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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단(羽緞, velvet)

작성자관운|작성시간17.11.18|조회수1,184 목록 댓글 1


우단(羽緞, velvet)

 

 

 

 

 

 

 



 

 

우단(羽緞, 영어: velvet 벨벳, 포르투갈어: veludo 비로드)은 거죽에 고운 털이 돋도록 짠 비단으로 촉감이 부드럽고 화려하다. 비단·레이온·나일론·폴리에스테르·아세테이트로 만들거나 또는 이 섬유들을 혼방해서 만든다.

 

 

한자로는 우단(羽緞)이라고 쓰며 깃털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나도록 직조한 비단이다.

 

감촉이 좋고, 아름다운 광택으로 널리 사랑받는 옷감이지만 가는 섬유털이 촘촘히 박힌 구조로 인해 먼지 먹는 하마로 악명이 높고, 습기에 취약하며 자국이 잘 남기 때문에 관리하기 어렵다.

 

 

아세테이트 원사가 아닌 폴리 원사를 이용한 폴리 벨벳이 있는데, 이는 위의 단점에서 해방되었지만, 가격이 역시 비싸다.

 

 

가을/겨울, 벨벳의 등장이 눈부시다. 예복용 앙상블 의상에나 쓰이던 벨벳이 올해 거리 패션을 수놓는 매혹적인 소재로 떴다.

 

 

꾸깃꾸깃한 느낌의 벨벳을 이용, 트렌치코트, 와이드 팬츠, 슬립 원피스, 남성적인 느낌의 재킷에 이르기까지 캐주얼 단품들이 거리를 수놓았다.

 

벨벳은 20세기 후반 현대 패션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며 대중적 매력을 잃고 패션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1997년 이후 낭만적인 느낌과 복고풍이 유행하게 되면서 트렌드 속으로 들어온다. 벨벳은 정확하게 말하면 직조한 직물의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 면이나 울 같은 섬유가 아니다. 직조한 직물의 표면을 구성하는 실의 고리들이 볼록하게 돌기를 이룬 탓에, 표면에 쏟아지는 빛의 방향에 따라 부드러운 광택 효과를 낸다. 이러한 특성이 벨벳을 우아함의 표상으로, 20세기 중반까지도 부와 사치를 상징하는 패션의 소재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짧게 깎은 모피를 손가락으로 만질 때 느껴지는 성적이고 관능적인 질감을 유발하기 위해 벨벳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큰 힘을 얻고 있다.

 

벨벳을 처음으로 발명한 나라는 어디일까? 중국, 이집트, 이라크가 서로 원조라며 우기고 있다.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나라 당시 견을 직조해서 만든 벨벳 조각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연대순으로는 가장 앞선다. 벨벳 직조기술은 워낙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들어서 고대부터 궁극의 럭셔리라 불렸다. 당연히 왕족과 최상위층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유럽인들은 아름다운 동방의 직물을 보자마자, 곧바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에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벨벳 산업을 일으킨 국가였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은 12세기 18세기까지 벨벳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서 엄청난 부를 얻었다. 이탈리아의 벨벳은 실크에 금사와 은사를 섞어서 짠 것들로 교회가 주요 고객이었다. 부유층들은 벨벳을 가구와 의복, 벽지에 사용했다. 나아가 가문의 위신을 표현하는 문장을 수놓는데도 사용한다.

 

벨벳 장인들의 수입은 일반 직조공의 40배가 넘었다. 그만큼 벨벳 장인이 되는 길도 험난했다. 훈련 기간만 4년에서 최대 8년이며 장인이 되기 위해서 다양한 시험도 통과해야 했다. 품질 관리의 수준도 엄격해서 밀라노의 견사길드는 66단위로 직조된 벨벳을 검사하여 승인 도장을 찍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벨벳(Velvet)은 속어로 도박으로 딴 돈 혹은 예상한 것 이상의 수익을 의미한다. 사람이 벨벳으로 만든 장갑(velvet glove)을 끼었다고 할 때는 외유내강형의 성품을 가졌다는 뜻으로 확장된다. 영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한 블루 벨벳(blue velvet)’은 영어권에서는 속어로 마약을 뜻한다. 영화 전면에 흐르는 몽환적인 느낌은 제목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외에도 많다. 부드러운 미성을 가진 재즈 가수들의 목소리를 벨벳 보이스라고 부른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속 여인들처럼,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여인을 묘사하는 붓 터치의 시대를 벨벳 시대라고 불렀다.

 

정치권에서도 벨벳은 중요하다 1989년 바츨라프 하벨의 주도 아래 공산 통치를 종식하고 자유화를 요구와 더불어 최초의 자유선거로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체코의 공산 정권을 붕괴시킨 시민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 시위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뤄낸 무혈혁명이다. 벨벳 표면처럼 부드럽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뤄낸 혁명이기에 붙여진 애칭이다. 지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한국사회는 시민혁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평화롭게 이 땅의 주권이 누구의 것인지 말하는 길 위의 시민들이 나는 존경스럽다. 그들은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이용하여 국가를 상대로 도박을 벌여온 집단을 향해,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야 한다. 우리들의 혁명이 이번만큼은 총칼에 빼앗기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벨벳 장갑을 끼고 우리의 정당한 혁명을 이뤄내야 할 때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의 벨벳

 

 

대항해시대 온라인 에서는 상인 폭렙의 지름길이자, 한때 돈벌이의 최고봉으로 여겨졌던 교역품. 원래는 프랑스의 특산품이다. 하지만 봉제렙이 높을 경우 인도에서도 생산이 가능했다.

 

무지막지한 시세 차익과 특산품 거리차이에 따른 명성과 그에 따른 경험치가 들어오기 때문에 봉제의 꽃이라 불린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인도쪽에 있는 캘커타 ,마술리파탐 , 디우와 동남아시아의 지아딘(생사를 파는 항구들임)(단 이중에서 디우와 지아딘은 직물을 파는 항구가 아닌 관계로 여러 명이 달라붙어 할 경우 방폭이 힘든 고로 직물폭락이 자주 나서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생사자체의 수량도 적은편)에서 시세가 좋을때 이 벨벳을 만들어서(생사3개와 생사로 만든 자수실1) 그 자리에서 팔면 엄청난 경험치와 명성을 얻을 수 있어서 일명 벨벳 온라인이라고 불리는 상인 레벨업의 정도로 불리는 방법이다. 거기다 사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시세 차익이 엄청나서, 상인 아닌 사람들도 잠시 상인으로 전직해서 이걸 해서 자금마련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91125, 엑스트라 챕터 업데이트와 함께 잠수함패치로 인하여 벨벳 제작에 필요한 재단도구가 2000 두캇에서 1만 두캇으로 상승하면서 경험치 이익이 줄어들고 실질적인 두캇 이익은 완전히 말아먹게 되면서 게임 전체의 유저 급감과 순위 추락의 악재를 만들어낸다. 더불어 거품이 많았던 3번 발주서 가격도 서버 전체적으로 폭풍산화폭락 중.

 

여기서 일본 서버는 가격은 그대로인데 한국만 가격을 바꿨다고 유통사인 설탕공장CJ를 비판하는 유저들이 많은데 처음엔 벨벳 제작에 생사만 필요했다가 재단도구가 추가된 것도 한국 서버에서 먼저 시작된 일이다. 이번 재단도구 가격 인상도 벨벳 제작 재료의 변경처럼 한국일본으로 역수출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됐고 결국 일본도 동아시아 업데이트와 함께 가격이 올랐다. 그리고 한국은 욕 디립다 처먹고 있다.

 

재단도구의 본래 기능인 옷염색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똑같은 기능을 하는 새 아이템 "염색가루"를 기존의 가격으로 팔고 있다.

 

재단도구 가격 상승 이후에도 2010년 상반기까지는 벨벳 만들어 파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이것은 발주서 가격이 폭락하면서 재단도구의 오른 가격과 어느정도 상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상반기를 넘어가면서 여러 가지 패치로 인하여 발주서 가격이 다시 폭등,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되면서 벨벳온라인은 사라지게 된다. 이후 이 방법은 봉제 랭작을 하는 상인들 이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갈 때 교역소에서 사서 가도 된다. 각 본거지와 제노바와 피사에서 판매하니 참고할 것. 보통은 은행금고에 보관하는 편이지만, 아팔타멘토에 보관하고 꺼낼 경우 거리가 멀어서 수수료를 엄청 오르니 주의하자. 만약 공유창고를 쓰게 되면 같은 계정의 캐릭터로 본거지에서 즉시구입해서 수수료 없이 꺼내 쓰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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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관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1.18 6.25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피난민들이 귀중품만 챙겨서 피난을 갔는데, 초등학교 어린이가 학교에 입고 갈 옷이 없자 할 수 없이 피난길에 가져온 벨벳으로 옷을 해 입혀 학교에 보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어린 학생이 이렇게 비싼 옷을 입고 학교에 오면 어떻하냐고 주의를 주었다고 하네요. 어린 학생은 어머니께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벨벳을 뒤집어서 옷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 홍나영(洪那英) 교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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