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있는 고려시대 왕릉은 모두 5기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의 능. 가릉
고려의 수도가 개경(개성)이다 보니 대부분의 왕릉은 개성 주변에 분포해 있지만, 강화도에도 2기의 고려 왕릉과 2기의 왕비릉이 있다
현재 남한에 있는 고려시대 왕릉은 모두 5기뿐으로 그 중 4기가 강화도에 있는 것이다.
강화도에 있는 왕릉으로는 석릉은 고려 21대 왕인 희종(재위긴간:1204~1211)의 릉이다.
희종은 최충헌의 횡포가 심해지자 그를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재위7년(1211)에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고종24년 8월 용유도에서 세상을 떠나 강화도에 안장되었다
희종의 뒤를 이은 분이 강종(재위기간:1211~1213)이고 강종의 아들이 고종이다.
홍릉은 고려 제23대 고종(1192~1259)의 능이다. 고종이 즉위할 당시에는 최충헌이 세력을 잡고 있었는데 고종6년(1219)에 그가 죽자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정권을 잡아 왕은 제 구실을 못했다. 고종 때는 거란족이 쳐들어와 겨우 위기를 넘겼는데 또다시 고종18년(1231) 몽고족이 쳐들어오자 다음 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몽고족에 대항하였다.
고종23년부터 38년 사이에는 8만대장경을 조판하여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남겼다. 고종 46년(1259) 몽고와 강화를 맺으려 태자를 몽고에 보낸 후 그 해 승하하여 개경으로 옮기지 못하고 강화에 묻히게 되었다. 69세까지 살았고 46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재위하였다
가릉은 고려 고종의 아들 원종(재위기간: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능이다. 가릉에서는 고려 왕릉의 석곽구조를 볼 수 있는데 내부는 벽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직접 내부를 들어가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곽 앞쪽에 유리로 덧대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만 있도록 되어있다.
곤릉(사적371호)은 고려 강종(재위기간:1211~1213)의 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이다. 원덕태후는 고종의 어머니로 강종1년에 왕비가 되었다
고려 왕릉은 대체로 통일신라 능묘의 전통을 계승해 산기슭에 3~4층 단을 쌓고 맨 윗단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른 봉분을 쌓고 아래로 석등, 문·무인석, 제향각 등을 배치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인 도굴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한국전쟁 때도 막대한 석물들이 파괴·분실돼 대다수는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북한 쪽은 이후 주요 왕릉들을 보존급 유적으로 지정했으나, 야산 곳곳을 남벌하고 농지를 개간하면서 능역이 크게 축소됐다. 혜종·성종릉의 경우 병풍석과 석축이 파묻혔고, 경종릉은 장명등·석상·망주석이 사라졌다. 신종릉은 잘못된 복원으로 깨진 난간석이 굴러다니고, 민묘처럼 왜소한 몰골로 변해 있다.
현지 산에는 나무가 없어 큰비가 오면 무덤 흙이 계속 쓸려내려갈 수밖에 없는 만큼 종합 방재대책이 필수적인 상태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지난 2004년 9월부터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의 가릉과 곤릉을 발굴 조사한 결과 최상급의 고려청자를 비롯한 유물들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곤릉에서는 발이 셋 달린 향로와 꽃 모양(화형) 접시, 당초문(唐草文)을 역상감(逆象嵌)한 병뚜껑 등 많은 청자와 기와·전돌이 출토됐다. 또 가릉에서는 새 모양 옥(玉) 장식품, 중국 송(宋)시대의 원풍통보(元豊通寶) 등 19종 77점의 동전 등이 출토됐다.
○ 곤릉에서 출토된 발 셋 달린 향로
○ 가릉에서 나온 새 모양 옥 장식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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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4.30 우리나라 고려청자는 대부분 왕이나 왕세자 또는 왕족, 귀족의 능, 원, 묘에서 도굴한 것들입니다. 제가 어느 박물관에 가도 몇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표기할 뿐 어디서 나왔는지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간혹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라도 어디 과수원에서 국보급 사람모양병이 출토됐다고 설명하는 것과 고려 의종 13년(1159)에 죽은 문공유 묘 출토 역상감당초문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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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4.30 우리나라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동기창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명나라 사람으로 진계유와 절친한 인물이지만 하는 짓이 개같은 놈이라서 결국 도망다니고 패가망신한 인물인데 북종화, 남종화를 연구하면서 북종화의 대가 동기창의 재능을 침이 마르게 떠드는 사람이 있어 누구라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문인화(북종화)에서 보이는 각종 준법을 열거하고 있는데 웃기지도 않는 설명에 기가 찰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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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4.30 남종화와 북종화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프로와 아마추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남종화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들을 말하며 북종화는 문사철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북종화가 더 훌륭하다고 억지주장을 하는지...... 이런걸 연구하는 사람이 주로 인문학 하는 사람인데 자기 밥그릇이 더 크다는 그림쟁이 보다는 그 뜻이 더 크다는 관념에서 깨어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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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지환 작성시간 16.05.01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