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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볼(COBOL, COmmon Business-Oriented Language, 사무 지향 보통 언어) 이야기

작성자管韻|작성시간19.05.02|조회수1,373 목록 댓글 3


코볼(COBOL, COmmon Business-Oriented Language, 사무 지향 보통 언어) 이야기

 

 

 

 

 

 



 

코볼(COBOL, COmmon Business-Oriented Language, 사무 지향 보통 언어)은 사무용으로 설계된, 영어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절차적, 명령형 언어이고, 2002년부터는 객체 지향 언어이다.

 

코볼은 주로 비즈니스, 금융, 회사/정부 관리 시스템에 주로 사용된다. 1997년 가트너 그룹은 총 200,000,000,000줄의 코볼이 현존하며 모든 비즈니스 프로그램의 80%를 실행한 것으로 예측하였다.

 

코볼은 지금도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레거시 응용 프로그램들에 사용되고 있으며 대용량 일괄 처리 및 트랜잭션 처리와 같은 작업에 쓰인다. 그러나 숙련된 코볼 프로그래머가 은퇴하고 인기가 시들어가면서 프로그램들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관돼 현대의 언어로 다시 작성되거나 소프트웨어 패키지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코볼 대부분의 프로그래밍은 순수하게 기존의 응용 프로그램들을 관리하는 데 있다.

 

코볼은 1959년에 CODASYL이 설계하였으며 부분적으로는, 코볼의 어머니로 불리는 그레이스 호퍼의 이전 프로그래밍 언어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다. 데이터 처리를 위해 이식 가능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려는 미국 국방부 노고의 일부이기도 하다. 임시방편으로 의도했던 미국 국방부가 발빠르게 컴퓨터 제조업체에게 그것을 제공하도록 강제한 결과 널리 채택되었다. 1968년 표준화되어 그 뒤로 4차례 개정되었다. 확장에는 구조적,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지원을 포함한다. 현재 표준은 ISO/IEC 1989:2014이다.

 

코볼은 영어와 비슷한 문법을 갖고 있으며, 자체 문서화 및 높은 가독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그러나 문법이 장황하고 300개가 넘는 예약어를 사용한다. y = x;처럼 현대의 간결한 문법과 달리, 코볼은 더욱 영어와 같은 문법을 갖고 있다. (이 경우 MOVE x TO y). 코볼 코드는 4개의 디비전(IDENTIFICATION, ENVIRONMENT, DATA, PROCEDURE)으로 나뉘며 이 안에 엄격한 계층적 섹션, 문단, 문장들을 포함한다. 대형 표준 라이브러리가 부족하며 이 표준은 43개의 문들과 87개의 함수, 그리고 하나의 클래스만을 규정한다.

 

학계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코볼이 만들어졌을 때 일반적으로 사무용 응용 프로그램들에 관심이 없었으며 설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코볼은 문법의 장황함, 설계 과정, 구조화 프로그래밍 지원 부족으로 비판을 받아왔으며 이음매가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코볼보다 먼저 개발된 포트란(FORTRAN)은 주로 과학기술 계산용인 반면 비슷한 시기에 탄생된 코볼은 대량 데이터 처리를 위한 업무처리 및 관리 분야용으로 자리잡게 된다. 코볼과 포트란은 프로그램밍 언어 역사에서 고급 기술언어의 원점이 되고 있다.

 

 

1950년대 말 컴퓨터 사용자와 제조업체는 프로그래밍의 비용이 치솟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1959년 조사에 따르면 데이터 처리 설치에서 프로그래밍의 평균 비용은 $800,000 (미국 달러)이고 새로운 하드웨어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변환하는데 드는 비용은 $600,000였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동일 조사에서 하나로 통일된 사무 지향 언어가 사용된다면 변환은 훨씬 저렴해지고 빨라질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레이스 호퍼. COBOL의 선구자격인 FLOW-MATIC의 발명가.

19594월 학계, 컴퓨터 사용자들, 제조업체들의 대표들이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통일된 사무 언어에 대한 정식 회의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영어와 같은 데이터 처리 언어 FLOW-MATIC을 개발한 그레이스 호퍼를 포함하여 Jean Sammet, Saul Gorn가 대표로 참석했다.

 

 

이 단체는 미국 국방부에 통일된 사무 언어를 만들기 위해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대표단은 미국 국방부의 데이터 시스템 연구 스태프 총괄을 맡던 찰스 A. 필립스에게 감명을 주었는데, 그는 이들이 미국 국방부의 문제들을 꼼꼼하게 이해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미국 국방부는 225대의 컴퓨터를 운영했고 추가로 175대를 주문하였으며 이 컴퓨터들 상에 프로그램을 구현하는데 $200,000,000를 지출하였다. 이식 가능한 프로그램들은 시간을 절약하고, 비용을 줄이며 현대화를 쉽게 할 수 있었다.

 

필립스는 이 회의를 지원하는데 동의하였고 대표단에게 의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부여하였다.

 

코볼 60

 

취리히 알골 58 회의가 있은지 정확히 한 해 뒤인 1959528, 29일에 펜타곤에서 회의가 열렸고 사무를 위한 공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드는 것을 논의하였다. 41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였고 당시 의장은 필립스였다. 미국 국방부는 각기 다른 컴퓨터에서 동일한 데이터 처리 프로그램들을 실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걱정하였다. 당시 유일한 주류 언어였던 포트란은 이러한 프로그램들 작성에 필요한 기능들이 부족했다.

 

대표들은 은행업, 보험 분야에서 공과금, 재고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동작할 수 있는 언어를 열정적으로 기술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언어는 동시대 기술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하여 대표자 전원이 동의하였다. 언어는 최대한 영어를 사용하여야 하고 변경이 가능해야 하며 기계와는 독립적이어야 하고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는 데 대하여 다수가 동의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운영 위원회와 중장기 위원회들이 설립되었다. 단기 위원회는 9월부터 3개월 동안 중간 언어를 위한 사양을 만들어냈으며 그 뒤 다른 위원회들에 의해 개선되었다. 그러나 공식 임무는 기존 프로그래밍 언어들의 장단점을 식별하는 것이었고 명백하게 이들에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라고 지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한은 단기 위원회에 의해 불신 속에 마감되었다. 베티 홀버튼(Betty Holberton)이라는 한 구성원은 3개월 기한을 둔 것이 역겨울 만큼 낙천주의적이라고 기술했으며 이 언어가 임시방편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었다.

 

운영 위원회는 64일 만나 협의회를 CODASYL(Committee on Data Systems Languages)라는 이름으로 정하고, 집행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동의하였다.

 

단기 위원회는 여섯 곳의 컴퓨터 제조업체와 세 군데의 정부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섯 곳의 제조업체들은 버로스(Burroughs), IBM, 미니애폴리스-하니웰 (하니웰 연구소), RCA, 스페리 랜드(Sperry Rand), 실베이니아 일렉트릭 프로덕츠였다. 세 군데의 정부 기관들은 미국 공군, 해군의 데이비드 테일러 모델 베이슨(David Taylor Model Basin), 국립표준국(현재의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이었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미국 국립표준국의 조지프 웨그스타인(Joseph Wegstein)이었다. 데이터 설명, (), 기존의 응용 프로그램, 사용자 경험을 조사하면서 작업이 개시되었다.

 

이 위원회는 주로 FLOW-MATIC, AIMACO, COMTRAN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들을 조사하였다. FLOW-MATIC 언어는 특히 영향력이 있었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내부에 구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밖의 이유로는 AMIACO가 단지 사소한 변경만으로 그것을 파생시켰기 때문이다. FLOW-MATIC의 발명가 그레이스 호퍼는 또한 그 위원회에 기술 고문 역할을 하였다. FLOW-MATIC이 코볼에 기여한 주된 사항으로는 긴 변수 이름, 명령어를 위한 영어 낱말, 데이터 기술 및 명령의 구분이다.

 

밥 베머가 발명한 IBMCOMTRAN 언어는 그레이스 호퍼의 동료들이 만든 단기 위원회에 의해 FLOW-MATIC의 경쟁 언어로 간주되었다. 기능들 중 일부는 코볼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IBM이 설계 과정을 지배한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1981년에 Jean Sammet은 그녀 자신을 포함해서 "강력한 반IBM 편견"이 일부 위원회 구성원들에게 있음을 언급했다. 한 사례로 COMTRAN 설명서의 저자이자 중기 위원회 구성원이었던 로이 골드핑거가 그의 언어를 지원하고 대수식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뒤 그레이스 호퍼는 단기 위원회에 메모를 보내면서 영어가 기반이 되는 언어를 만들겠다는 스페리 랜드의 노력을 재차 강조했다. 1980년에 그레이스 호퍼는 코볼 6095% FLOW-MATIC으로 되어 있으며 COMTRAN은 매우 적은 부분에서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하였다. 코볼에 포함된 COMTRAN의 기능들은 공식들, PICTURE , GO TO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개선된 IF , 더 강력한 파일 관리 시스템을 포함하였다.

 

이 위원회의 노고가 유용했는지에 대해서는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구성원들이 이 언어가 너무 많은 절충이 있었고 위원회의 설계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 반면, 다른 구성원들은 조사된 세 개의 언어들 보다 더 낫다고 느꼈다. 일부는 이 언어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이들은 너무 단순하다고 여겼다. 논란이 되는 기능들은 일부분이 데이터 처리 사용자들에게 쓸모 없거나 너무 고급적인 기능들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기능들에는 불 대수, 공식, 테이블 서브스크립트(subscripts, indices)가 포함되었다. 논란의 다른 관점으로는 키워드를 문맥에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문맥에 의존적인 키워드들은 거부되었지만 이러한 접근은 나중에 PL/I에 사용되었고, 부분적으로는 2002년부터 코볼에 사용되었다. 당시 일부 존재하였던 운영 체제와의 상호 작용과 기능(순수하게 수학적이었고 데이터 처리용은 아닌 것으로 간주)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었다.

 

이 사양들은 94일 집행 위원회에 제시되었으나, 기대에는 한참 못미쳤다. 조지프 웨그스타인은 "여기에 러프 스팟(rough spot)이 포함되어 있고 일부 추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나중에 밥 베머는 이들을 잡동사니로 기술하였다. 소위원회는 12월까지 그것을 개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9월 중순 회의에서 위원회는 새로운 언어의 이름을 논의하였다. 제안된 이름으로는 "BUSY" (비즈니스 시스템: Business System), "INFOSYL"(정보 시스템 언어: Information System Language), "COCOSYL"(공용 컴퓨터 시스템 언어: Common Computer Systems Language)를 포함하였다 코볼(COBOL)이라는 이름은 밥 베머가 제안하였다.

 

10월에 중기 위원회는 로이 넛이 만든 FACT 언어 사양의 사본을 받았다. 이 언어의 기능들은 위원회에 매우 큰 감명을 주었고, 그것으로 기본 코볼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사양에 대해 잘 진척시켜온 단기 위원회에게는 충격이었다.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었음에도 FACT는 이식성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제조업체나 사용자 합의를 통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증명할만한 구현체 또한 부족하였으므로, FLOW-MATIC 기반 코볼의 지지자들이 이 결의안을 뒤집을 수 있었다. RCA 대표 하워드 브롬버그(Howard Bromberg) 또한 FACT를 차단함으로써 코볼 구현체에 대한 RCA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지 않게 하였다.

 

 

'그러면 어떠한 이름을 새기고 싶으십니까?'

나는 '당신을 위해 여기에 쓰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그 이름을 COBOL이라고 썼다.

'그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글쎄요, 이것은 폴란드 이름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줄였고 불필요한 수많은 표기법을 없앴습니다.'

 

 

코볼 60 보고서 표지

196013일 집행 위원회는 이 사양을 승인하였고 정부 인쇄소에 전달되어 "COBOL 60"으로 인쇄되었다. 이 언어에 언급된 목적은 효율적이고 이식 가능한 프로그램들이 쉽게 작성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용자들이 적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새로운 시스템으로 이전할 수 있게 하고 미숙한 프로그래머들도 적절히 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CODASYL 집행 위원회는 사용자들과 업체들로부터의 질문에 답하고 사양을 확장하고 개선할 목적으로 나중에 코볼 유지보수 위원회를 창설하였다.

 

1960년 동안 코볼 컴파일러를 만들 예정인 제조업체의 수가 늘어났다. 9월까지 다섯 곳 이상의 제조업체가 CODASYL (벤딕스, 컨트롤 데이터 코퍼레이션, 제너럴 일렉트릭(GE), 내셔널 캐시 레지스터, 필코)에 참여하였고 대표되는 모든 제조업체들이 코볼 컴파일러를 발표하였다. GEIBM은 코볼을 자신들의 언어들인 GECOMCOMTRAN에 각각 통합하였다. 반면, 인터내셔널 컴퓨터스 앤드 태뷸레이터스(International Computers and Tabulators)는 그들의 언어인 CODEL을 코볼로 대체할 예정이었다.

 

그 와중에 RCA와 스페리 랜드는 코볼 컴파일러를 만드는 일을 하였다. 최초의 코볼 프로그램은 817RCA 501에서 수행되었다. 126, 7일에 동일한 코볼 프로그램(사소한 변경사항이 있긴 하지만)RCA 컴퓨터, Remington-Rand 유니박 컴퓨터에서 실행되어 이들의 호환성을 입증하였다.

 

오늘날 모든 코볼 참조 매뉴얼에는 다음과 같이 인쇄되어 있다:

 

 

코볼은 산업 표준이며 어떠한 컴퓨터나 회사 그룹의 재산도, 어느 단체나 단체 그룹의 소유도 아니다.

프로그래밍 시스템과 언어의 정확성과 기능에 관해 기여한 자나 CODASYL 코볼 위원회가 표현, 암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증도 없다. , 이와 연관된 어떠한 기여자나 위원회에 의해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다. 여기에 사용된, 저작권 보호를 받는 자료의 저자와 저작권자는 아래와 같다:

FLOW-MATIC (trademark of Unisys Corporation), Programming for the UNIVAC (R) I and II, Data Automation Systems, copyrighted 1958, 1959, by Unisys Corporation; IBM Commercial Translator Form No. F28-8013, copyrighted 1959 by IBM; FACT, DSI 27A5260-2760, copyrighted 1960 by Minneapolis-Honeywell.이들은 코볼 사양의 일부나 전체에 대해 이 자료의 이용을 허가함. 이러한 권한은 프로그래밍 설명서나 비슷한 출판물의 코볼 사양의 재생산 및 이용으로 확장됨.

 

 

코볼-61 ~ 코볼-65

 

 

코볼이 10년이 지나면 존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익명 - 19606

 

수많은 논리적 결함들이 코볼 60에 발견되었는데, GE의 찰스 캐츠는 이에 대해 모호하게 해석되지 않는다고 경고하였다. 마지못한 단기 위원회는 완전한 정리를 단행하였고 19633월 코볼의 문법이 알골의 것처럼 정의가 가능해졌으나 의미적인 모호성(semantic ambiguities)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고되었다.

 

초기 코볼 컴파일러들은 원시적이었고 속도가 느렸다. 1962년 미국 해군 평가는 분당 3-11개 문의 컴파일 속도를 지적했다. 1964년 중순에는 분당 11-1000개의 문으로까지 증가하였다. 메모리가 늘어나면서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고 컴파일 비용이 다양해졌다. 문 당 비용은 $0.23에서 $18.91 사이였다.

 

1962년 말에 IBM은 코볼이 그들의 주 개발 언어가 되고 COMTRAN의 개발은 중단할 것이라 선언하였다.

 

코볼 사양은 출판 이후로 5년 안에 3번 개정되었다. 코볼-601961년에 코볼-61으로 대체되었다. 그 뒤 코볼-61 확장 사양으로 1963년에 대체되어 정렬 및 보고서 작성 기능이 도입되었다. 추가된 기능들은 하니웰이 1959년 말 단기 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확인된 결함들을 수정하였다. 코볼 에디션 1965는 사양에 대해 더 명확히 하고 대용량 기억 장치의 파일들과 표를 다룰 수 있는 기능을 소개하였다.

 

코볼-68

 

버전 간 비호환성을 극복하기 위해 코볼을 표준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62년 말 ISO와 미국 스탠더드(현재의 ANSI)는 표준을 만드는 그룹들을 설립하였다. ANSI19688USA Standard COBOL X3.23을 만듦으로써 차기 버전들의 주춧돌이 되었다. 이 버전은 ANS(American National Standard) 코볼로 알려져 있으며 1972년에 ISO에 채택되었다.

 

코볼-74

 

1970년에 코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되었다.

 

ANSI 위원회와 독립적으로 CODASYL 프로그래밍 언어 위원회는 언어 개선에 착수했다. 이들은 1968, 1969, 1970, 1973년에 새로운 버전들을 기술하였고, 여기에 새로운 프로그램 간 통신, 디버깅, 파일 병합 기능, 개선된 문자열 관리, 라이브러리 포함 기능과 같은 변경 사항을 포함하였다. CODASYLANSI 위원회와 독립적이었으나, ANSICODASYL Journal of Development를 사용하여 구현을 보증하는데 충분히 대중적인 기능들을 식별하게 하였다. 프로그래밍 언어 위원회는 또한 ECMA와 일본 코볼 표준 위원회와도 연계하였다.

 

그러나 프로그래밍 언어 위원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부사장이었던 William Rinehuls는 코볼 커뮤니티의 2/3이 위원회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변경 사항 제안, 회의록과 같은 공용 문서를 만들 자금이 부족할 정도로 빈약했다.

 

1974ANSI(ANS) 코볼의 개정판을 출판하였으며, 여기에는 파일 조직, DELETE , 세그먼트 모듈과 같은 새로운 기능들이 포함되었다. NOTE , EXAMINE (INSPECT 문으로 대체), 구현자 정의 랜덤 액세스 모듈(새로운 순차 및 상대 입출력 모듈로 대체)과 같은 기능들이 제거되었다. 44개의 변경 사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새로운 표준과 호환되지 않은 기존의 문들을 나열하였다. 보고서 작성 기능은 혹평을 받아 코볼에서 물러났지만 표준이 출판되기 전에 복귀되었다. 나중에 ISO1978년에 갱신된 표준을 채택하였다.

 

코볼-85

 

19787, 코볼 74를 개정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제안된 표준(일반적으로 코볼-80으로 알려져 있음)은 이전 것과는 상당히 달랐으므로 비호환성 및 변환 비용에 대한 걱정을 야기하였다. 19811, 트래블러스 인슈런스(Travelers Insurance)의 수석 부사장 조지프 T 브로피(Joseph T. Brophy)는 표준 위원회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하였는데 그 까닭은 코볼-74와 상위 호환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로피는 그들의 40,000,000줄이나 되는 코드의 변환을 "비생산적"이고 "프로그램 자원 중 완전한 쓰레기"라고 기술하였다. 그 해의 나중에 DPMA(Data Processing Management Association)는 이것은 새로운 표준에 강하게 반하는 것이며,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높은 변환 비용과 기능 강화가 사용자에게 강제되었다고 언급하였다.

 

공식적인 최초 검토 기간 동안 위원회는 2,200개의 응답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1,700개가 부정적인 형태의 편지들이었다. 그 밖의 응답들은 코볼-80이 그들의 시스템에 설치할 수 있는지의 상세한 영향도 분석에 대한 것이었다. 변환 비용이 코드 한 줄에 적어도 50 센트가 들 것으로 예측되었다. 12개도 채 안 되는 응답에서는 제안된 표준을 선호한다는 의견이었다.

 

1983DPMA는 새로운 표준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고 대중이 걱정하는 사항들에 대한 위원회의 응답을 언급하였다. 같은 해에 미국 국립표준국의 연구에 따르면 제안된 표준은 문제점이 거의 없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 해 더 지나 코볼-80 컴파일러가 코볼-74 프로그램들의 변환에 일부 문제가 있었던 DEC VAX 사용자들에게 공개되었다. 새로운 EVAL‎UTE 문과 인라인 PERFORM이 단순해진 제어 흐름와 디버깅 덕분에 특히 잘 받아들여져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1985년 말에 ANSI는 개정된 표준을 출판하였다. 60개의 기능들이 변경되거나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고 다음과 같은 기능들이 포함되었다:

범위 종단자 (END-IF, END-PERFORM, END-READ )

내재된 프로그램(nested programs)

CONTINUE - no-operation

EVAL‎UTE - switch

INITIALIZE

인라인 PERFORM 루프 - 이전에 반복체는 별도의 프로시저에 정의하여야 했음

참조 수정 - 부분열(substring) 접근 허용

입출력 상태 코드

 

이 표준은 같은 해에 ISO에 채택되었다. 두 개의 개정안이 1989(내장 함수 도입)1993(기타 수정 사항 제공)에 공개되었다. ISO는 표준의 주 소유권과 개발을 최종적으로 취득하기 전에 1991년과 1994년에 각각 개정안들을 채택하였다.

 

코볼 2002 및 객체 지향 코볼

 

1990년대 초에 완전한 리비전의 차기 코볼에 객체 지향을 추가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객체 지향 기능들은 C++과 스몰토크로부터 가져왔다. 초기에는 1997년에 이 리비전이 완수될 것으로 예측했으며 ISO 위원회 초안(Committee Draft)1997년에 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이크로 포커스, 후지쯔, IBM을 포함한 일부 업체들은 완전한 리비전의 초안에 기반한 객체 지향 문법을 도입하였다. 마지막으로 승인된 ISO 표준은 2002년 말에 승인되어 출판되었다.

 

후지쯔/GT소프트웨어, 마이크로 포커스, 레인코드(RainCode)는 닷넷 프레임워크를 대상으로 한 객체 지향 코볼 컴파일러를 도입하였다.

 

기타 수많은 기능들이 있었으며, 이 가운데 다수가 CODASYL COBOL Journal of Development since 1978에 언급되었고 코볼-85에 포함될 기회는 놓치게 되었다. 이러한 다른 기능들은 다음을 포함한다.

 

 

코볼 2014

 

 

2003년과 2009년 사이에 3개의 기술 보고서가 생산되었으며, 코볼을 위한 오브젝트 완성(object finalization), XML 처리, 콜렉션 클래스를 기술하고 있다.

 

코볼 2002의 지원 수준은 매주 낮았다. , 이 표준을 온전히 지원하는 컴파일러가 전무했다. 마이크로 포커스는 그 이유를 새로운 기능에 대한 사용자 수요가 적고 컴파일러 적합성을 테스트하는데 쓰였던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테스트 제품군이 철폐되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표준화 과정 또한 속도가 느렸고 자원이 부족했다.

 

코볼 2014는 다음의 변경 사항을 포함한다.

이식 가능한 산술 결과물들은 IEEE 754 자료형으로 치환됨

주된 기능이 선택 사항이 됨. (: 객체 지향, VALIDATE 기능, 보고서 작성 기능, 화면 핸들링 기능)

메소드 오버로딩

동적 캐퍼시티 테이블 (코볼 2002 초안으로부터 제거된 기능)

 

 

레거시

 

코볼 프로그램들은 정부와 기업체에 고루 사용되며 z/OS, VME, 유닉스, 윈도우와 같은 다양한 운영 체제에서 구동된다. 1997년 가트너 그룹은 전 세계 비즈니스의 80%200,000,000,000줄 이상의 코드의 코볼을 실행하였고 한 해에 5,000,000,000줄 이상이 작성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20세기 말 무렵, 2000년 문제(Y2K) 해결을 위해 코볼 프로그래밍 노력이 상당 부분 집중되었으며 가끔은 10년 전에 시스템을 개발했던 동일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코볼 코드를 고치는데 필요한 일정 수준의 노력이 상당량의 비즈니스 지향 코볼에 전가되었는데, 사무 응용 프로그램들이 날짜를 사용하는 정도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 고정 길이 데이터 필드에도 영향을 주었다.

 

2006년과 2012년에 컴퓨터월드 조사에 따르면 조직 중 60%가 코볼을 (C++, 비주얼 베이직 닷넷보다 더) 사용하였으며 코볼은 자사 내부 소프트웨어 다수에 사용되었다. 관리자 중 36%가 코볼로부터 이관할 예정이라고 언급했으며, 25%는 값이 더 저렴해진다면 그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일부 기업체는 그들의 코볼 프로그램들을 유지보수하면서도 그들의 시스템을 값비싼 메인프레임에서 더 값싼 더 현대적인 시스템으로 이관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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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管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5.02 서울시립청소년직업전문학교에 정보처리를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워드프로세서 자격시험을 공부하더니 곧바로 정보처리 자격증 시험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286컴퓨터로 베이직, 코볼, 파스칼, 등을 공부했습니다. 검정시험에는 합격했으나 당시 널리 사용하던 프로그램으로 "C언어"가 대세였으며 전산프로그램도 유닉스 시스템을 사용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직업전문학교를 수료했으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직장에 대한 압박감으로 악몽을 꾸기도 했습니다.
  • 작성자管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5.02 조흥은행에 발령이 나서 전산실에서 근무했는데 은행 전산프로그램이 코볼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스트는 유니시스였는데 향후 200년동안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를 구축했지만 10년도 안가서 망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 작성자管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5.02 옛날에는 데이타통신을 어떻게 했나?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단말기(콘솔)-단말기가 여러대 모여서 데이타집선전송장치(CCL?)-모뎀-전화국(전송장비와 선로를 거침)-전산실 MDF(주분배장치)-모뎀-통신데이타 집선장치-정보데이타 집선장치-호스트로 연결이 됩니다. 중간에 데이타집선전송장치는 서로간에 동기를 확인함으로서 보안적인 기능을 합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있던 분야는 단말 모뎀에서 전산실 모뎀까지 안전하게 데이타가 전송되는 것입니다. 전산실 출입은 업무별로 제한이 있었습니다. 저는 1급 카드를 가지고 다녔는데 전산센타 모든 구역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마스타 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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