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와 사난다의 인도 푸네 오쇼 명상휴양지 여행기
2003년도에 두 번 째 다녀간 이후로 23년만의 푸네 방문이다.
푸네 오쇼 휴양지는 예전과는 많이 변해 있었다.
아직 하루도 안 지내보았기에 그 안쪽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달라진 그 모습은 한편으로는 내 가슴에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전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왜 그들은 자기들 명상의 고향으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가?
왜 저 멀리 멀리 가버리고 있는가....
첫날, 쿤달리니 명상 시간에 마구 울었다.
진행자가 옆에 다가와 티슈를 건네며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눈물 콧물을 훔치며 “노 프라브람” 한마디 하고는 그를(그 여자를)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계속 울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나의 명상 내공(?)으로 정지시켜 보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둘째 날에는 그 전 시간에 진행된 나다브라마 명상을 하다가 또 다시 울음이 터져나왔다.
다음날에도 터져 나왔다.
왜 그랬을까?
처음엔 가슴 아래 가득찬 슬픔, 오래 전에 그곳에서 벌어진 여러 사람들과의 추억이 떠올라서 그랬지만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사티야르티가 지도하는 보디워크 트라우마 퍼실리테이터 트레이닝 그룹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심한 몸살을 앓으며 며칠째 울었다.
보디워크 전문가로서 70년대에 오쇼를 직접 세션해드리기로 했던 오래된 산야신은 그는
나를 보더니 ‘첫눈에도 목이 아주 스토롱하다’, ‘슈퍼 하트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캘리포니아 태생인 그는 7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상하고, 사랑이 많으며, 걸음 걸이는 바르고 경쾌하며, 왠만한 젊은 사람보다도 춤을 잘 추는 정통 산야신이었다.
한번은 실습 시간에 나를 세션해주던 파트너도 울고, 옆에서 실기를 지도해주던 보조 진행자도 울고, 통역을 해주던 사난다도 울고 나도 같이 울었다. 네 사람이 함께 껴안고 울었다.
파트너가 나눔의 시간에 말했다.
“제가 같이 운 것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리아의 슬픔 속에는 기쁨이 같이 들어 있었어요, 저는 기뻐서 울었습니다.”
다른 파트너는 말했다. " 이 사람의 슬픔은 감정이 터져나오는 그런 울고불고 하는 슬픔이 아니라 침묵 속으로 사라져 가는 슬픔이었어요."
또 다른 파트너는 나를 세션해 주다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인도인으로 이미 여러 에너지 세션 전문가이기도 했다. 수염과 가슴, 전신에 털이 많은 전형적인 인도인이다.
“와우! 여러분! 제 몸에 털이 모두 빳빳이 일어났어요. 이 사람 몸에서 엄청난 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울고 있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슬픔은 인간의 슬픔이 아닙니다. 붓다의 슬픔입니다. 모든 붓다는 중생의 불행한 모습들에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이거든요.”
그는 나에게 깊이 호흡을 몇 차례 하라며 에너지를 안정시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좋아요. 좋습니다. 자, 명상에 계속해서 들어가세요. 얼굴이 평온하게 명상적으로 변했네요. 하지만 붓다는 마스크가 없습니다.
어떤 마스크도 없는 것이 붓다입니다. 자 당신의 얼굴에서 명상가의 마스크를 내려놓으세요”
이런 얘기 말고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기분이다.
전에는 언젠가 인연되면 한 번 또 오지 했는데 이번엔 내년에도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심장을 떼어놓아두고 온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내 영혼의 고향이 그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 푸나 오쇼 휴양지가 아니라면, 또 사난다와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도, 체험할 수도 없는 감동적인 얘기, 재밌는 얘기,
나의 부주의 때문에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얘기들도 있기에 떠오르는 대로 쫌만 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