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발행 새국어생활 11-1호>
남기심 / 국립국어연구원장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쓰는 말 중에는 정상적으로는 도무지 뜻이 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말들이 많다. "이 확대경은 무엇에 쓰는 거야?" "사전 찾을 때 쓰는 거지." 할 때의 '사전(을) 찾는다'라고 하는 말은 당연히 사전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는 뜻이어야 하고, 어떤 문맥에서도 이런 뜻으로만 해석이 되어야 할 텐데, 위와 같은 대화에서는 '사전에서 단어의 뜻이나 발음, 철자 등을 찾아본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 말이 이러한 뜻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사전을 찾는다'라는 말은 관용어로서 사전의 올림말이 될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 '수도 꼭지를 튼다'는 말은 '수도를 튼다'가 되고, 더 나아가서 '물을 튼다'고까지 하게 되었다. 빨래를 비틀어 짜듯이 물을 틀 수가 없는데도 이 말을 모두가 알아듣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귀가 안 들린다'라고 하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는 '눈이 안 보인다'고 한다. 정상적인 문법적 안목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전에서 단어의 뜻이나 발음 등을 찾아본다는 의미의 '사전을 찾는다'는 '목적어+타동사'로 분석할 수 없다. "이 단어를 사전을 찾아 봐."라는 말 중의 '사전을 찾다'는 그 전체가 '단어를'을 목적어로 하는 한 개의 타동사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전(을) 찾을 때 쓰는 확대경이 어디 갔나?' 할 때의 '사전을 찾다'는 그 전체가 자동사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한 개의 타동사나 자동사로 취급할 수도 없다. '사전을 있는 대로 다 찾아보았는데'와 같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전을 찾다'는 여전히 통사적 구성이기 때문이다. 또 이 때의 '찾다'에 특별한 의미를 줄 수도 없다. 오직 '사전을'이라는 말 뒤에서만 특수한 의미를 갖게 되는 까닭에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전을 찾다'는 한 단위의 관용어로 풀이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보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빨리 찾아봐 사전을', '내가 어제 영한사전을 순이와 함께 찾아보았는데' 등과 같이 예사 '목적어+동사'와 같은 통사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도개가 도둑을 잘 지킨다'의 '도둑을 지키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키다'는 '재산, 가족, 나라, ...' 등과 같이 잃어서는 안 될 것을 도둑이나 적이 훔치거나 뺏어가지 않도록, 혹은 이들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런 뜻으로라면 '도둑을 지키다'는 '도둑'을 보호한다는 뜻이 되고 만다. 실제로 "저 도둑을 잘 지키고 있어."라고 하면 저 도둑이 도망가지 않도록, 또는 자해를 하거나 하지 않도록 살피라는 뜻도 된다. 따라서 '도둑을 지킨다'가 '도둑이 못 들어오게 집을 잘 지킨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때의 '지키다'가 '보호한다'는 뜻이 아니라 '막는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풀이해야 하거나, '도둑을 지키다' 전체를 하나의 관용어로 보아야 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모두 문제가 있다. '지키다'가 '막다'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오로지 '도둑'을 목적어로 할 때뿐이며, '도둑을 지키다'를 관용어로 보기에는 이것 역시 '사전을 찾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통사적 구성으로서의 '목적어+동사'의 통사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을 튼다'의 경우는 '물'을 '수도꼭지'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하면 된다. 그러면 '물을 틀어라'는 '수도꼭지를 틀어라'의 뜻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동사 '틀다' 앞에서만"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해도 '물'의 뜻이 '수도꼭지'라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으면 '물을 틀다' 전체를 관용어로 처리하여 '수도꼭지를 틀어서 물이 나오도록 하다'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풀이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언어에나 반드시 이러한 표현들이 있게 마련인데 어째서 이런 비정상적인 표현이 생기게 되는가? '사전을 찾는다'라는 말은 '사전을 뒤적여 (뜻을 알고자 하는 문제의) 단어를 찾는다'라고 해야 할 것이고, '도둑을 지킨다'는 '도둑을 경계해서 못 들어오게 집을 지킨다'라고 하고, '물을 튼다'는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나오게 한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은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이해할 부분이 없이 꼭 필요한 말만으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까닭에 이와 같은 표현이 생기게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아이엠에프 때 이러저러했다'든지 '또 아이엠에프가 터지면 ...', '아이엠에프가 지나간 줄 알았더니 ...' 라고 할 때의 '아이엠에프'는 '국제금융통화기금'이라는 뜻으로서, 어떤 사건을 나타내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건을 나타내는 말처럼 쓰이는 것도, 아이엠에프를 빌어 오지 않을 수 없던 때의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아이엠에프'라는 말로 그 때의 상황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문법적으로 설명하자면 '아이엠에프'가 '국제금융통화기금'이라는 뜻 외에 '어느 나라가 국제금융통화기금을 빌어 오지 않을 수 없어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 하나 더 생긴 것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종아리를 걷어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종아리는 바지를 걷어올리듯 돌돌 말아서 걷어올릴 수가 없다. 이 말도 '바지를 걷어서 종아리를 드러내라'라고 해야 할 것이 역시 위와 같은 연유로 이렇게 비정상적인 표현이 생긴 것이다. 이 때의 문법적 설명은 '종아리'가 아니라 '걷다'의 의미가 '아래로 늘어뜨린 것을 말아 올리거나 들어 올리다'라는 뜻 외에 '바지자락을 들어 올려 종아리를 드러내다'의 뜻이 하나 더 있다고 해야만 가능해진다.
이러한 사실들은 언어의 변화가 상당 부분 화용적 맥락 속의 쓰임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잡다'라는 동사는 '손목을 잡다, 옷자락을 잡다'라고 할 때와 돼지'를 잡다, 소를 잡다' 할 때의 뜻이 다르다. '손목을 잡다'의 '잡다'는 '손으로 움켜쥐다'는 뜻인데 '돼지를 잡다'의 '잡다'는 '도살하다'의 뜻이다. 그런데 똑같이 동물을 목적어로 취하더라도 '호랑이를 잡다, 말을 잡다, 돼지를 잡다'의 세 '잡다'의 뜻이 다 다르다. 목적어가 '호랑이'일 때는 '포획, 또는 포살한다'는 뜻으로, '말'이 목적어일 때는 '붙들다'의 뜻으로, 그리고 '돼지'가 목적어일 때는 '도살하다'의 뜻으로 해석하게 된다. 만약 우리나라에 돼지고기를 먹는 풍습이 없어진다면 '돼지를 잡다'의 '잡다'는 '먹기 위하여 도살하다'의 뜻으로 해석하는 일은 없고, '붙들다'의 뜻으로만 해석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의 뜻풀이가 언어 외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글을 짓는다'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작문'이다. 그런데 이 때의 동사 '짓다'는 '글'이나 '시' 하고만 어울리고, '소설'이나 '수필'은 '쓴다'고 한다. '글'이나 '시'까지 모두 '쓴다'고 하거나 아니면 '소설'이나 '수필'도 '짓는다'라고 하면 조금 더 규칙성이 있어서 좋을 텐데 이렇게 불규칙하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 사람들에게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동사 '먹는다'는 고체성 음식물뿐만 아니라 '물'도 먹는다고 한다. 물론 '마신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르지만 '먹는다'고도 한다. 한자로도 '먹다'에 해당하는 '食'자를 써서 '식수' 또는 '식용수'라고 한다. '한약을 먹는다'고 할 때의 그 '한약'도 실은 액체다. 그런데 '홍차', '사이다', '콜라' 같은 것은 '마신다'고 하지 '먹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최근에 나온 음료에는 '마신다' 쪽이 우세하게 쓰인다. 이러한 사실들도 문법적으로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단어가 다 문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관용적 용법이 있다. 그리고 그 관용성 속에 지극히 묘한 사고방식, 우리만의 생활 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사전은 이러한 사실들을 다 담고 있어야 한다. 갈수록 사전의 중요성을 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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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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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원 작성시간 07.07.16 그렇다면, '사전을 찾는다.' '도둑을 지키다.' '물을 튼다.' 등등의 여기서 예로 제시된 표현은 쓰지 말아야 된다는 뜻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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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우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07.16 마지막 단락에 답이 있습니다. 1.문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관용적 용법이 있다.(인정한다는 말이지요.) 2.사전은 관용성 속에 들어 있는 사실들까지 담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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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원 작성시간 07.07.16 고맙습니다. 끝까지 내리읽으며 허용한다는 것처럼도 느껴지는 반면, 가급적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에 헷갈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애써 준비하시고 이곳에 올려놓으신 자료들이 저의 지식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터득하는 것으로 보답을 대신하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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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aseseda 작성시간 09.03.29 외국인이 위와 같은 문제들 을 물어 올때 진짜 난감 하기 짝이 없더군요. 우리말의 통사적 구조 라던지 의미론적인 내용을 어느 정도 라도 알고 있어야 대답을 할 엄두라도 내겠군요. 좋은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