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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관하여 - 2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작성자살맛|작성시간05.05.12|조회수406 목록 댓글 12

▲ Provocation / 키에르케고르


기도에 관하여 - 2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이전 글에서 인간은 유한자로써 무한자이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일한 방법이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저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영적 글들을 모아 놓은 [도발, provocation]이란 책에서 그는 무한과 소통하는 인간의 실존을 더더욱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는 본질적으로 영spirit입니다. 그렇다면 영이란 무엇입니까? 영은 자아self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자아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해서, 자아란 무한과 유한의, 순간과 영원의, 그리고 자유와 숙명의 진테제synthesis입니다. [Provocation, p136]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성찰한 인간 존재는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입니다. 이는 보통의 인간들이 일상 속에서 겪으며 살아나가는 수없이 많은 문제와 고민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외치는 절규와도 같은 말입니다. 60억 지구 인구 중에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인간의 삶이란 언제나 극단의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기쁨이 있을 때도 있지만, 슬플 때가 더 많습니다. 희망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 사회 구조 속에서 희망을 느낀다는 것은 오히려 기적이다 말할 정도로 우리 삶은 절망으로 피폐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발견한 바,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다름 아닌 ‘절망’이라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가 젊은 시절의 상당부분 우울증에 시달려 인생을 고민하며 살았던 것을 볼 때에, 인간의 삶은 만만치만은 않은 지난한 도정이란 점에서 이견을 불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통렬히 인식해야 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볼 요량으로 우리 자신에 억지로 덧입힐 무언가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에 상관없이 현재, 지금! 인간 실존은 모순과 연약함 투성이라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기도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제가 진정으로 자신의 하찮음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크신 선하심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해 주십시오.


또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겉으로 보면
어떤 사람은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약합니다.
강한 사람은 그 힘을 자랑하고
약한 사람은 한숨쉬며 질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면,
홀로 강하신 주님의 얼굴 빛 안에서
우리 모두가 약합니다.


▲ 물꽃 2005년5월


이처럼 키에르케고르는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먼저 인간의 유약함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뻣세고 우둔한 꼴로 퀭한 삶을 살아나가는 우리 자신에 대해 하나님 앞에 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유한자로서의 인간의 삶은 더욱 더 살만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실존을 넘어 설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안에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은 거꾸로 무한에로의 길이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흔히 말하듯, ‘누구나’ 무한에로의 비약이 가능하지만 ‘아무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제시한 바, 이는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고 비약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전해주는 믿음의 유산에서 모든 구원의 길이 시작된다는 것, 즉 히브리서에서 명시하고 있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 바탕, 기초, 원칙]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는 자에게 이런 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영성가 안셀름 그륀Anselm Grün이 ”믿는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사물을 좋은(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 모든 것에서 좋은 것(긍정적인 면)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 것처럼, 이면의 가능성에 눈 뜨고 이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여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저를 가르치셔서
제가 자신을 괴롭히거나
숨 막힐 듯한 생각 때문에
스스로 순교자가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보다는 오히려 믿음 안에서
깊이 숨쉬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도 그와 같이 ‘깊이 숨쉬는 법’을 배우길 소망합니다. 깊이 숨쉬는 법이란 다름 아닌 ‘기도’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우리 내면에서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것은 ‘기도’ 외에 있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
찬미예수
임태일목사
nada te tur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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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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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살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5.12 유한자의 제한과 속박의 현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겠지만, 그 반대로의 가능성에는 거의 문을 닫아놓고 있는 듯 하네요. 그래서 목사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다들 눈을 감고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 귀한 커멘트로 큰 자극을 받습니다.
  • 작성자살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5.12 글 하나 하나에 바른 정신과 신앙을 담아야겠습니다. 두분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선물 | 작성시간 05.05.13 저도 잘 읽었습니다 그냥 참 좋네요!
  • 작성자김지현 | 작성시간 05.05.13 목사님,,, 오랜만에 왔습니다. 죄송요... 히히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너무나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꼬리글의 중요성도 새삼 느끼게 되구요. 제가 무한에로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떡이게 되면서도.. 자신없는 저를 보게 됩니다. 그렇기때문에 기도가 중요한 것이라 말씀하신거지요?
  • 작성자김지현 | 작성시간 05.05.13 고맙습니다. 바쁜 탓으로 기도하지 못한 것 회개하는 마음도 얻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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