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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언어의 변화 중 문법화

작성자박우진|작성시간08.11.02|조회수903 목록 댓글 7

말은 변합니다. 형태도 변하고 의미도 변합니다. 그 변하는 양상도 참 다양합니다. 말이 변한다는 것은 단지 '가람'을 '강'이 대체하고 벽창우'가 '벽창호'가 되고 '마삼'이 '마음'으로 변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서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어미들도 그 기능이 변하게 됩니다. 주어가 일인칭일 때 서술어에 등장했던 선어말 어미 '오'는 현대국어에선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반면 둘이었던 게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쏜살같이', '불현듯' 등의 말들은 두 단어 이상의 구 형태가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 한 단어로 굳어진 형태입니다. '암탉, 수탉'처럼 예전엔 합성어였으나 '암'과 '수'는 현대국어에서 접사로 그 지위가 떨어졌습니다. '아프다', '슬프다'도 '앓다', '슳다'에 접미사 '-브-'가 결합한 파생어였으나 더 분석되지 않는 단일어화의 과정을 겪은 예입니다.

 

문법화도 우리 교재엔 거의 나오지 않지만 꽤나 익숙한 현상입니다. 정확히는 '문법형태소화'입니다. 즉, 문법형태소가 아닌 것이 문법형태소가 된 것입니다. 문법형태소는 조사나 어미를 말하고 문법형태소가 아닌 것은 실질형태소이니 명사나 동사처럼 어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미나 조사 중에서 문법화를 겪은 것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러니까 몇백 년 전엔 조사나 어미가 아닌 명사나 동사인 단어들인 것들이 많았다는 거죠. 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태초부터 넌 어미, 넌 조사하고 태어났을 리가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고자'는 사전에 따르면 '어떤 행동을 할 의도나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이고 '그는 특별히 예의라는 것을 엄격히 지키고자 노력하였다'와 같이 사용합니다. 이 '고자'가 이런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싶다'의 의미가 비슷한 '지다'의 활용형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좀 거슬러 올라가면 '-고져'였고 이는 '-고(연결어미)+지-(보조용언)+-어(연결어미)로 분석됩니다. 즉, '-고져'는 '-고 싶어서'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현대어에도 '-고 지고'의 형태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정든 님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 이렇게 '-고자'에 문법화의 현상이 들어 있습니다.

 

'-어서', '-고서', '-에서'의 '' : 이 어미와 조사를 구성하는 '서'는 원래 형용사에서 온 말입니다. 중세국어시기에 '있다'에 해당하는 형태는 '이시다', '잇다', '시다' 세 가지였습니다. 이 중 '시다'의 활용형인 '시-+-어'가 '셔'로서 지금의 '서'가 된 것입니다. '-에서'는 당시 '에셔'로서 '-에 있어'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보조사 '부터'와 '조차'는 동사 '붙다(附)' '좇다(從)'의 활용형인 '붙-+-어', '좇-+-아'가 조사가 된 문법화의 예입니다. 이외에도 많습니다. '-에게'엔 '거기'를 뜻하는 '긔'가 들어 있고, '-로써'의 '써'는 '쓰다(用)'의 활용형입니다. '오늘따라', '오늘같이'의 조사 '따라'와 '같이'는 어떤 단어에서 왔는지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조사들을 띄어 쓰는 잘못(규정상)을 하는데 문법화가 진행단계에 있어서 단어인지 조사인지 헷갈려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고파'의 '파'도 '싶다'와 연관이 있고 '-ㄹ수록', '-까지' 등도 문법화의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사놔', '가지 마'의 '놔'나 '마' 등도 '놓다', '말다'의 활용형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어떤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어미가 아닐까(그래서 붙여써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어쩌면 이 말들이 문법화 단계에 아주 조금 들어선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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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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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우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1.03 1.예문조차, 문법조차의 '조차'는 표준어에서 인정되지 않는(서울방언에 없어서) 접속조사 '조차'입니다. 전라방언과 경상방언엔 흔히 쓰이죠. 2.'옛글을 좇아'의 '좇아'와 보조사 '조차'가 아예 다른 어원에서 갈라진 건 아니냐는 거죠? 문법화가 됐는데 원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 말이 안 되죠. 지금은 별개의 단어입니다. 보조사 '조차'는 형태소분석을 하지 않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 답댓글 작성자정은주(울산 3) | 작성시간 08.11.04 아...'조차'가 표준어가 아닌 줄도 몰랐습니다. (흔히 쓰이기도 하거니와 사전에도 나오는데요??? )아무런 특별함이나 궁금함을 모르고 지나친 단어들이 참 많은 사연을 품고 살고 있네요.ㅎㅎ
  • 작성자정은주(울산 3) | 작성시간 08.11.04 '문법화'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우선 개념에 대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그것에 대한 다른 현상을 설명해도 헷갈리거나 이해조차(오잉? 여기도 '조차'..ㅋㅋ) 힘들 거라는 생각이...실컷 설명하고 나니 엉뚱한 소리를 하면 얼마나 힘빠지실까...쩝~ 선배님이 주신 것에 비해 제가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게 의심스럽습니다.@@
  • 작성자박우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1.04 그 '이해조차 안 됐다'의 '조차'는 보조사 맞고요. 우리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떡조차, 밤조차 모다(모두) 다 가져가니라' 할 때의 '조차'가 접속조사입니다. 저 위에 예를 드신 게 혹시 보조사 '조차'인가요? 접속조사 '조차'가 경상도에도 있나 해서 실은 놀랐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잘못 이해한 듯...ㅎㅎ
  • 답댓글 작성자정은주(울산 3) | 작성시간 08.11.05 네. 보조사 '조차'였는데...저도 그게 방언이라기에 놀랐습니다.ㅎㅎ 아무래도 제가 애매한 예문을 들었나 봅니다. (예문조차 제대로 못내는...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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