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12일 동안 사람 사는 집처럼 떠들썩하던 큰 집이
마치 수도원처럼 고요했다. 10시간을 자동차로 여행하고 나니 몸이 구겨진 느낌이 든다.
1200m 고지대인 릴롱궤에서 600m 낮은 카롱가로 오니 머리까지 어지럽다.
7명의 천사들이 앉아 음악연습을 하고 춤을 추던 거실에 들어오니 왈칵 외로움이 몰려온다.
그래도 짐은 정리해야하니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릴롱궤에서 앞으로 두 달 동안 먹을 것을 장을 봤으니
냉동과 냉장고로 들어갈 것들이 많았다. 다행히 오늘 저녁은 전기가 나가지 않아 일하기가 수월했다.
이제부터 혼자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일부러 더 많은 일들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일어났다. 아무리 피곤해도 모든 일을 무사히 끝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촛불을 켰다. 다시 수도원 같은 거룩함이 느껴진다.
이 고요함이 얼마만인가! 수사님들이 사시는 곳이라 늘 수도원 같았던 우리집이 갑자기 날아온
7명의 천사들로 말미암아 사람냄새가 뿜어 나오는 삶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아침저녁으로 지지고 볶는 음식냄새며 키보드소리, 색소폰소리 트럼펫소리가 울려퍼지는가 하면,
춤추는 천사는 어디에서든지 균형잡힌 늘씬한 몸을 흔들어 댔다.
낮에는 봉사하느라 온힘을 다써버린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기쁨을 주는 것이 나의 몫이라,
나는 내가 짜놓은 식단대로 저녁마다 그들에게 작은 천국의 기쁨을 줄 수 있었다.
나도 함께 저녁마다 음식을 즐기면서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나누는 기쁨, 또 내일은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 것인지 진지하게 의논하면서 꿈같은 시간들을 흘러 보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비록 세대는 다르지만, 특히 같은 언어로,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축복의 시간들을 나도 잊지 못하리라.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주시는 위로임이 분명하니 감사가 흘러나온다.
집에 돌아오니 예전처럼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수사님들과 함께 드리던 성무일도를
못한지도 2주가 넘었다. 밤늦게까지 요리하고 정리하고 나면 도저히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세상사는 맛이 너무 좋다보니 기도에 대한 갈망도 사라지는듯 했다.
이 세상 속에서 너무 행복하게만 사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점이 바로 여기 있다.
육체는 즐겁고 행복한듯한데, 영혼은 메말라 간다. 기도하지 않는 영혼이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는가?
성경을 읽을 시간도 없이 바빴던 2주간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이제 안도의 숨을 쉰다.
2주 동안으로 충분했다. 더 길었다면 내 영혼에 유익함이 없었으리라.
나는 먼동이 트는 붉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새벽공기를 들여 마셨다. 생명을 느끼게 하는 이아침을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다시 필요한 것은 내적 고독이었다.
영혼에 유익한 고독을 얻기 위해 이 먼 곳으로 피정을 온 내가, 그동안 너무 고독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홀로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은 순례의 길, 잠시 만나는 즐거움에 사로잡히면 목적지까지 갈 수 없는 것이니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야 하겠다. 오늘도 내 영혼에 유익한 것을 찾아 길을 떠난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한예종 정영균 작성시간 11.08.05 사랑하는 교수님 건강하시지요?? 북적이고 소란스러운 저희가 가고 나서 이렇게 또 주님이 함께 동행하셔서 은혜주시니 너무 감사하네요. 저도 이제 조금씩 한국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새벽을 깨우려고 노력중입니다. 쉽지는 않지만요.^^ 항상 많은 것을 몸소 몸으로 보여주시면서 가르쳐 주시는 교수님을 만난게 참으로 은혜인것 같습니다.
-
작성자Lucy714 작성시간 11.08.05 주님께 사랑받고 계신 아네스님..!! 2주의 알찬시간들...^^ 주님의 계회이 아닌지요??!! 당신의 시간을 아녜스님과 함께하신...^^
많은 군중을 놀라게하고..^^ 변화시키며 치유하시고..^^외딴곳,조용히 기도하신..^^ 이 모두가...!!! ^*~~
노인이라,자책하는 저에겐..^^ 활력의 보고입니다..!!! 주님께서는 꼭 필요한 곳에 도구로 쓰심을 우리는 잘 알지요..^^
이제 새로운 일들로 우리에게 행복을 나눠주시겠지요..^^ 힘 짱...!!! ~~~~~~~ㅇ
-
작성자호들 작성시간 11.08.08 보고싶은 교수님.....
-
작성자너울 하마 작성시간 11.08.08 감동적인 글이네요. 구구절절히 가슴에 와서 박히는 것 같습니다. 방금까지도 세속의 번뇌(?)에 헤메이던 마음이 정화가 다 되네요.^^ 감사드리고요 기도드리겠습니다.
-
작성자펠라 작성시간 11.08.12 내적고독..
세상일에 치여 내적 영혼을 채우는일에 항상 소홀히 하는 우리들...
오는 주일엔 성모승천대축일도 있고,. 조금더 주님께 다가가는 생활 하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