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7]
2022. 08. 08(월)
황금의 시간은 바로 지금!
나도 한 때는 아름다운 노년을 꿈꾼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면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을 벗 삼아 남은 생을 자족하면서 살겠다는 꿈을 키웠었다. 그러다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지만….
나에게 선망의 꿈을 불어넣은 사람은 친구였다. 남편은 고등학교,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인 부부는 50대부터 10년 계획을 세워 노후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은퇴 후 자연에 묻혀 살면서 1년에 두 번 해외여행을 다니겠다고 했다. 해외여행이 힘에 부칠 나이가 되면 제주에서 1년 살고, 남해, 고흥, 속초, 담양, 안면도 등으로 둥지를 옮겨 다니며 노매드 인생을 살겠다고 했다. 그의 은퇴 후 10년 계획은 치밀하고 촘촘했다.
모든 걸 아끼며 구두쇠처럼 살아도 목표가 있는 삶을 사니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다. 친구 내외는 시간이 될 때마다 시골에 내려가 심을 식물 종자와 나무를 찾아 5일장을 돌았고, 여행에 필요한 각종 용품과 옷가지 준비를 낙으로 삼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렇게 많은 날이 지나갔다. 건장했던 친구가 정년을 1년 앞두고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는, 여섯 달도 못 채우고 죽고 말았다. 들판에 덜렁 혼자 남게 된 친구 아내가 안쓰럽고, 무거운 현실에 가위눌리는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다.
원망과 분노, 슬픔이 몸을 탈진시키면서 우울증을 불렀고, 사람을 피하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외출을 멈춘 채 전화도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만 선별해 받다가 그마저 전원을 꺼놓을 때가 많았다. 깔끔한 성품 탓에 반질반질 윤이 나던 집안 살림에 먼지가 안고,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집안이 헝클어졌는데도 치우거나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엄마의 집을 정리해 주려고 내려왔다가 한숨만 말아 쉬었다.
방마다 널린 전원생활에 필요한 용품들. 구석구석에 처박은 씨앗 봉지들. 열린 대형 여행용 가방엔 텍이 그대로 달린 옷가지들로 정신이 사나웠다. 어떻게 정리 좀 할까 했던 아들도 적당한 선에서 손을 들고 말았다. 하나같이 두 분의 꿈이 차 있던 것들이고, 소망했던 것들이다.
나는 그 허망함을 보고 전원의 꿈을 접기로 했다. 미래를 담보하려다 오늘을 망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들면서였다. 2년쯤 지나 아내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았다. 우리 내외와는 어울려 여행을 다닐 만큼 허물없이 지낸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가겠다고 할 때 타박하지 않았다. 만나보니 생각보다 표정이 밝았고, 생활도 좋아 보였다.
그녀는 아내를 향해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오지 않은 미래를 좇다가 오늘을 실패한 사람”이 나라며, “오늘 맑았던 하늘이 내일은 비”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편이 더 좋아지고 자유로울 때 하겠다고 미룬 일이 있다면 지금 시작하라고 권했다.
어제는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친구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37년 동안 사회학을 가르친 친구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낸 마지막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강의를 마치면서 칠판에 이렇게 쓰고 각자의 생각을 적어 내라고 했다.
“말기암으로 5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행을 가겠다.” “소문난 맛집을 순례하겠다.” “등 돌린 친구들과 화해를 하겠다.”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라는 등 돌발적인 질문에 학생들은 비교적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저마다 가슴에 담았거나 그려온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만이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교수가 학생에게 다가가 주의를 주었다. “무엇이라도 쓰게. 아무것도 안 쓰면 영점 처리된다네.”
학생은 그 후에도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과제 제출 5분 전이란 소리를 듣고서야 무언가를 단숨에 적었다. 학생이 제출한 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일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일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며 사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 수밖에는, 그것이 남은 삶을 향한 내 사명이다.”
그 학생만이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이해하고 있었다. 100여 명의 학생 중 그만이 유일하게 과목 성적 ‘A+’을 받았다.
'do it now!' 바로 지금 시작하라! 과거는 돌릴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유일한 삶은 오늘뿐이지 않은가. 종이를 찢기는 쉬워도 붙이긴 어렵듯,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오늘이 없으면 덧없어 지는 것이 내일이다. 미래는 내 것이 아니므로 할 일이 있다면 지금 시작해야 한다.
어제를 녹여 내일을 만드는 용광로의 시간은 지금 이 시간, 오늘뿐이라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최고의 선물은 현재이다.(giving is the best preseant.)"라고.
삶에 황금의 시간은 내가 숨 쉬고 있는 바로 지금!
-소설가 dacafe 이관순의 손편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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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변무섭 작성시간 22.08.08 '논두렁의 낫' 이야기가 잊혀지질 않습니다. 논두렁에서 풀을 깎다 몸이 불편함을 느낀 농부가 집에 돌아와 눕게 되었습니다. 놓고 온 낫이 생각나서 낫을 가지러 갈 기력은 없고 그 걸 가지고 오라고 식구들에게 이르고는 바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세상일에 충실했다는 흐뭇한 일이기도 하고 세상 재물에 애착을 가졌다고 비난하기도 하겠지요. 어쨋든 내일은 알 수가 없는 것. "지금, 여기" 제일 소중하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주변에 하나 둘 세상을 떠납니다. 몇 시간 전, 며칠 전만해도 어쩌구 저쩌구.... 했는데... 보람있고 바람직한 일로 어쩌구 저쩌구도 있지만 허망한 일에 어쩌구 저쩌구도 비일비재할 진데, 오늘도 남의 눈 티끌은 현미경 없이도 잘 보이나, 내 눈에 대들보도 아무리 강력한 확대경을 들이대도 보지 못하는 것이 범인이라면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고, 모순의 존재인지 헤아리기 어렵기만 한데 헤아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또한 우리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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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비드 작성시간 22.08.08 늘 존경하고 뵙고 싶었던 이관순님!
오호윤집사입니다. 다윗4에서 교회학교에서 함께 지나던 때가 그립습니다.
늘 손편지 읽으며 메마른 내 정서를 촉촉히 젹셔준 글에 감동과 감사를 올립니다.
지금은 안산에서 노후를 보내며 손주들과 지냅니다.
계속 주옥같은 손편지나 다른 글들을 읽으며 주님의 은혜를 맛보겠습니다.
God bless you!!
오호윤 올림 -
작성자이관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8.08 다비드가 호윤 집사님이셨군요 기억하고 말고요. 지금은 안산에 계시군요
이렇게 안부 나눌 수 있어 반갑고 귀합니다
댓글 답글이라도 자주 나누었으면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복하세요
하나님 은혜 속에... -
답댓글 작성자다비드 작성시간 22.08.2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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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기코끼리 작성시간 22.08.08 하루살이처럼 충실하게 하루를 산다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게 충실히 살다 간들 후회가 없을까요.
어쨌든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미뤄놨던 것에 대한
아쉬움은 늘 남는게 인생이라지만
친구분 부부의 이야기는 너무 애틋하네요
오늘 이야기는 무언가
많은 걸 생각하고 곱씹어보게 하는 글이네요
좋은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