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디씨 철도갤러리에서 접한 상식을 뒤엎는 다음과 같은 주장입니다. 그 주장에 따르면 고속철도는 장거리 수요보다 통근 수요같은 단거리 수요가 더 중요하며 따라서 고속철도가 동네 택시처럼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수요가 있는 곳마다 정차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고속철도가 장거리 이동 수요에 대응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는 상식을 뒤엎는 주장인데, 그냥 흘려 들을 수만은 없는 것은 지금 경부고속철도의 상황이 그 주장에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경부고속본선의 설계 기준 최고 속도는 시속 350km이고 운행 최고 속도는 시속 305km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서울-부산 KTX 표정속도는 시속 160km 이하입니다. 심지어 표정 140밖에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고속철도 속도 저하의 주된 원인이 부실공사라는 주장대로 서울-부산 무정차 급행의 표정 속도도 시속 약 182km밖에 안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KTX 표정속도가 160 이하라는 사실은 고속철도가 느려지는 원인이 부실공사 외에도 동네 택시와 같은 잦은 정차란 사실을 알립니다. 이는 한국 고속철도가 일반 철도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며 장거리 승객의 희생으로 단거리 수요에 치중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 더 근본적으로 경부고속선은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소요 시간 단축을 포기한 선형으로 지어졌습니다. 오송 드리프트와 신경주 드리프트라고 알려진 부분이죠. 소요 시간 손해가 몇분 안 되고 신경주 드리프트 구간은 밀양의 연약지반을 피했다지만 결국 수요 확보를 위해서 철도 노선이 상당히 기형적이 된 건 사실이죠. 이 때문에 입은 시간 손실도 만만치 않습니다.
위에서 적었듯이 현재 KTX는 수요를 확보하기 위하여 속도를 상당히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그 주장은 현재 코레일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고속철도 운영정책은 바람직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 고속철도로 단거리 수요를 확보할 바에야 일반철도 노선을 더 많이 신설하여 더 많은 수요를 잡는 편이 좋지 않냐는 것입니다. 물론 코레일을 대변하는 주장에 따르면 일반철도로는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속철도 요금을 받아야 적자를 면할 수 있고 일반철도는 영업할수록 손해라는 것이죠.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이 고속철도를 일반철도처럼 운용하는 것일까요? 도리어 일반철도 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장거리 이동에 특화된 고속철도를 일반철도처럼 운용하면 장거리 승객은 소요 시간에서, 단거리 승객은 요금에서 둘다 손해를 보게 됩니다. 고속철도를 많이 투입하고 고속 일반 열차를 줄이는 것은 요금 인상을 위한 꼼수일 뿐이고 철도 경영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죠.
또한 이런 정책은 고속철도의 근본적인 존재 가치를 위협합니다. 경부선 용량의 포화를 여러 대체 노선 신설로 해결하지 않고 하나의 고속철도 신설로 해결하려 한 것은 근본적으로 장거리 이동 수요에 더 빠른 속도를 제공한다는 근거에서 정당화됩니다. 대체 노선들의 신설이 제공할 수 있는 철도 음영 지역에 대한 철도 서비스 제공을 포기하고 고속 이동을 택했는데 고속 이동을 포기하게 되면 남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과잉 투자와 특혜일 뿐입니다. 고속화 복선 전철로 서해선, 중부내륙선 등을 신설했을 때보다 더 빠르지도 않으면서 철도 서비스 지역은 확대 못하고 기존 경부선 경유 지역에만 철도 서비스를 약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경부고속선을 거액을 들여 지은 이유라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투자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속철도는 고속철도답게 장거리 승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상식으로 남을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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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railroa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5.03 EVER_LASTING 코레일이 공사라지만 실제로는 정부 산하 기관입니다. 코레일의 모든 경영은 국토부의 정책에 좌우됩니다. 국토부 정책이 장거리 통근 수요에 공급을 안하겠다고 결정하면 코레일은 따를 수밖에 없고, 그 수요는 공급 부족으로 어느 정도 억제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정책만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한다는 건 힘들지만 그걸 부채질하는 고속철도 운용을 국토부가 정책적으로 방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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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EVER_LASTING 작성시간 15.05.03 railroad 그럼 글을 코레일이 아닌 국토부를 겨냥해서 쓰셨어야지요. 그리고 유권자 절반에 수도권 의석수만 112개인 나라에서(앞으로 선거구 조정으로 더 늘겠죠) 그런식의 정치적, 정책적 공급억제를 통한 수요억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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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railroa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5.03 EVER_LASTING 코레일이 국토부 산하 조직인 것은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댓글 중에 언급되었지만 늘었다곤 해도 단거리 승객의 비율은 11.3%에 불과하고 중장거리 승객이 88.7%입니다. 이중 상당수가 수도권 거주자일 터이고 단거리 수요 위주 철도 운용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데 굳이 정치적으로 현 단거리 위주 고속철도 운영을 지지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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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etal Road 작성시간 15.04.29 현실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현재의 시설여건을 들어
고속철도 운행정책을 중단거리는 지양하고 장거리를 지향해서는 안되겠죠.
단기적으로는 현실여건에서 최적운행방법을 찾는게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요를 따라 운용정책과 시설이 변화해야 합니다.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도시규모가 증가하여 이용객이 많지만
부산이 대전보다 인구가 2배가 넘는다고 KTX 이용객이 2배가 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1인당 이용횟수를 보면 대전이 부산보다 훨씬 많죠.
천안이 광주에 비해 인구가 절반도 안되지만 KTX 이용객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수요를 고속철도라고해서 버려야 할 이유는 없는겁니다. -
작성자신평역 작성시간 15.05.03 부산-신경주 구간 가끔 이용하는 1인입니다. 노포동터미널이 2시간 걸리는 워낙 먼곳인지라... 노포동에서 경주텀까지 또 1시간.... 그냥 부산역에서 27분만에 신경주역으로 가는게 더 비싸더라도 덜 피곤하고 시간 아끼고 좋아서 탑니다. 부산역 이남의 중구,서구,사하구 일대.. 특히 사하구는 인구40만명의 부산 세번째로 인구 많은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부산역이 노포텀보다 훨씬 경쟁력있죠... 경주 뿐만아니라 포항,영덕,울진 방면 모두 노포텀에서만 가는데 어서 빨리 신경주역과 포항역이 연결되어 부산-경주-포항-영덕-울진 간에서 철도 타고 슝슝 갔으면 좋겠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