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딸이 장구형의 사랑과 이별을 읽고 아빠는 소설 쓰지 말란다. 불문과를 나와 평소에도 내 글에 불만이 있어 프랑스 작가들의 책 10여권을 사주며 읽으라고 했고 글쓰기 개론서 같은 책도 여러권 사주었는데 나는 아무런 진척도 없다. 나는 마치 프로 작가들을 경멸하듯 내 식으로 글을 쓴다. 퇴고를 하는 법도 없고 누구 말대로 거의 매일 똥 싸듯이 글을 쓴다. 잘 쓰려고 하거나 퇴고를 하면 마치 본심을 왜곡시키거나 분칠을 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니 필경 딸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웃음거리 일 것이다. 딸 말대로 시나 소설 같은 무슨 창작을 해보려는 시도는 포기하는게 좋을 것 같다. 개발새발 잡글이나 일기나 써야지.
산마을고 이사회 참석.
우리 시대 학생들과 청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고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본다. 입시 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는 산마을고. 입학할 때 학부모나 학생에게 산마을고는 입시 준비를 시키지 않으니 대학 입시 준비를 원하는 학생은 이 학교에 오지 말라고 수없이 강조한다. 이것만으로도 산마을고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만 나와도 인간다운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졸업생을 배출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 정도다. 우리 사회의 입시열풍은 우리 사회의 모순적 구조에서 생기는 것이다. 소위 5퍼센트 명문대 출신에게만 온갖 특혜가 주어지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대안교육도 대안적인 삶도 사상누각이며 심지어 무책임 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불평등의 심화, 입시지옥,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법적 제도적으로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은 없는가? 또 그저 대통령이 되려고 표를 얻으려는 달콤한 공약을 남발하고 대통령이 되면 조금 시늉만 내다가 현실이 어쩌고 예산 확보가 어쩌고 하며 유야무야할 것이다.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는 이 정의롭지 못한 나라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구조가 바뀌지 않더라도 우리 시대에 권력을 잡고 있는 판검사, 언론인, 공직자, 정치인, 재벌등이 최소한의 양심과 정의를 지킨다면 나라가 이렇게 개판은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찌 우리 시대의 특권층들은 하나 같이 양심도 없고 자기 이익만 밝히는지---
8일
가까운 이웃에게서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나를 친구로 알고 자기 고백을 한 것이다.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반항과 자유, 자기다움의 추구였다. 지금 그의 관심은 아직도 내 삶을 살지 못하고 삶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사람 노릇을 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바둑을 둘 때도 당구를 칠 때도 최선을 다한다. 그는 나더러 이길 생각이 전혀 없이 그냥 사람 접대하러 나오는 사람 같다며 재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아무 결심도 하는 일이 없고 그냥 하루하루 산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특별한 것도 없어 누구든 나를 차지하는게 임자다. 나는 누가 놀자면 놀고 산에 가자면 산에 가고 공부하자면 공부하고 영화를 보자면 영화를 보고 술을 먹자면 술을 마신다. 나는 왠만해서는 거절하는 법이 없이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살려고 한다. 나는 물처럼 아무런 형체도 없이 어디에나 스며든다. 나는 가끔 이것을 무슨 道라도 되는양 여긴다. 나의 이런 말이 과장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심도학사에서 평화의 씨앗 모임.
우리 여섯은 길선생님의 정의에 대한 새길교회 설교문을 읽고 토론했다. 유산과 같은 불평등 뿐만아니라 타고난 두뇌나 건강, 재능 가정환경등은 다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공공 재산이기 때문에 그걸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용해야지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존 롤즈의 정의론를 소개하며 정의를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은 정의의 하느님과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끝나고 봄봄에서 우리 일곱은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며 아까와는 전혀 달리 소위 나라를 걱정하는 거룩한 옷을 벗고 시장 사람들처럼 온갖 얘기를 했다. 나는 이제야 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박진화의 작은 도끼로 돼지 잡는 얘기, 몽골에 가서 양을 현장에서 잡아 뜨끈뜨끈한 간을 먹은 얘기, 누군가 개의 간이 최고로 맛있다는 얘기, 대학 다닐 때 엠티 가서 친구가 여학생을 더듬다 항의를 받자 내 손이 너무 정직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얘기, 좋아하는 여인이 있어 자주 가는 음식점이 있는데 갈 때마다 주인 남자가 집지키는 개처럼 지키고 있다는 얘기 등등. 이것이 보통 사람으로 돌아와 우리들이 술 먹고 희희낙락하며 하는 얘기다.
우리 다섯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쉬워 강화읍의 남문로 7번가 찻집에 와서 마치 신학생들처럼 신론에 대한 토론을 빡세게 했다. 신조차도 고정불변하지 않고 변한다는 과정신학, 전지전능한 절대군주와 같은 신은 죽었다는 신 죽음의 신학, 시천주, 양천주와 같은 동학사상등. 토론이 무르익자 언제 날 잡아 밤새도록 토론해 보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어떤 분이 그런 공리공론에는 관심없고 나는 오직 일상을 충실히 살고 싶다는 말로 오늘 토론은 싱겁게 종료됬다.
내 친구 둘은 그것도 아쉬워 맥주집으로 가고 나는 도망왔다.
오늘 오신 분 중에 어떤 분이 선물을 준비해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누구에게 선물 해본 적도 없이 받기만 잘한다. 이 빚을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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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비꽃 작성시간 17.02.10 소설쓰기는 눈치 보지 마시고 일단 그 남다른 에너지를 꺼내 놓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원단이 있어야 디자인도 하고 재단도 할테니까요.
저는 시공부 하러 다닐 때. 보자기만한 원단을 가지고 가서 손수건 쯤 만들어 올 줄 알았는데 걸레를 만들어 올 때가 많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홍성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02.10 제비꽃님. 선물도 격려도. 꾸준한 관심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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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제비꽃 작성시간 17.02.10 홍성환 남편과 제가 선생님의 역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심도학사와 이웃사촌에 선생님 활동이 이니면 맥이 빠질 거라고요.
옆구리 한 편을 허물어 사람 깃들 자리를 마련하느라 검열관(?)들에게 충고도 들으시는 거라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