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명, 「북찬가」(北竄歌)
— 어머니 그리워 부르는 노래
강화문학관의 초청 강연에 이정록 시인을 모셨을 때, “모든 말의 태반(胎盤)은 어머니다.”라는 시인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강연 후에 시인의 『어머니 학교』를 찾아보려 하였으나 아직껏 못하고 있다. 젊은 날에 읽었던 어떤 에세이의 말미에 “어머니! 어머니는 나의 첫사랑이었습니다.”라는 강렬한 한 문장이 세월이 흘러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그 글은 작자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말은 백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 작가의 개인적 감정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남자들의 첫사랑은 어머니이지 않을까?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하늘과 바다와도 같은 근원적인 그리움 같은 것일 게다.
<어버이 날>을 맞아 나도 혈구산에 묻혀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리워한들 어찌 하랴. 이승과 저승이 격절(隔絕)되어 있으므로 이 현상계(現象界)에서는 다시 어머니를 뵈올 수가 없다. 하릴없이 밤길을 서성이다가, 나는 ‘강화도 문학’의 전통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자모사’(慈母思) 한 편을 찾아 읽어보며 나의 불효를 대신하려고 한다. 그것은 강화학파 이광명(李匡明, 1701~1778)의 「북찬가」(北竄歌)라는 노래이다. 18세기의 한글 유배 가사(流配歌詞)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글이건만, 우리 강화에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언급이 마땅치가 않다. 60만 명 이상이 보는 수능시험의 지문(地文)으로 출제되기도 하는 작품이 정작 그 고향인 강화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서둘러 가사의 전문을 읽어보도록 하자.
앉은 곳에 해가 지고 누운 자리 밤을 새워
잠든 밧긔 한숨이오 한숨 끝에 눈물일세
밤밤마다 꿈에 뵈니 꿈을 둘너 상시(常時)과저
학발자안(鶴髮慈顔) 못 뵈거든 안족서신(雁足書信) 잦아질 때
기다린들 기별 올까 오노라면 달이 넘네
못 본 제는 기다리나 보게 되면 시원할까
노친(老親) 소식 나 모를 제 내 소식 노친 알까
천산만수(千山萬水) 막힌 길에 일반고사(一般苦思) 뉘 헤올고
묻노라 밝은 달아 양지(兩地)에 비추는가
따르고저 뜨는 구름 남천(南天)으로 닫는구나
흐르는 내가 되어 집 앞에 두르고저
나는 듯 새나 되어 창전(窓前)에 가 노닐고저
내 마음 헤아리려 하니 노친 정사(情思) 일러 무삼
여의(如意) 잃은 용(龍)이오 키 없는 배 아닌가
추풍의 낙엽같이 어드메 가 지박(止泊)할고
제택(第宅)도 파산하고 친속(親屬)은 분찬(分竄)하니
도로에 방황한들 할 곳이 전혀 업네
어느 때에 주무시며 무엇을 잡숫는고
일점의리(一點衣履) 살피더니 어느 자손 대신할고
나 아니면 뉘 뫼시며 자모(慈母) 밧긔 날 뉘 괼고
남의 업슨 모자 정리(母子情理) 수유상리(須臾相離) 못하더니
조물(造物)을 뮈이건가 이대도록 떼쳐 온고
「북찬가」에서 ‘찬(竄)’은 ‘숨다’ ‘달아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는 ‘북(北)쪽에 숨어(竄)서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인데, 고어(古語)나 문법 등 보다 상세한 해석은 수능 참고서나 컴퓨터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으므로 독자들이 조금만 수고를 하시면 되겠다. 그러나 가사 중에 ‘꿈에 뵈는’ ‘창전(窓前)’ ‘집 앞’ 등이 우리 화도면 사기리의 ‘李建昌 生家’ 주변(사진)이라는 것은, 오직 강화인들 만이 알고 있는 풍경이니 잠시 원본(原本)의 ‘아우라’(Aura)를 느껴보실 만도 하다. 가사는 글쓴이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 토로하는 방식이라 내용적으로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택(第宅)도 파산하고 친속(親屬)은 분찬(分竄)했다’는 구절은 당시의 한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이는 1755년(乙亥, 영조 31)의 ‘나주괘서(羅州掛書)의 변(變)’을 말하는 것으로 작자인 이광명과 이광사, 이광현 등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일가붙이들이 모두 함경도 갑산, 전라도 신지도, 경상도 기장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유배(流配)가 된 상황을 말한다. 이광명은 멀고 먼 유배지 함경도의 三水甲山에서 꿈에서나 보고, 달에게나 안부를 물으며 ‘학발자안(鶴髮慈顔, 백발의 자애로운 얼굴)’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광명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 나는 강화도에서 살다 가신 ‘女人의 역사’에서 이 분 이광명의 어머니만큼 특별한 여인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이 어머니는 ― 당시 대학자로 숭앙받았던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녀(송준길→송광식→송병원→딸)로서, 아버지 송병원(宋炳遠, 1651~1690)의 두 딸 중 언니는 안동 김씨네 김창집의 맏며느리가 되었고, 자신은 전주 이씨 덕천군파로 시집을 와서 이대성의 막내며느리가 되었던 여인이다. (김창집과 이대성이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바란다. 조만간 나는 이 두 집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백두산 天池에 떨어진 빗방울이 하나는 동쪽 두만강으로 또 하나는 서쪽 압록강으로 흘러갔듯이, 老論과 少論으로 갈려버린 송병원 딸 두 자매의 기구한 인생은 우리 강화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남편인 이진위(李眞偉, 1681~1710)가 요절하자 송부인(宋婦人)은 당시 10살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강화도로 내려와 정착하였다. 이 母子가 어떤 연유로 강화도 사곡(沙谷, 지금의 사기리)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시댁 어른(이경직, 이대성)들이 강화유수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니, 그때 미리 준비한 땅이 지금의 사기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송부인이 청상(靑裳)의 몸으로 남편을 장사지낸 바로 그 땅에서 오직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신 신산(辛酸)스런 세월들을 오늘의 우리들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송부인께서는 그 일 년 전인 1709년 여름부터 학곡(鶴谷, 지금의 하일리) 先山으로 들어와 계시던 하곡 정제두선생의 문하에 아들을 보내 하곡의 학문을 배우게 하시고, 이후 전내실기(專內實己 : 내면을 오롯하게 하고 자신에게 충실함)하는 이른바 ‘강화학’(江華學)의 학통이 대대로 가문의 가학(家學)으로 전승되게 하신 맨 처음의 여인이셨으니, 이광명의 어머니야말로 강화도 덕천군파의 입향조(入鄕祖)이자 또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태반’(胎盤)과도 같은 분이셨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광명의 공부와 연관해서 나는 ‘사기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가 송부인께서 직접 가져와 심은 나무였으며 그 가지를 꺾어 만든 탱자나무 회초리로 어린 아들의 학업을 독려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 고증(考證)의 여부를 떠나 그것은 참으로 귀(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나중에 광명은 스승의 손녀인 정후일의 딸과 결혼하여, 송부인은 영일 정씨 하곡가문과 사돈지간이 되었다. 광명의 아내 鄭부인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유배 후에 사촌 이광현의 아들 이충익을 養子로 들인다.) 광명이 「북찬가」를 지은 1755년 이후를 추정해 보건데, 당시 沙谷에는 송부인과 정부인의 고부(姑婦) 둘 만이 외롭게 덕천군파의 가문을 지키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수가 있다. 그러나 혹시 鄭부인이 시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면, (‘나 아니면 뉘 뫼시며 자모(慈母) 밧긔 날 뉘 괼고’의 구절을 보면서 짐작할 수 있다.) 오직 어머니 혼자서만 고향 집을 지키고 있을 터이니, 오매불망(寤寐不忘) 서로를 애타게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모자(母子)의 정리(情理)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이 그리움의 끝은 어떻게 되었나? 23년 후인 1778년 이광명은 끝내 어머니를 다시 뵙지 못하고 유배지 甲山에서 죽었다. 오호~, 애재(哀哉)라! 달과 구름, 내(川)와 새(鳥)가 되어서도 수유상리(須臾相離) 못하더니, 가엾은 어머니 그리워 광명은 어찌 눈을 감았을꼬?... 이광명에게 송부인은 그런 어머니였으므로, 나는 여기에서 위 「북찬가」 본문 이외의 다른 어떤 말로도 이 노래를 잘 설명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의 마음으로 「북찬가」의 텍스트를 읽고, 다시 또 읽어보기만 할 뿐이다.
(이진위과 宋부인의 합장묘/ 사기리 묘역의 맨 위쪽에 있다. 바로 아래에 이광명 부부 합장묘가 있다.)
<양해의 말씀>
오늘의 이야기를 여기에서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북찬가」를 여러 번 읽다가 홀연 한 생각이 떠올라 몇 말씀을 더 드리려고 한다. 그 생각은 이렇다. ― ‘문학 작품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아닐진데, 내가 지금 그 ‘뜻’(意)을 알려고 하지 않는가? 문학, 특히 시가(詩歌)란 사람들의 생로병사(生老病死) 과정 속의 희노애락(喜怒哀樂) 여러 감정(感情)을 언어로 표현한 장르이므로, 나는 ‘독서백편의자현’ 보다 ‘독서백편정자현’(讀書百遍‘情’自見, 작자의 ‘情’이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백 번을 읽는다) 하여, 광명의 ‘뜻’(意)이 아니라 그 ‘마음’(情)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작자의 ‘뜻’은 물론이고 작자의 ‘마음’에까지 들어가야 텍스트(text)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 사모곡(思母曲) 계열의 ‘정’(情)이라면 「북찬가」 이외에도 내 가슴 속에서 떠오르는 몇 편의 노래들이 있다.
그 이야기를 마저 하자.’
정인보, 「자모사」(慈母詞)
우리들은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을 말한다. 나는 위 이광명의 「북찬가」가 그 문학 부분의 첫머리 어디엔가에 놓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강화학파의 문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연구가 남아 있다고 본다. 사실 그동안의 연구는 주로 ‘양명학’(陽明學)과 ‘하곡학’(霞谷學)이라는 사상과 철학 부분에 집중되었다. 시문(詩文)으로 강화도의 문학 전통을 찾아보다가, 나는 강화학파의 마지막 대학자이며 시조 시인이기도 한 정인보(鄭寅普, 1893~1950) 선생의 연시조(聯時調) 「자모사」(慈母詞) 40편 중 몇 몇 수가 이광명의 「북찬가」 와 매우 유사한 정한(情恨)을 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행여 ‘나 혼자만의 심상(心象)이 아닐까?’ 하고 저어되기도 하지만, 나는 강화도의 문학에서 상기 <이광명의 歌詞>와 하기 <정인보의 時調>를 ‘어머니 그리워 부르는 노래’라는 한 계통으로 묶어 분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여기에 소개해 드린다. 여러분들의 감상과 의견은 어떠하실지 궁금하다.
생각도 어지럴사 뒤 먼저도 바 없고야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 나니 한숨이라
행여나 님 들으실까 나가 외워 봅니다 (9)
안방에 불 비치면 하마 님이 계시온 듯
닫힌 창 바삐 열고 몇 번이나 울었던고
산 속에 추위 이르니 님을 어이 하올고 (16)
뵈온 배 꿈이온가 꿈이 아니 생시런가
이 날이 한 꿈 되어 소스라쳐 깨우과저
긴 세월 가진 설움 맘껏 하소하리라 (25)
함민복 시인의 경우
세상에서 말하고 부르기를(世稱), ‘강화도 시인’이라고 하는 함민복 시인의 많은 글들 중에서, 「눈물은 왜 짠가」 등 어머니를 소재로 한 몇 편의 빛나고 아름다운 현대시(現代詩)들이 있다. 그의 시에서 태작(駄作)은 찾기 어려운 바이지만, 특별히 어머니를 말하는 부분에서 함시인의 상징과 은유는 더욱 깊은 정성이 담긴 품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함민복 시에서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을 ― ‘강화도 사모곡(思母曲)’의 전통인 ‘이광명과 정인보 시문(詩文)과 같은 맥락(context) 속에 들여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한낱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이런 구성(構成)을 할 자격이 있을런지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놀라움으로 「북찬가」를 만나 ‘묻노라 밝은 달아 양지(兩地)에 비추는가’의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 ‘아~, 이런 걸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는 느낌에 기억을 더듬어 찾아본 장면이 바로 ‘마음 마중 나오는 달 정거장/길이 있어/어머니도 혼자 살고 나도 혼자 산다’ 의 그 구절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 함민복의 메타포(metaphor)는 언제나, 새삼스럽게,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할 만큼 놀랍다. 아래에 그의 시 세 편을 옮긴다.
어머니
까치가 곁가지에 집을 짓지 않듯
어머니 마음 中心에 내가 있네
땅에 떨어진 삭정이 다시 끌어올려
상처로 가슴을 짓는
저 깊은 나무의 마음
저 깊은 풍장의 뜻
새끼들 울음소리 더 잘 들으려
얼기설기 지은 에미 가슴
환한 살구꽃 속 까치집 하나
서러운 봄날
저 달장아찌 누가 박아 놓았나
마음 마중 나오는 달정거장
길이 있어
어머니도 혼자 살고 나도 혼자 산다
혼자 사는 달
시린 바다
저 달장아찌 누가 박아 놓았나
가을 하늘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다네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도 없다네
지지리 못나게 살아온 세월로도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도 없다네
어머니 가슴 저리 깊고 푸르러
여기저기에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시대’를 말한다. 나는 ‘강화도의 文學’에서 “이광명, 정인보, 함민복이 있다.”고 말하는 「존재(存在)의 문학」 (Literature of Being)보다 “이광명-정인보-함민복을 ‘思母曲’으로 구성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생성(生成)의 문학」 (Literature of Becoming)이 미래의 ‘강화도 文化’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날의 누구인가, 보다 넓고 깊은 정치(精緻)한 비평이론으로 우리의 ‘강화도 문학’을 새로운 안목으로 재배치하여 주는 날을 기대한다. 전문가들 중 아직까지 이런 걸 말하는 이가 없으므로 ‘강화문학관’에서 일하는 立春大吉이 이런 말씀을 드렸다. 아~, 왠지 낯이 뜨거워지려 한다. 이웃사촌인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부디 해량(海諒)해 주시길 바란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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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입춘대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5.15 기대되십니까? 그럼 기.대.하시라!
(휴~, 걱정됩니다.) -
작성자서재린 작성시간 16.05.15 龍飛鳳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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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입춘대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5.17 燕山之陽雲如堆/ 연산 북쪽에 구름이 무더기로 쌓인 듯
龍飛鳳舞源源來/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듯 산세 멀리서 왔네
長城中斷居庸關/ 만리장성 중단된 곳이 거용관이요
春風秋月軒轅臺/ 봄바람 가을 달에 헌원대로다...
목은 이색의 한시 중 「연산가」(燕山歌)의 첫 구절입니다.
서재린님! 보잘 것 없는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미감 작성시간 16.05.17 잘 읽었습니다.
앞날의 누군가가 '강화도문학'을 보다 넓고 깊은 비평으로 자리매김해 주시길 바란다고 하셨는데,
이보다 어찌 더 잘 할 수 있으리오.
감탄할 따름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입춘대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5.17 「북찬가」가 수능시험에도 출제되고 모의고사에도 나오는 중요한 가사인데, 거기에 ‘강화도’가 없어서 소개한 글이지요. 정인보-함민복과 연결하는 것은 ― 정말로 또 다른 작업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변죽만 울렸을 뿐이랍니다. 이걸 다시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비평을 전공한 눈 밝은 전문가가 누구인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졸필에다 늘 과찬을 하는 미감님께 복(福) 있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