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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Tango 솔로땅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덤불 속>

작성자days|작성시간08.12.13|조회수433 목록 댓글 15

덤불 속

 

 

 

 

 

 

 

포청의 심문에 대한 나무꾼의 진술 

 

그렇습니다. 그 시체를 처음 본 사람은 분명 접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뒷산에 삼나무를 베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산그늘 덤불 속에 그 시체가 있었습니다. 시체가 있던 자리 말씀입니까? 그곳은 야마시나 역로에서는 네다섯 정 떨어진 곳이지요. 대나무들 속에 바짝 마른 삼나무가 드문드문 섞인, 인적이 뜸한 곳입니다.

시체는 하늘색 평복에 교토 사람들이 쓰는 두건을 쓴 채 위를 보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무튼 단칼이라고는 해도 가슴팍을 찔린 부상이라서 시체 주위의 대나무 낙엽이 검붉은 물감이라도 들인 것 같았습니다. 아니오, 피는 진작 멎어 있었어요. 상처 자리도 말라붙은 것 같았지요. 게다가 왕파리 한 마리가 제 발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상처 자리에 딱 붙어 있더구먼요.

칼이니 뭐니 못 봤느냐고요? 아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 옆의 삼나무 밑동에 밧줄이 한 가닥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 참, 그렇지, 밧줄 말고도 빗 하나가 있었습니다. 시체 주변에 있었던 것은 그 두가지 뿐입니다. 하지만 풀이니 대나무 낙엽이 온통 어지럽게 밟혀져 있었으니까 분명 그 사람이 살해되기 전에 상당히 거칠게 저항을 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뭐라고요, 말은 없었냐고요? 그곳은 애초에 말 같은 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더구나 말이 다니는 길과는 덤불 숲 하나만큼 떨어진 곳이니까요.

 

 

포청의 심문에 대한 행려 승의 진술

 

그 죽은 남자는 분명 어제 제가 만났던 사람입니다. 어제, 그러니까 그게 점심때쯤이었을 거예요. 만난 장소는 세키야마에서 야마시나로 가는 길 중간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말에 탄 여자와 함께 세키야마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천을 두른 삿갓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저도 모릅니다. 제가 본 것은 그저 겉은 붉고 안은 추른 겹옷의 옷 색깔 뿐입니다. 말은 적갈색 털의, 분명 스님 머리처럼 갈기를 바짝 깎은 말인 것 같았습니다. 키는 어땠냐고요? 키는 넉 자나 되었을까? 글쎄요, 제가 승려인지라 그런 쪽은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아니오, 칼도 찼고 활이니 화살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검은 화살 통에 스무 개 남짓한 화살이 꽂혀 있었던 게 아직도 분명하게 생각납니다.

그 사람이 이리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참으로 사람의 목숨이란 여로역여전이라 하더니 그 말이 꼭 맞는 말이군요. 그것 참,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가엾은 일입니다.

 

 

포청의 심문에 대한 나졸의 진술

 

제가 잡아들인 사내 말씀입니까? 그자는 분명 이름이 다죠마루라는, 아주 유명한 도둑놈입니다. 그런데 제가 붙잡았을 때는 마침 말에서 떨어졌던 가봐요, 아와다구치 돌다리 위에서 끙끙 신음하고 있었지요. 시각요? 시각은 어젯밤 초경 무렵이 퍼런 색 평복에 쇠 칼집의 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시는 바와 같이 그것 말고도 활이니 화살까지 갖고 있구먼요. 아, 그렇습니까? 그 죽은 사람이 갖고 있었던 것도......그렇다면 살인을 한 놈은 이 다죠마루가 틀림없습니다. 가죽으로 둘둘 감은 활, 검은 화살 통, 매 깃털 화살이 열일곱개......이건 모두 그 죽은 사람이 지녔던 것일 겝니다. 예, 말씀대로 말도 갈기를 짧게 깍은 적갈색 말이었어요. 그 말이 이놈을 떨어뜨린 걸 보면 이것도 분명 인과응보입니다. 말은 돌다리 조금 못 미친 곳에서 긴 고삐를 끌며 길가의 풀을 뜯어먹고 있었지요.

이 다죠마루란 놈은 교토에서 오락가락하는 도둑놈들 중에서도 유난히 계집을 좋아하는 놈이지요. 작년 가을 도리베지 뒷산에서 절에 불공을 드리러 왔던 부인네와 어린 하녀가 살해되었던 것도 필시 이놈의 짓일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놈이 그 남자를 죽였다고 한다면 그 적살색 말에 타고 있던 여자도 어디다 어떻게 처치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주제넘은 말씀 같지만 그쪽으로도 조사를 해주십시오.

 

 

포청의 심문에 대한 노파의 진술

 

예, 저 주검은 우리 딸과 결혼한 제 사위입니다. 그러나 교토 사람은 아니고요, 와카사 국부의 사무라이입니다. 이름은 가나자와 다케히로, 나이는 스물 여섯입니다. 아니오, 성품이 온순한 사람이라 누구에게 원한을 살 일은 없었습니다.

제 딸이오? 딸의 이름은 마사고, 나이는 열아홉 살입니다. 그 아이는 웬만한 남자 못지않게 기가 드센 아이였고, 아직은 한번도 다케히로 말고는 사내를 사귄 적이 없습니다. 얼굴은 좀 검은 편에다 왼쪽 눈 꼬리에 감은 사마귀가 있고, 자그맣고 동그스름한 형입니다.

사위인 다케히로는 어제 제 딸과 함께 와카사로 떠났는데 이런 변을 당하다니 이게 무슨 업보랍니까. 거기다 우리 딸은 어찌 되었는지, 사위야 이제 어쩔 수 없으나 우리 딸만큼은 참말로 걱정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늙은이의 평생 소원이니 초목을 다 헤져서라도 부다 우리 딸의 행방을 찾아주세요. 그나저나 참으로 가증스러운 놈은 그 다죠마루인지 뭔지 하는 도둑놈입니다. 사위만으로 모자라서 우리 딸까지......(그 다음에는 그저 울기만 할 뿐 말이 없었음.)

 

 

다죠마루의 고백

 

그 사내를 죽인 건 접니다. 그러나 여자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로 갔냐고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아아, 잠깐만 기다리쇼. 아무리 고문을 해도 내가 모르는 건 말을 못해요. 그리고 나도 이렇게 된 마당에 비겁하게 뭘 감추고 자시고 할 마음은 없습니다.

내가 어제 정오를 조금 지난 참에 그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부는 서슬에 여자의 삿갓에 두른 비단천이 들리면서 언뜻 얼굴이 보였습니다. 언뜻 보이는구나 하는 순간 벌써 가려져 버렸지만, 첫째로는 그 탓이었을 것입니다. 제 눈에는 그 여자의 얼굴이 무슨 보살님처럼 보이더란 말입니다. 저는 그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를 죽여서라도 여자를 빼앗기로 결심을 했지요.

뭐, 사람 죽이는 것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일은 아니에요. 어차피 여자를 빼앗게 되면 반드시 남자 쪽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죽일 때는 허리의 검을 쓰지만, 당신들이야 칼 대신 뭐 권력으로 죽이고 돈으로 죽이고, 아니면 그럴싸한 거짓말로 죽이기도 하지요. 그야 물론 피를 흘리지도 않고 사람은 멀쩡히 살아 있으니 죄가 아닐 수도 있겠죠......그러나 그래도 이미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누가 더 죄가 깊은지 따지고 들자면 당신들 쪽이 더 나쁜지 내가 더 나쁜지, 사실은 모르는 일이라고요(비웃는 듯한 웃음).

그러나 남자를 죽이지 않고도 여자를 차지할 수 있다면 그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지요. 아니, 그 때 내 속마음은 가능하다면 남자를 죽이지 않고 여자를 차지하자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저 야마시나 역로에서는 도저히 안 될 얘기였지요. 그래서 그 부부를 산 속으로 데리고 들어갈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좀 해봤습니다.

그것도 뭐 별로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우선 그 부부와 인사를 터서 길동무가 된 다음에 이렇게 말했지요. 저 너머 산에 고총이 하나 있는데 그곳을 파보았더니 거울이며 칼 같은 게 많이 나왔다, 내가 아무도 모르게 저 산 덤불 속에 그것들을 묻어 놓았다, 만일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기만 하면 뭐가 됐든 헐값으로 팔아넘길 생각이다......뭐, 그런 얘기를 좀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슬슬 마음이 동하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요, 사람 욕심이란 게 참 무서운 것 아닙니까? 그 때부터 채 삼십 분도 안 되어 그 부부는 나와 함께 말을 몰아 산실로 향했지요.

덤불 숲에 이르자 나는, 보물은 저 안쪽에 묻어 놓았다, 같이 가보자고 말했습니다. 사내는 욕심이 목까지 찬 상태였으니 덤불 숲으로 들어가자는 것을 반대할 턱이 없었지요. 그러나 여자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더군요. 하긴 덤불 숲이 어지간히 험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실은 그것도 내 계획대로 척척 들어맞는 일이었는지라 여자만 남겨두고 나는 그 사내와 덤불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덤불 숲은 한참이나 대나무만 빽빽합니다. 그러나 반 정쯤 들어가면 약간 툭 트이면서 삼나무 숲이 나와요. 일을 치르기에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지요. 나는 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며 보물을 저 삼나무 아래 묻어 놓았다고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 그런 말을 듣자 사내는 비쩍 마른 삼나무가 듬성듬성한 숲 쪽으로 열심히 헤치고 갔습니다. 그러자니 대나무는 드물고, 삼나무만 여러 그루 줄지어선 곳이 금세 나왔지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느닷없이 사내는 붙잡아 쓰러뜨렸습니다. 그 사람도 칼을 차고 다니는 사내이니 힘이 상당했을 테지만 너무 뜻밖에 당하는 일이라 막아낼 재간이 없었을 겁니다. 벼락같이 삼나무 둥치에 꽁꽁 묶어 버렸지요. 밧줄이요? 밧줄이야 도둑질을 해먹고 사는 몸이니 언제 어떤 담을 넘을지 모르는지라 항상 허리춤에 차고 다녔지요. 물론 소리를 내지 못하게 대나무 잎을 입에 가득 물렸으니까 다른 문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사내를 해치우고 나서 이번에는 여자에게 당신 남편이 급한 병이 난 것 같으니 같이 좀 가줘야겠다고 말하러 뛰어갔습니다. 이 도한 내 계획대로 척척 잘 맞아 떨어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자는 삿갓을 벗은 채 내 도움을 받아가며 덤불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당도하고 보니 남편이 삼나무 등걸에 묶여있었던 거지요. 여자는 그 꼴을 보자마자 어느 틈에 꺼냈는지 단도를 품에서 번쩍 뽑아들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그토록 기가 센 여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 순간 내가 자칫 방심이라도 했더라면 일격에 옆구리를 찔렸을 것입니다. 아니, 가가스로 피하기는 했지만 연달아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통에 아주 다쳐도 크게 다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명색이 다죠마루 아닙니까, 굳이 칼을 뺄 것도 없이 대충 막아서 여자의 단도를 땅바닥에 떨어뜨렸지요. 아무리 성깔있는 여자라도 무기를 잃었으니 그제는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나는 마침내 내 생각대로 굳이 사내를 죽이지 않고도 여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사내를 죽이지 않고도......그렇다니까요, 나는 그런 상황에서 사내까지 굳이 죽일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요, 쓰러져 울고 있는 여자를 뒤로하고 내가 덤불 숲 밖으로 도망치려는데 여자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제 팔에 매달리는 겁니다. 게다가 띄엄띄엄 울부짓는 소리를 들어봤더니, 당신이 죽든지 내 남편이 죽든지 둘 중의 한 사람은 죽어달라, 두 사내 모두에게 치욕을 보인 건 아예 죽느니보다 괴롭다, 그러더란 말입니다. 그리고요, 두 사람 증 누가 됐든 살아남은 사람을 따라가 살겠다, 그렇게도 말합디다. 헉헉 흐느끼면서요. 나는 그 순간 여자의 남편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음울한 흥분)

이런 얘기를 하면 분명 나를 당신들보다 훨씬 잔인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그건 당신들이 그 여자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예요. 특히 그 순간의 불타는 듯한 눈동자를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지요. 나는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비록 벼락을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여자를 꼭 내 마누라로 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누라로 삼겠다......그때 내 머릿속에는 그저 그 한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천한 색욕이 아니었어요. 만일 그 때 색욕 외에는 아무 바라는 게 없었다면 나느 여자를 발로 차고 도망쳤을 겁니다. 그랬다면 내 칼에 그사내의 피를 묻힐 일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어슴푸레한 덤불 숲에서 그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 순간, 나는 사내를 죽이지 않고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그 사내를 죽이더라도 비겁한 수를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그 사내를 밧줄에서 풀어주고 칼을 들라고 했습니다.(삼나무 둥치에 떨어져 있던 게 그 때 잊어버린 밧줄입니다.) 사내는 얼굴색이 변한 채 두툼한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러고저러고 할 것도 없이 득달같이 덤벼들었습니다. 그 칼싸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새삼 말할 것도 없겠지요. 내 칼은 스물 세 합 만에 사내의 가슴팍을 뚫었습니다. 스물 세합씩이나 칼질을 주고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사내, 딱 한사람 뿐이었으니까요.(쾌활한 미소)

나는 사내가 쓰러짐과 동시에 피 묻은 칼을 든 채 여자쪽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여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거예요. 나는 여자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삼나무 숲 사이를 찾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대나무 낙엽 위에 그럴싸한 자취라고는 없었습니다. 귀를 기울여봐도 들리는 건 그저 사내가 내지르는 단말마의 신음뿐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칼싸움을 시작하자마자 그 여자는 사람을 부르러 덤불 숲을 헤치고 달아났는지 모른다......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이번에는 내 목숨이 걸린 일인지라 칼과 활, 화살을 빼앗아 드는 길로 나는 당장 조금 전의 산길로 뛰어나왔습니다. 여자의 말이 그때까지도 거기서 조용히 풀을 듣고 있더군요. 그 위의 일은 들어봤자 별 쓸데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성안에 들어오기 전에 칼만은 팔아치웠습니다......내 자백은 이것뿐입니다. 어차피 한번은 가죽나무 꼭대기에 매달릴 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부디 극형에 처해주시오. (몹시 당당한 모습)

 

 

기요미즈데라에 가 있던 여자의 참회

 

그 푸른색 평복 차림의 사내는 저를 제 마음대로 해버리고는 묶여 있던 남편을 쳐다보며 비웃기라도 하듯이 웃었습니다. 참말 제 남편은 얼마나 분했을까요.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온몸을 묶은 밧줄이 더욱 살을 파고들 뿐이었지요. 저도 모르게 나면 곁으로 반은 구르다시피 하며 다가갔습니다. 아뇨, 가까이 다가가보려고 발버둥을 쳤던 거지요. 제가 움직이자마자 그 사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발로 차서 넘어뜨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입니다. 저는 남편의 눈 속에서 무러라 표현할 길이 없는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어라 표현할 길 없는......저는 그 눈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떨립니다.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던 남편은 그순간 눈동자로 모든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눈에서 번쩍인 것은 분노도 슬픔도 아니고......그저 저를 업신여기는 차가운 빛뿐이었습니다. 저는 사내의 발에 채인 것보다 남편의 그 눈빛에 더 아프게 두들겨 맞은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뭔가 비명을 내지른 길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푸른색 평복의 사내는 그새 어디론가 가버렸더군요. 그리고 삼나무 둥치에 남편만 묶여 있었지요. 저는 대나무 잎이 떨어져 두텁게 갈린 그곳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얼른 남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눈빛은 조금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여잔히 차디차게 업신여지는 속에 미움의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그때의 제 심정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비틀비틀 일어서서 나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여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당신과 함께 살 수는 없어요. 나는 일편단심 죽을 각오를 했어요. 하지만......하지만, 당신도 죽어주세요. 당신은 나의 치욕을 목격했습니다. 나는 이대로 당신 혼자만 남겨둘 수는 없어요.”

저는 가까스로 그 말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더럽다는 듯이 저를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찢어질 듯한 마음을 억누르며 남편의 칼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도둑놈에게 빼앗겼던 게지요. 칼은 물론 활도 화살도 덤불 숲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단도만은 제 발치에 떨어져 있더군요. 저는 그 단도를 주워들고는 다시 한번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 목숨을 내게 맡겨 주세요. 나도 바로 뒤따르지요.”

남편은 제 말을 듣고서야 겨우 입술을 움직였습니다. 물론 입 안에 대나무 잎사귀가 가득 물려 있었는지라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입모양을 보고 곧바로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남편은 저를 업신여기는 그 표정 그대로 “죽여라”라고 단 한마디를 한 것입니다. 저는 거의 넋이 반은 나간 채 남편의 옥색 저고리 가슴팍에 단도를 푸욱 찔러 넣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도 다시 정신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겨우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남편은 밧줄에 묶인 그대로 이미 숨이 끊겨 있었습니다. 그 창백한 얼굴에 대나무 섞인 삼나무 숲의 하늘에서 서녘 해가 한줄기 비치고 있었지요. 저는 울음을 삼키며, 죽은 남편의 몸을 묶은 밧줄을 풀어냈습니다. 그리고는......그리고는, 제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그것만은 제가 더 이상 말씀드릴 힘도 없네요. 아무튼 저는 어떻게도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도를 목에 대보기도 하고 산모퉁이 연못에 몸을 던져보기도하고 온갖 짓을 다해봤습니다만, 결국 이렇게 죽지 못하고 살아있으니 그것도 자랑이라고 늘어놓을 일은 못 되겠군요.(쓸쓸한 미소) 저처럼 칠칠하지 못한 여자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도 돌봐주시지 않는 모양이지요. 하지만 남편을 죽인 저는, 도둑놈에게 겁탈을 당한 저는 대체 어찌해야 좋을까요? 대체 저는.......저는......(갑자기 크게 통곡한다)

 

 

처녀 무당의 입을 빌린 혼령의 말

 

도둑놈은 내 아내를 겁탈하고 나더니 그 자리에 앉아 온갖 소리로 아내를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 말을 할 수 없었다. 몸뚱이도 삼나무 둥치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도 몇 차례나 아내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사내의 말을 믿지 마라, 무슨 소리를 해도 거짓말인줄 알아라......나는 그런 뜻을 전하려 했다. 그러나 아내는 맥없이 대나무 낙엽 위에 앉아 그저 네 무릎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둑놈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꼴이었다. 나는 질투심에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도둑놈은 통이야 팥이야 말재간도 좋게 주워섬겼다. 일단 외간남자와 살을 맞댄 이상 앞으로 저 남편과는 사이좋게 살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남편을 따라가 사느니 내 아내가 될 생각은 없는가, 나는 당신이란 여자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탓에 이런 엄청난 짓마저 저리는 것이다......도둑놈은 대담하게도 그런 말까지 들고 나섰다.

도둑놈의 그런 말에 아내는 홀린 듯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때처럼 아름다운 아내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아내가 제 눈앞에 꽁꽁 묶인 나를 두고서 그 도둑놈에게 무어라 대답을 했던가. 나는 중유를 헤매는 몸이나 아직도 그때 내 아내의 대답을 떠올리면 진에의 불길이 훨훨 타오른다. 아내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그렇다면 나를 어디에든 데려가 주세요’라고(긴 침묵).

아내의 죄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것뿐이이었다면 내가 지금 이 어둠 속에서 이토록 괴로워할 일도 없다. 아내는 꿈이라도 꾸듯 멍한 모습으로 도둑놈에게 손을 잡혀서는 덤불 숲 밖으로 나가려다 갑자기 얼굴빛이 하얘지더니 삼나무 둥치에 묶인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을 죽여줘요. 저 사람이 살아있는 한 나는 당신과 함께 살 수 없어요.”

아내는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고함을 쳐댔다. 저 사람을 죽여줘요...... 그 말이 아직도 폭풍처럼 저 머나먼 어둠의 나락 속으로 나를 거꾸로 떨어뜨리려 한다. 이제까지 단 한번이라도 그보다 더 가증스러운 말이 인간의 입에서 나온 적이 있었을까. 단 한번이라도 그토록 저주스러운 말이 인간의 귀에 닿은 적이 있었을까. 단 한번이라도 그토록......(갑자기 솟구치는 듯한 조소). 그 말을 들은 순간, 도둑놈조차 얼굴빛이 하얘져 버렸다.

“저 사람을 죽여줘요.”

......아내는 그렇게 외치며 도둑놈의 팔에 매달렸다. 도둑놈은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볼 분이고 죽인다고도 죽이지 않는다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도둑놈의 단 한번의 발길질에 아내는 폭삭 고구라졌다.(다시 솟구치는 듯한 조소) 도둑놈은 조용히 팔짱을 끼고는 내게 눈짓을 던졌다.

“저 여자를 어떻게 해주면 좋겠나? 죽여줄까 아니면 살려줄까? 대답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돼. 어때, 죽여줄까?”

나는 그 말만으로도 그 도둑놈의 죄는 용서해주고 싶다.(다시 긴 침묵)

내가 잠시 망설이는 틈에 아내는 뭐라고 한마디 부르짖더니 그 길로 순식간에 덤불 숲 안쪽으로 뛰었다. 도둑놈도 졸지에 펄쩍 뛰었으나 아마 옷자락도 잡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환영처럼 그런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그렇게 달아나버리자 도둑놈은 칼이며 활과 화살을 챙겨들고는 내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한 줄만 끊어주었다.

“이번에는 내 목숨이 아슬아슬하게 생겼어.”

나는 도둑놈이 덤불 숲 밖으로 사라지며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 다음에는 세상이 온통 고요했다. 아니, 아직도 누군가 우는 소리가 난다. 나는 밧줄을 풀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소리를 알고보니 나 자신이 울고 있는 소리였다.(세번째의 긴 침묵)

나는 가까스로 삼나무 둥치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뚱이를 일으켰다. 내 앞에는 아내가 떨군 단도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는 단칼에 내 가슴을 찔렀다. 뭔가 비릿한 덩어리가 내 입안에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고통은 조금도 없다. 그저 가슴이 차갑게 식자 주위가 한층 고요히 가라앉아 버렸다. 아아! 무어라 말할 길 없는 고요함. 이 산그늘 덤불 숲 위의 하늘에는 작은 새 한 마리도 와서 울지 않는다. 그저 삼나무 대나무 가지 끝에 쓸쓸한 햇볕이 떠돌고 있을 뿐이다. 햇볕이......그것도 점점 희미해져간다......이제 삼나무도 대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쓰러진 채 깊은 정적에 싸여 있다.

그때, 누구인가? 발소리를 죽이며 내 곁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쪽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어느새 엷은 어둠이 자욱하게 서려 있다. 누구인가......내가 알지 못한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가만히 내 가슴팍의 단도를 뽑아냈다. 그와동시에 내 입 안에는 다시 한 번 울컥 핏덩이가 치밀었다. 나는 그저 그뿐, 영원히 중유의 어둠에 가라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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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days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5 걍 쉽게 생각하면 진실의 상대성. 객관성이라는 게 가능한가 모 이런 물음을 던지는 소설인듯 해요. 세번씩 읽은 줄리엣님이 있어서 몬가 헛되지 않은 기분이 ㅋ
  • 답댓글 작성자juliet~~♥ | 작성시간 08.12.15 그럼 다행이다.ㅋ
  • 작성자angie | 작성시간 08.12.15 데이즈, 이 소설 좋아하믄.... see what i wanna see 도 보지 그랬어^^ 이 뮤지컬 나의 올해 베스트 3중 한 편인데
  • 답댓글 작성자days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15 보구싶땅...앤지 언니의 베스트 나머지 두 편은 뭔지 궁금해~
  • 답댓글 작성자angie | 작성시간 08.12.15 하나는 간만에 돌아온 나의 "지킬&하이드" 다른 하나는 "형제는 용감했다". 특히 형제는 강추! 사랑얘기만 점철된 뮤지컬과는 다른 훈훈함을 줘서 넘 좋았어~. 근데 소극장에서 넘 큰데로 옮겨서 어떻게 연출이 바꼈을지 조금 걱정이긴 하다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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