리... 그 젊었던 시절의 순수함을 되찾아 남은 여생이나마
잘 살아야 할텐데...
그런데...속세는 너무...달콤하네여....하하하 !!!
끝.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기경 작성시간 08.06.12 저도 댓글 달기가 ........(절대 실화 아님)? 더욱 실화같은 느낌이........
-
작성자gentleman 작성시간 08.06.12 어~~? 저두 헥갈려 이~ ㅋㅋㅋ 자알 읽었삼,,,,또 없나유 ^^
-
작성자처음과같이 작성시간 08.06.12 와아~! 긍게~ 빈첸시오회 창시자이자 초대 회장님이시라구라우...~ ㅋ 지금은 냉담자 아닌 냉담자? ㅎ 한 3년만 더..~~에구우~ 여기에 속 한들 어찌 그 맘이 그 맘일것이며...저기에 속 한들...어찌 그 맘이 또 그 맘일수 있으리오...~~ 늘~주시하는 눈빛을 거역할수 있다면...? 암튼 빈첸시오회 초대회장님 화이리잉~!
-
작성자배째리아 작성시간 08.06.12 실화같은 이야길 실화가 절대로 아니라고 하니 뭔 말이지 통~~~~ 실화아닌 실화같은 글에 댓글도 실화가 아닐수 밖에.... 이건 무씬 이야기??? ㅋㅋㅋㅋㅋㅋㅋㅋ
-
작성자해운대별 작성시간 08.06.13 나팔/'' 이 숙제는 좀 어려워,,, 누구한테 물어보든지 컨닝 하든지 해야지 숙제가 너무 길어 길오~!!!(켁~그러다 나 혼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