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06]
2021. 02. 08 (월)
경이롭기만 한 사바나
KBS-TV ‘동물의 왕국’이 시작되면 아버지는 늘 어린 나를 옆에 앉히고
프로그램을 함께 보곤 하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
초원은 일찍부터 동경하는 원시의 향수가 되었지요.
세렝게티의 사바나 지역은 광활한 초원입니다. 초원의 주인은 30여종의
초식동물이지요. 1년 내내 쉬지 않고 풀을 찾아 떼를 지어 다니지만,
초원 순례자들도 때가 되면 한 곳에 집결한답니다.
출산기가 바로 그때죠. 포식자들을 피해 출산할 안전지대가 따로 없으니
한 곳에 집결해 출산하므로 희생을 줄여보려는 것입니다. 대규모의 야전
산부인과가 문을 열고 장엄한 생명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이 기간에 무려 수만 마리의 새끼가 태어납니다. 한 순간, 도시 하나가
만들어지는 셈이죠. 새끼들은 어미 뱃속에서 나오면 곧바로 홀로서기를
시도합니다. 두어 시간 뒤엔 겅중겅중 뛰기를 시작해요.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을 해냅니다.
개중에는 안쓰러운 장면도 있어요. 가냘픈 다리로 홀로서기를 시도하지만,
몸이 약한 새끼는 주저앉을 수밖에요. 도전이 이어질수록 새끼는 지쳐가고
이를 보는 어미의 눈빛은 불안합니다.
생존하려면 무리와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어미는 귀를 세웠다 오므렸다
초조함을 보이지요. 새끼를 쳐다 보았다가 무리를 보았다 하면서. 마침내
무리가 이동을 시작하면, 어미의 발길이 무거운 건 동물도 마찬가집니다.
몇 걸음을 떼다가 돌아오고, 다시 무리를 바라보지만 걸음을 떼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이어지죠. 새끼를 데려가고픈 어미, 어미를 따라가야
산다는 새끼의 몸부림이 이어질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절박함이
상당수의 새끼들을 일으켜 세운답니다.
놀라우리만치 리얼하게 포착하는 초원의 생존질서, 신비한 자연의 법칙을
경이롭게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자, 표범 같은 초원의
포식자들도 굶어 죽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도 생존 위협이 늘
따르고 있음을.
흥미로운 것은 생각보다 초식동물의 평균 수명이 짧지 않다는 점이고,
개체수가 줄지 않을 뿐더러 나름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는
육식동물과의 황금비율이 수만 년째 유지된다는 데서 알 수 있어요.
어떤 이유 때문일까. 우선 육식동물은 먹이를 나누지 않아요. 독식을
위해 단독 사냥을 즐기고, 영역 싸움도 치열합니다. 때로는 동족을 죽
이기도 하지만, 사냥에 실패하면 자기 영역을 배회하다가 굶어 죽는
상황도 피할 수 없습니다.
타 영역을 넘보다 공격을 받아 다치고 병들어 죽기도 해요. 무리 보호가
없으니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위기를 불러 새끼가 성체로 자랄 확률을
떨어뜨립니다. 미래의 경쟁자로 인식하면 남의 새끼를 물어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초식동물은 전략적이지요. 집단생활로 서로를 보호하고, 어린
새끼들은 무리에 중심에 두어 움직입니다. 집단을 이루면 사자의 공격도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맹수들은 초식동물의 무리를 흩어놓는 전략을 펼칩니다. 여기에
말려들면 무리에서 이탈하는 새끼가 생기고, 병들거나 다친 것들이 뒤
쳐지면서 포식자의 먹이로 낙점을 받게 됩니다.
사바나의 생존질서는 적자생존만으로 설명이 어렵습니다. 일방적인
강자의 공세만 있다면 초식동물은 멸종되고, 이는 육식동물에게
치명적 환경을 만들어 공멸을
부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바나의 공존이란 불문율이 여전히 지켜지는 걸 보면,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자 생존법과 집단 생존법이
황금률의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여서죠.
강자든 약자든 생명력은 질깁니다. 생명의 기적과 생태계의 풍요로움은
다 생존과 번식에서 생겨납니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초원의
대원칙입니다. 이점에서는 인간사회라고 다를 바 없어요.
사람도 주저앉는 순간 위기가 옵니다. 살아있으려면 어깨를 짓누르는
어떤 절망의 상황도 떨치고 일어나 걸어야만 합니다. 눕지 말고 걸어라.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요.
-이관순 소설가/daumcafe/lee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