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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Jean Claude Santerre라는 프랑스인이 인도차이나를 방문해서 자신이 체험한 바를 보고한 에세이이다. 원래 프랑스어로 쓰여진 이 글의 제목은 "Qui Gouverne le Cambodge?"이다. "KI-Media"가 영어로 번역해 2011년 3월 1일 공개한 것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해 공개한다. <베트남령 인도차이나 연방>(Vietnamese-Indochina Union)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연구주제에 관해,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보고문이다. |
캄보디아는 누가 지배하는가?
Who Rules Cambodia?
글 : Jean Claude Santerre
나는 저가 여행코스 개발을 위해 과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지역을 다시금 방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들 국가들에 대한 생각으로 들뜬 나는 작은 소지품만 챙긴 채 그날로 길을 떠났다.
나는 먼저 베트남의 할롱베이(Halong Bay, 下龍灣, 하롱베이)로 갔는데, 그곳에서 놀랍게도 보파(Bopha)와 재회했다. 그녀는 프놈펜에 거주하는 사랑스런 아가씨로, 보파는 그녀의 캄보디아 식 이름이다. 보파가 프랑스에서 유학할 당시, 그녀는 나의 여자친구였다. 그녀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 후, 가이드를 해달라는 내 제안을 그녀가 수락했다. 이후 그녀가 나의 통역을 담당했는데, 보파는 베트남어와 크메르어 모두 매우 유창하고, 프랑스어와 영어도 상당한 수준이다.
보파는 아름다움이 잠재된 곳들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이곳의 매력과 대단한 부드러움에 진심으로 매료됐다. 정해진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행업자의 고객들에게 제공하게 될 장소들과 루트를 따라 캄보디아에도 가야만 했다. 물론 나의 가이드인 보파와 항상 함께 했다.
베트남-캄보디아 국경을 통과하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물류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더 오지들도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 국경이 느슨하게 관리되는 국가는 보질 못했다. 캄보디아를 오가는 베트남인들도 많았고, 상품들도 끝없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엄청난 교통량에 놀라서 보파에게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을 오가게 하는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캄보디아는 우리(베트남인들)에게 파라다이스야"라고 답했다.
국경을 건넌 우리는 프놈펜으로 갔다. 그곳에서 보파의 가족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보파의 아버지는 원래 베트남 출신으로, 1982년에 캄보디아로 이주해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베트남 정부가 추진했던 캄보디아 내 정착 정책 담당자이기도 하다. 그는 캄보디아 내에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로부터 매달 5,000달러씩을 지급받는다.
보파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1989년에 베트남 군대가 철수한 이후로도 많은 베트남인들이 캄보디아에 잔류했다. 이러한 베트남인들은 훈센(Hun Sen) 정부에 등용됐거나 경제 붐을 타고 재계로 진출했다. 보파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형제 자매들도 모두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모두들 '왕립 프놈펜대학'(RUPP)을 졸업했다. 남동생 중 1명은 현재 프랑스에서 공부 중이다.
보파와 그녀의 부모님은 나를 위해 만찬을 준비해줬다. 나는 진심으로 감명을 받았다. 그들의 친절한 마음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음날부터 나는 프놈펜을 답사하는 내 일을 시작했다. 소수의 부유층 사람들이 최신형 4륜구동 승용차를 운전하는 모습과 대다수 사람들이 오두막집에 사는 모습에서,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어떤 날 밤, 보파가 나더러 밤거리 구경을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캄보디아 수도에서 가장 비싼 바들과 레스트랑에 구경을 갔다. 그곳에서 나는 젊은이들이 돈을 세지도 않은 채 지불하는 모습을 봤다. 돈이 마치 물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보파는 나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바로 프놈펜의 지배층 젊은이들이라고 알려주었다.
바를 나온 우리는 훈센(Hun Sen) 정권의 군 장성 중 1명이라는 께끔연(Ke Kim Yan) 장군 소유의 고급 빌라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보파가 나에게 말하기를, 께끔연 장군의 아들 1명이 금년(2011) 1월 말에 또다른 고위 장성의 딸과 결혼했다고 알려줬다. 사돈이 된 장성은 '1997년 7월 캄보디아 쿠테타' 당시 전차부대를 몰고가서 '왕당파' 군대를 궤멸시킨 인물이라고 했다.
보파에 따르면, '께끔연 장군의 아들 결혼식'에는 훈센 총리 자신을 비롯하여, 속안(Sok An) 부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 관리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캄보디아에서 엄청난 행운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 결혼식의 부케용 꽃 장식에만 20만 달러가 사용됐다고 하며, 50만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 의상도 착용했다고 한다.
신혼부부는 골프 코스가 딸린 아름다운 저택을 결혼선물로 받았다. 나는 그 대저택이 매우 안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도대체 그 엄청난 부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다. 캄보디아는 너무 가난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촌에서 초라한 오두막 생활을 하는데, 그런 집들은 강풍도 제대로 막아줄 것 같지 않았다. 프놈펜의 밤거리 구경은 나로 하여금 약간의 양심적 충격을 받게 만들었다.
그후 나는 보파에게 시엠립(Siem Reap)으로 안내해주지 않겠냐고 부탁했다. 시엠립으로 가는 도중에, 보파는 나에게 캄보디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매우 순조로울 것이라 말했다. 그녀는 캄보디아 지도층들이 어리석고, 미개하며, 무식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베트남인)는 그들을 정치적 전면에 내세우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권력과 돈을 탐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때때로 캄보디아 지도자들이 아프거나 하면 베트남 지도자들이 방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파는 나에게 부탁한 여행업자의 사업에 매우 흥미를 갖고 있었다. 내가 시엠립에 도착하자, 그녀는 나에게 몇몇 현지 호텔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녀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속에서, 나는 그들이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텔 관계자 한 사람이 나에게 자신의 호텔에서 1박 하도록 해주었다. 그날 밤 보파는 프놈펜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와 여행사업에 관해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나에게 라오스에 살고 있는 그녀 숙부의 연락처도 알려주었다.
다음날 나는 라오스 방문을 앞두고 시엠립 관광에 나섰다. 나는 몇몇 NGO 관계자들도 만났다. 그들은 내게 보파가 이야기해준 것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캄보디아 지도층들이 그런 국가적 중대사에 대처하는 방식의 숨겨진 비양심에 놀랐다. 그리하여 나는 여행길에서 만났던 가난하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증언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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