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우리나라를 관통하지 않고 옆으로 지나갔을 경우에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갔다”라고 해야 하는지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켜갔다”고 해야 하는지 애매하게 생각될 수 있다. ‘비껴가는’ 것이나 ‘비켜가는’ 것 둘 다 우리에게는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키다’와 ‘비끼다’는 의미와 쓰임에서 차이가 있다. 즉, ‘비키다’는 사람이나 동물과 같이 어떤 의도를 가질 수 있는 대상이 자기가 가는 방향에 있는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피해서 지나가거나 옮겨 가는 것을 뜻하고, ‘비끼다’는 어떤 것에 대해 비스듬하게 또는 정확한 방향이 아닌 조금 옆으로 벗어난 방향으로 지나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태풍’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켜가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공이 골대를 살짝 비켜갔다”가 성립하지 않고 “공이 골대를 살짝 비껴갔다”라고 해야 하는 것도 공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골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이 지나가는 방향이 ‘골대 안’이라는 정확한 방향이 아니라 골대를 벗어난 방향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편, “앞에 빚쟁이가 와서 비켜갔다” “물이 괴어 있는 곳이 있어 비켜갔다” 등에서는 ‘빚쟁이’나 ‘물이 괴어 있는 곳’을 ‘(사람이 의도적으로) 피해 간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비켜가다’를 쓰는 것이 옳다. “칼을 비껴 찼다”에서는 ‘칼을 비스듬하게 찼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고,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갔다”에서는 ‘태풍이 우리나라로 지나가지 않고 (우리나라를 벗어나서) 우리나라 옆으로 지나갔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비끼다’로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