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금강역사는 본래 분황사 동쪽 건너편 구황동 절터에 있던 것인데, 1915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이 절터에는 아직 석탑 지붕돌, 주춧돌과 함께 네 구의 금강역사상이 남아있다. 또 이 절터에서 분황사 전탑과 같은 안산암으로 만든 벽돌모양의 석재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절터에도 분황사처럼 전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이 금강역사상도 분황사처럼 구황동 절터 전탑 1층 감실 입구 좌우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금강역사는 원래 인도 고유의 신이었는데, 불교성립 이후에는 부처님과 그의 말씀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그런데 왜 쌍으로 만들었을까? 금강역사를 자세히 보면, 왼쪽 금강역사는 입을 벌리고 있고, 오른쪽 금강역사는 입을 다물고 잇다. 입을 벌린 모습을 '아형(阿形)'이라 하고, 입을 다문 모습을 '훔형(吘形)'이라 한다. 범어로 '아'는 입을 벌렸을 때 나는 가장 첫 소리이고, '훔'은 입을 다무는 마지막 음성이라고 한다. 입을 벌리고 있는 금강역사와 입을 다문 금강역사를 함께 두는 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부처님과 그 말씀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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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시간 26.06.19 앞의 금강역사상과 정반대의 대칭적인 동세를 취하고 있다. 앞의 상이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을 내렸다면, 이상은 왼손을 가슴 높이로 치켜들고 오른손을 아래로 내린 자세를 취하고 있어, 탑의 문 좌우에 배치되었을 때 시각적인 대칭과 균형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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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시간 26.06.19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전성기의 육중하고 역동적인 근육질 체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상하로 길쭉한 7등신 이상의 신체 비례를 보이며, 가슴과 복부의 표현이 과장되지 않고 비교적 평면적이다. 이는 삼국시대 말기에서 통일신라 초기로 이행하는 시기의 고식(古式)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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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시간 26.06.19 네모난 돌판(판석)에 돋을새김한 부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석질의 특성과 오랜 세월의 영향으로 표면의 세부적인 근육 표현이나 눈코입의 윤곽이 많이 마모되어 부드러워졌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험악함보다는 소박하고 은은한 양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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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시간 26.06.19 하반신에 두른 군의(치마)의 주름이 U자형을 그리며 차분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머리 뒤편과 어깨 주위로 휘감아 도는 천의(天衣) 자락은 판석의 여백을 자연스럽게 채우며 수호신으로서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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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시간 26.06.19 두 상은 서로 마주 보며 문을 지키는 대칭적 구도로 제작되었으며, 통일신라 전성기의 격렬한 역동성보다는 수직적인 비례감과 정적인 위엄, 그리고 삼국시대의 고박한 정취가 남아있는 귀중한 과도기적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