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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텅빈 둥지 본가 本家의 추억

작성자성철 이주성|작성시간26.06.10|조회수30 목록 댓글 2

텅빈 둥지 본가 本家의 추억

 

                                     성철 이주성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웠던 1950년 대 초반,맏형님의 탄생을 시작으로 우리 6남매는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며 각자의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본가는 우리 삶의 전부였다. 그리고 2024년 어머니께서 하늘에 별이 되신 뒤,1년 반의 세월이 지난 202510월 아버지마저 어머니 곁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나시면서 우리 6남매의 본가 本家는 마침내 모두가 떠난 빈 둥지가 되었다.

 

지금은 둥지를 떠난 한 마리 새가 크고 자란 집이 그리워 가끔 빈 둥지를 찾아 어릴 적 향수 鄕愁를 달래며 잠시 머물다 가는 별도의 집이 되었다.

 

이제 우리 형제들은 모두 둥지를 떠난새들이다.

 

어떤 새는 그리움이 너무커서 빈 둥지를 찾지 못하고,어떤 새는 가까운곳에 새 둥지를 틀고 살아가며 자주 본가를 찾아 옛 향수의 채취를 머금었다가 날아간다.

 

나는 아직은 부모님의 체취가 남아 있는 듯한 텅 빈 본가를 찾아 들어서면 두 분이 환히 웃으며 맞이해 주시는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 하고 불러보지만, 두 분의 익숙한 그리운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내 목소리가 허공만을 가를뿐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불러보며 방문을 열어 보았지만, 대답 대신 이내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비록 두 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이승과 저승이 얼마나 먼 곳인지는 알수 없다.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만큼은 같은 하늘 아래 이어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두 분을 부르는 소리가 본가의 공기 속으로 파고들어 조용히 두 분에게 건너가 그리운 내 마음을 전달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내가 태어났고, 자랐으며 학교에 다니고 결혼하여 내 가정을 꾸리고 떠나기 전까지 머물렀던 것만이 아닌, 내 인생의 기초가 되었고, 즐거움과 슬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담겨있는 혼이 살아 숨 쉬는 소중함이 있는 곳이다.

나는 부모님의 피를 나눈 형제들은 형님 두 분, 누님 한 분과 남동생들이 둘이다.

어릴 적 아웅다웅 어려운 시기를 서로의 몸을 비벼가며 온몸의 온기로 이겨낸 자랑스러운 6남매의 고향, 어머니 아버지의 큰 둥지인 것이다.

지금도 고향집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키우시던 꽃들이 나를 반긴다.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셨기에 남아 있는 꽃들이 더 소중하다.

이제 봄이 돌아오니 화분마다, 앞마당의 빈자리마다 꽃들을 심을 예정이다.

사랑하는 박영창 여사님과 이연수 어르신, 나의 보고 싶은 부모님께서 혹여나 꿈에서나 저쪽 세상에서 이쪽 세상에 전세기를 타고서 여행 오시어 지나치시면서, 우리들 없어도 꽃은 예쁘게 잘 가꾸었네 하고 웃으실 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본가의 마당가에는 꼭 옥수수를 심으렵니다.

마당가의 옥수수는 아버지보다 사고로 1년 전에 먼저 떠나간 내 그리운 막냇동생과의 특별한 인연의 추억이 있다. 막내가 사고를 당하기 1주일 전 아버지 간식거리로 멀리 심어놓으면 노인 양반인 아버지가 따 잡수시기 어렵다며 마당가에 심었던 옥수수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그 옥수수씨를 간직하고 있다.

내 동생이며, 부모님 막내아들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어 나는 다른 옥수수 씨앗들보다 의미가 있어 더 소중하여 보관하고 있고, 올해도 심을 예정이다. 추억이 더 오래 가도록 10일 간격으로

두 줄로 심을 예정이다. 그러면 동생을 바라보듯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을 더 오래 바라보며, 더 길게 따 먹으며 돌아오지 못하는 아주 멀리 떠난 동생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치 막냇동생이 마당 한편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막냇동생과의 추억으로 나도 남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끔 추억을 간직하고, 그 추억(追憶)을 반추(反芻)하고, 음미의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람 사는 재미이고 삶의 일부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2026년 어느 따스한 봄날 본가의 하늘은 맑고 푸르다.

마당의 잔디는 뾰족이 돋아나 연둣빛 새순을 밀어 올리기 시작하며, 마당가에는 온갖 꽃들은 저마다 고운 봉우리를 튀울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부모님과 우리 6남매가 함께 했던 시절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나는 본가의 집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향해 조용히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어머니, 아버지, 많이 보고 싶습니다."

" 막내야 사랑한다."

어느새 눈가가 젖어있었지만 마음만은 이상하리만큼 평안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떠나도 추억만은 떠나지않기 때문일 것이다.

 

2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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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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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白華 文 相熙 | 작성시간 26.06.11
    좋은 추억과 함께 가슴아픈
    기억도 머무는 곳 이군요!
    노년에 마음 둘곳이 있다는것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억 저편에 추억을 간직한 고향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지요!
    어머님이 만드신 꽃밭과 옥수수
    밭을 가꾸시어 행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성철 이주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공감을 해 주신 백화 선생님께 감사 드리며,
    응원의 말씀에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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