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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이야기

황거(에도성)과 니쥬바시(이중교)에 다녀왔습니다.

작성자국어사랑|작성시간16.02.19|조회수419 목록 댓글 6

여기는 황거입니다. 일본 황제가 살고 있는 곳이지요. 일년에 2번만 개방되고(1월 2일과 항제 생일날) 363일은 굳게 문이 닫혀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언제나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정원이구요.

도쿄역에서 내려 7,8분 걸으면 바로 황거가 나옵니다. 아래 사진에 물이 보이시죠.  해자라고 합니다. 일본의 어느 성에나 해자가 있습니다. 적이 침입해 올 것을 방어하기 위해 성 주변을 이렇게 연못으로 빙 둘러놓았습니다. 사방을...... 적이 노를 저어 오는 동안, 성에서 배를 향해 화살을 쏘아대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방어를 위한 지혜(?)라고 봐야겠지요. 물 위에 보이는 다리가 니쥬바시(이중교)입니다. 이중교 앞에서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가 송구스러운 곳입니다. 잠시 후에 이유를...... 

 

 

 

 

안경을 만지고 있습니다. 다리 모습이 안경과 비슷하지요? 2개의 반원이 물에 비쳐 마치 안경처럼 보입니다. 해서 이 다리를 안경다리라고도 합니다. 

 

가 이중교 앞에서 웃으면서 사진 찍는 모습을 못마땅해하는 듯한 분의 표정같습니다. 김지섭 의사입니다. 1931일 1월 5일 저 다리에 대추알 모양의 폭탄을 3개 던졌던 분입니다. 한인의열단에서  김지섭의사를 파견했었지요.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체였죠. 사실, 김지섭 의사는 안동 사람이었는데, 중국으로 망명하여 만주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한인의열단에 가입한 분이시지요.

대관동지진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1930년 9월에 일본 관동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었어요. 일본인들이 어마하게 죽었죠, 지진이야 천재지변 아닌가요? 그 나라가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해있어서 일어난 일. 지형탓이거늘. 일본인들은 일본땅에 조선인들이 많이 이주해 와있기 때문에 부정을 탔다고 비어를 퍼뜨려 흉흉한 민심을 가라앉히려 했습니다. 해서 조선인들을 무차별학살했지요.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솥에 삶아죽이고 총으로 쏘아죽이고...... 그때 죽은 조선인들이 660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일을 보고 가만히 있을 의열단이 아니지요. 동경에서 열리는 제국의회에 조선총독과 각료 대신들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폭탄을 던지려 누군가를 파견하기로 결의합니다. 그때 자원을 해서 나선 분이 아래 사진의 주인공 김지섭 의사입니다. 그는 일본어에 능통해서 금산지방법원에서 통역관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일본어에 능한 사람이 검문을 능히 통과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자원을 한 것이지요.

 

▼  우리 정부에게 그에게 내린 건국훈장입니다.

 

안동 독립기년관에 있는 그의 유시를 새긴 기념비입니다.

상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석탄을 실은 화물선 - 석탄 보관 창고에 숨어서 일본으로 건너갔지요)에서 지은 시라고 합니다. 사나이가 나라를 위해 큰 뜻을 품었으니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해도 좋으리라는 내용입니다. 안동에 갈 기회가 오면, 둘러보아야겠습니다.

 

그가 큐슈항에서 동경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그는 김원봉에게 받아온 군자금(여비)가 다 떨어집니다. 100원을 받았대요. 일본돈으로 바꾸니 40엔. 그 돈은 일본으로 가는 차비도 되지 않을 정도였나 봅니다. 뱃삯을 아끼기 위해 석탄화물선 짐칸에 얻어 타고 12일 항해끝에 일본에 닿았는데요. 해서 그는 자신의 외투와 회중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그 돈으로 기차표를 구입하여 동경으로 잠입합니다. 제국의회에서 일본 수뇌부를 처단할 생각으로..... 그가 조선에서 조선총독부를 폭파시키려 조선에 왔다가 일본압잡이의 밀고로 실패했던 일이 있었기에 이번만은 꼭 성공하리라 다짐에 다짐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냥 포기하고 상해로 다시 돌아갈 김지섭 의사가 아니었지요. 상해까지 돌아갈 여비도 없었구요. 그는 처단 대상을 바꿉니다. 일본 황제를 처단하기로..... 해서 그는 황거를 찾아가게 됩니다. 황거 시설물들 중에 황제의 거처와 가장 가까운 곳이 니쥬바시(이중교)라는 것을 알아내죠. 그는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이중교를 건너가게 됩니다. 일본 경관이 뛰어옵니다. 경관을 향해서 대추알을 하나 던집니다. 그런데, 대추알 폭탄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12일 동안 음습한 배의 지하창고에서 습기를 먹어 이미 기능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거사를 앞두고 새로 마련해준 폭탄이 아니었습니다. 3년전에 어떤 동지에게 받아놓은 것이었습니다. "폭탄은 이것으로 쓰고...." 의열단이 그만큼 궁핍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의욕은 앞서지만, 군자금은 늘 부족했을테니...... 성능좋은 폭탄을 새로 구입해서 잘 폭발하는지 시험을 해보았으면 좋았으련만......

 

나머지 2개의 폭탄을 다리 중앙으로 던졌으나 역시 그것도 터지지 않았구요. 김지섭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결국 감옥에서 옥사하게 되죠. 그 때 그를 변호해준 변호사가 의외로 일본인 후세 다츠지와 3명의 일인 변호사들입니다. 법의 심판은 인종을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이라고 그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구요. 그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일제는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김지섭 의사는 차라리 사형에 처해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리고,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4년만에 옥사를 합니다. 변호사들이 사인을 밝혀달라고 요청했지만, 일제는 발빠르게 그를 화장해 버린 뒤였습니다. 이 소식을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것이 아래 사진입니다. 김지섭 의사의 사진과 이중교의 모습이 보도되었네요.

김지섭 의사의 모습입니다. 단아한 젋은이의 모습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갔는데도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우리 선열들이 독립울 위해서 그토록 몸부림치셨던 곳에서 엄숙하게 묵념을 올렸어야 했는데.....

귀국 후에 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런데. 우리 후손들은 김지섭 의사에 대해서 아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중근의사나 윤봉길의사만큼 유명하질 않지요. 실패로 끝났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그의 의거는 세계 만방에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구요. 출범식과 같은......

 

 

 

 

 

우리 후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저렇게 일본여행을 자류롭게 가서

웃을 수 있는 오늘이 있는 것은

김지섭 의사와 같은 선열들의 목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가슴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도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평온하게 웃었던 저는 몇시간 후에 김지섭의사가 수감되었던 이치카와형무소터를 찾아가서 펑펑 울게 되었죠.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 사진은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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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국어사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19 네, 아픈 곳에 다녀왔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양인들처럼)
    풍경만 담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 속에도 선열들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가는 곳마마 마프기만 합니다.
    그날 참 고단하고 아팠지만 의미있는 날이었습니다.
    김지섭 의사가 하늘 나라에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찾아주는 후손이 있어서.
    기억해주는 후손이 있어서.
  • 작성자국어사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19 김지섭 의사님. 우리들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의 황거. 니쥬바시를 생각하면 당신이 생각날 것입니다.
    고이 잡드소서. 편히 잠드소서. 오늘 평화로은 이 시간은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의 의로운 희협심에 고개을 숙입니다.
  • 작성자심천 홍영택 | 작성시간 16.02.19 당시에는 한국이 문호를 개방하고 막 현대시대를 걷고 있을즈음이죠 일본의 문화와 근대화를 이끈 것도 한국이었는데 한국전쟁으로 미국을 도와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한국을 자기들의 속국을 만드는 것도 시간문제라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봉건시대를 걸은 양반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당파싸움에 날가는ㅈ 모르는 위정자들이었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형국이었습니다. 지금 이나라는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정치인을 잡아 약을 하려해도 없습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의 열광들의 속에 파묻혀 신 냉전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구 한말 의사들은 구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서 지켜온 이나라를 어찌하여 부국강병을 만들지 못하고 이렇게 불안한 나라가
  • 작성자안산 | 작성시간 16.02.20 김지섭의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동
  • 답댓글 작성자안산 | 작성시간 16.03.06 다시한번 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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