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의 비법>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로타리 장학금을 받다가 알게 된 일본인서예선생님이 있다. 일본의 붓글씨는 여리고 섬세한데 그 안에 심지도 있고 뜻도 담아내야 하기에 선의 아름다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먹의 색깔에서도 글씨의 표정을 나타낼 수 있다. 선생님은 1932년생으로 처음에는 음악을 듣고 미술관을 따라다니다 나중에는 서예를 배우게 되었다.
붓글씨를 배우겠다고 하니 서예선생님이 말한다. 서예의 ○○체 라는 것을 시작하려고 하면 10년을 배워도 초보이고 20년을 배우면 초보는 겨우 면하지만 글씨에 자신이 없고 30년을 배우면 나름 능숙해지지만 글씨를 모르고 40년 50년을 하면 지위는 높아지지만 글씨의 본질과는 멀어지고 지위가 글씨인 줄 착각하는 경우에는 최악의 글씨를 써놓고도 웃으며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바로 자기의 글씨를 쓰는 게 가장 좋은데 일본의 글은 히라가나 가타가나 한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중의 하나를 고집하면 안되고 두루두루 다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것저것 걱정하지 않아야 세 종류를 쓸 수 있다며, 자기 글씨을 쓰기 위해 일단은 선생님의 체본을 받아서 체본을 보며 써보면 어떻게든 된다 라는 말이 대책 없이 무모해 보기기도 한다.
○○체를 철학알기, 자기의 글씨를 쓰는 것이 철학하기라고 생각하면 좀 쉬워진다. 서예선생님의 말을 구비문학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다. <학지광>은 도쿄 우시고메의 인쇄소에서 인쇄를 했다던데 마침 배운 곳이 가정집과 화실을 겸한 우시고메의 오래된 흔한 집으로 전혀 눈에 뜨이지 않는다. 구비철학은 가까이에 있다.
鎌倉や御佛なれど釈迦牟尼は美男におはす夏木立かな 与謝野晶子
가마쿠라야 부처님이지만 석가모니는 미남이셨다 여름나무숲인가
よの中に恋といふ色はなけれどもふかく身にしむ物にぞありける 和泉式部
세상에 사랑이라는 색깔은 없지만 깊이 몸에 스미는 것이 있구나
-남녀사이에는 사랑이라는 색깔은 없지만 깊이 몸에 스미는 것이 있구나 -
あまのすむ里のしるべにあらなくにうらみむとのみ人の言ふらむ 小野小町
해녀들이 사는 마을의 안내인도 아닌데도 해변을 보자고만 사람들이 말을 하는구나
-비구니 사는 마을의 안내인도 아닌데도 미워할꺼야 라고 사람(남자)들이 말을 하는구나
부기-2020년 10월 8일 학회 참석했을 때 떠오른 기억을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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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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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10.13 오랜만에 오래된 플라스틱 상자를 뒤져서 글씨들을 찾아내고 잠시 추억에 빠지기도 하고 다시 초서체를 확인하기도 하고 와카를 확인해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와카는 제가 한국어로 옮기니까 조금 맛이 떨어지네요. 근데 저는 박혁거세의 자손이라서 왕족이랍니다~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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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중용 작성시간 20.10.13 우리나라 서예와 많이 다르네요. 일본 서예는 주로 세필붓을 사용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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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0.10.13 제가 가진 건 일단 제가 쓸 수 있어야해서 큰 글씨까지는.. 일본에도 명필은 붓을 가리 않는다는 말이 있으니 비슷한 부분도 있을꺼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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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연경 작성시간 20.10.15 히라가나는 인쇄체도 헷갈리는데, 흘려 쓰니 문자 자체를 못알아보겠네요. 한문 해서체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어는 그보다 획이 간단한데도 기교인지, 예능인지 참 다른 세계 같아 똑같이 어렵습니다. 이 글씨를 보니 정말 이후에 선생님의 일본 관련 식견이 더 크게 쓰여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에서는 유사성을 찾아내기가 쉬운데, 일본에서는 차이가 더 많이 드러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볼수록 더 낯선 나라 같다는 느낌, 어디서 접합점을 찾아야 할지 항상 숙제인 채로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풀어 말씀해주시니 이해에 많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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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동일 작성시간 20.10.21 글씨를 배우다가 마음까지 배울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