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태권도라는 무술이 있다. 보통 한국인들은 이것을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 고유의 전통무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태권도는 사실 일본 공수도에서 파생되어 변화된 한 유파로 보는 것이 맞다. 공수도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며, 전통 공수도와 태권도의 차이는 아마도 공수도와 극진공수도의 차이보다 더 적을 것이다. 태권도가 공수도와 같은 무술이라는 것은 무예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납득이 가는 일이기 때문에, 요즘 한국에서도 이 문제로 대립하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민족자존이라는 문제에는 타협이 없는 한국인들이지만 그래도 양심있는 사람은 꽤 있기 때문에 이같은 논란은 주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1625년에 명나라 사람 진원빈이 오키나와에 와서 권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고, 1700년에는 사쿠가와가 중국으로부터 당수를 배워서 오키나와에 전했다고 하는데, 오키나와는 지리적으로 중국의 남부와 가깝기 때문에 이 시기에 중국의 남권이 오키나와에 전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되는 것이다. 남권의 뿌리는 달마대사의 소림권이고, 달마대사는 인도 사람이므로 결국 가라테는 인도에서부터 멀고먼 길을 돌아 일본에까지 전해졌다고 생각된다. 남권이나 소림권은 품새를 중시하는 북권에 비해 보다 실전적인 무술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가라테와 태극권의 차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번성하던 류큐왕국은 17세기 이래 큐슈의 사쓰마로부터 잦은 침공을 당해 사실상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다가 19세기에는 류큐왕조가 사라지고 완전히 일본의 현으로 편입되게 되었는데, 이 시기 일본인들은 오키나와에 무기의 소지를 금지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다고 한다. 이 정책으로 인해 오키나와에서는 신체를 무기로 단련하는 당수가 번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키나와에서 발전한 당수도는 1920년대 후나고시라는 인물에 의해 일본 본토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나고시는 당수의 이름을 공수도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마케팅을 위해 일본인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적절한 브랜드를 창안한 것이다. 여기에서 공은 아마도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따온 듯하며, 수는 당수에서, 그리고 도는 유도나 아이키도, 무사도에서 사용하는 도를 채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대단히 의미심장하고 철학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즉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움직여 길을 만들어간다? 는 등 이런 식의 느낌을 주는 좋은 이름인데, 오늘날로 치면 엄청나게 성공한 브랜드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공수도는 하지만 전후에도 유도의 그늘에 가려 천시당했으나, 전후 조선출신의 귀화 일본인 대산배달(본명: 최영의, 또는 최배달 이라고도 불림)에 의해 분파되어 실전 무도로서 재 탄생한 극진공수도(교쿠신카라테)로 인하여 대중화에 성공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극진공수도는 태권도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공수도 문파인데, 전세계에 약 1천만명의 수련생을 가지고 있으며 2006년부터는 아시안게임의 공식 종목으로 채택될 예정이라고 한다. 대산배달의 원래 이름은 최영의인데,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가라테를 배워 스스로 최고수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를 최배달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이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이는 고우영이라는 한국 만화가가 지어낸 이름이다.
고우영은 1975년 새소년이라는 한국의 만화잡지에 대산배달을 주인공으로 대야망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그 시절 대야망의 열렬한 애독자였기 때문에 아직도 그 만화의 많은 장면을 잘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년 최영의가 일본에서 온 고수와 대련하다가 이길 수 없게 되자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장면이라든가, 고수가 된 뒤 미국에 가서 투우와 맨손으로 대결하다가 그 뿔을 잘라버리는 장면 같은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만화를 읽은 탓에 최근까지도 나는 최영의를 태권도의 고수로만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고우영은 자신의 만화에서 대산배달의 무술이 가라테라는 것을 결사적으로 숨기려고 했던 것 같고, 한국인으로써 극진가라데를 전파하는데에 한계를 느낀 최배달은 일본 국적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까지도 고우영은 애써 숨기려했던것 같다. 때문에 나를 비롯한 한국의 독자들은 자연히 그가 태권도로 가라테를 무찌른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대산배달뿐 아니라 역도산에 대해서도 전후 한국에서는 비슷한 왜곡이 성행했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에서도 공수도가 활발히 보급되어 많은 도장이 생겨났고 실력있는 제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1945년이 되어 일본이 패전하고 모든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축출되어 버리자, 많은 공수도장들은 자연히 한국인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 이 당시 한국의 공수도계에는 6대 도장이 있었는데, 윤병인의 공수도연무관, 로병직의 공수도송무관, 황기의 당수도무덕관, 이원국의 공수도청도관, 이남석의 공수도창무관, 이종우의 공수도지도관이다. 이들 6대 고수들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정부가 부산에 있던 시절 1950년에 대한공수도협회를 발족하게 된다.
그런데 이 대한공수도 협회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65년에 와서는 대한태권도협회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수도가 태권도로 뒤바뀐 것일까. 공수도 혹은 당수도로 불리던 이 무예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당시 군인으로서 공수도 고수였던 최홍희 장군이다. 당시 한국의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매우 반일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공수도라는 이름을 매우 싫어했는데, 당시 당수도오도관이라는 도장을 운영하던 최홍희는 1954년에 자신의 휘하 장병들에게 공수도를 훈련시켜 이승만에게 시범을 보였다. 이것을 보고 이승만은, “응, 이거 택견이구만.” 하고 말하고는 만족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공수도를 택견으로 오해하자 최홍희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공수도를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이승만의 후원으로 1959년에 대한태권도협회를 창설하고 그 회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즉 이승만을 비롯한 한국 정치가들의 반일성향으로 인해 일본무술인 공수도에 한국의 전통무술인 택견의 이름을 갖다 붙여 국적불명의 무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택견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조선민족의 전통 무술로서 원래는 수박이라고 불렸는데,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 북권 계열의 무술이다. 동작이 마치 춤추는 것과 같아 수박희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존하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이 수박을 겨루는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아마도 현재 중국의 태극권과 한국의 택견(수박)은 원래 같은 무술이었고, 그런 이유로 세월에 따라 변형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비슷한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택견은 지도층에서는 한자어로 수박이라고 표기했지만 민간에서는 택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한국 공수도인 태권도와 전통 무술인 택견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무술이다. 대륙의 남권이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 한국으로 전파되었고, 급기야 정통 북권 무술인 택견의 이름을 가져다 오늘날 한국의 국기로 자리잡아버린 것이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이 모두가 한국의 반일감정때문이니 역사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임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권 계열의 전통 무술인 택견은 오늘날에도 많은 유파를 거느리며 매우 인기있는 무술로 남아 있다. 따라서 한국의 국기는 당연히 택견이어야 할 것인데, 오늘날 한국인들은 그 이름 때문에 태권도를 택견으로 오해하고 이것을 마치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의 전통 무술로 착각하면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시 태권도의 역사로 돌아가 보자. 이렇게 해서 1959년 최홍희의 태권도협회는 순항하는 듯했으나, 6대도장의 고수들은 공수도와 당수도를 태권도로 칭하는 것에 대해 극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0년 이승만이 학생혁명으로 축출되고 1961년에는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당시 최홍희는 육군 소장이었는데 박정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6대도장의 고수들은 최홍희를 축출하고 공수도협회라는 이름을 회복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1961년 최홍희가 말레이시아 대사가 되어 한국을 떠나게 되자 이 틈을 타 6대고수들은 대한태권도협회를 대한태수도협회로 개칭하게 된다. 그러나 최홍희는 다시 귀국해 1965년 이름을 다시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하고 1966년에는 9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국제태권도연맹(ITF)를 창설하게 된다. 이같은 무리한 조직운영에 대해 6대고수들은 다시 강력히 반발하였고, 결국 최홍희는 1966년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축출되고 만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끝내 태권도의 이름을 태수도나 공수도로 변경하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1971년 김운용이 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태권도라는 이름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져버리게 되었다.
이후 이 어이없는 이름에 반발한 당수도 무덕관의 황기는 해외로 진출해 세계당수도협회를 결성했고, 국내에서 축출된 최홍희는 1970년 자신의 ITF를 이끌고 캐나다로 망명하여 세계태권도연맹의 총재로서 태권도를 보급하게 된다.
따라서 1920년대 일본을 통해 전파된 한국 공수도는 오늘날 세계태권도협회WTF,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당수도협회 등으로 분열되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보급 발전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공수도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위의 글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을 몇군데 수정하여 올린 것이다.
많은 분들이 반일감정으로인해 맹목적으로 반발하기도 하지만 태권도가 가라데를 모태로하고있다는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주 오래전 한국의 여러문물이 일본본토나 오키나와쪽으로 전파되면서 영향을 받기도 했을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모양이 완성한것이 오키나와이며 일본인것을 부정할 수 는 없다. 태권도와 가라데류를 특히 기본동작들을 모두 깊이있게 들여다 본 분이라면 무턱대고 반론을 주장할 순 없을것이다.
지금의 태권도는 가라데와 엄청 다른 모양으로 변화했다.
그간 쌓아왔던 세계속 태권도의 위상이 이로인해 실추된다는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이 아니라고 결론내린것을 숨기고 교육하는것 또한 내겐 쉽지않다.
해방이후의 한국의 공수도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된 역사가 이제 벌써 반세기가 되어가고 있다. 구태여 억지로 역사를 짜맞추어 뿌리를 말하지 않아도 이젠 짧으나마 한국 태권도의 전통은 만들어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외국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닌 그 내용과 무도로서의 깊이일것이다.
개인적 생각으로 그보단 오늘날 종주국 태권도의 모순된 상황을 돌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
어린아이들만을 대상으로하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놀이프로그램으로, 혹은 발차기스포츠로만 일반인들에게 인식 되어있는 오늘날 한국 태권도 모습을 가치있는 무도로 개발, 발전시키는 것에 마음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 극진회관 구미지부 http://cafe.daum.net/kyokushin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