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아들 다니엘로부터 기분 좋은 메일을 받았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꼭 메일을 주고받는데. 어떤 때는 기쁜 소식,
어떤 때는 그의 실패담, 또는 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는 등의 힘을 빼는 소식도 온다.
아들의 나이 만 27살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건만,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나보다.
이번에 날아온 소식은 일주일 후에 베를린의 한 오페라하우스의 극장장이 다니엘을 만나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거의 2년 전에 시작된 것인데,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그런 제의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기에 내가 몹시 흥분했던 것을 기억한다.
추측컨대, 2년 전 그 극장장이 2011년부터 새로운 극장장으로 발령을 받고 자신이 함께 일하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접촉을 했던 것 같다. 2년이 지나도록 몇 번의 스케쥴이 잡혀 있었지만 그분의
바쁜 일정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나와 아들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지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일이어서 나를 다시금 흥분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요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왕성하게 연주활동하고 있는 아들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자부심도 없지 않지만,
그 전쟁터에서 살아 남아야하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다.자신이 창단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가야하는
어려움도 만만치가 않다.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작곡도 해야 하고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20명의 멤버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함께 음악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때로 스트레스에 시달림을 호소하는 아들의 딱한 사정을 들어 주며 위로하는 일 밖에는
이곳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
나는 먼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장래도 하느님께서 바른 길로 이끌어가 주심을 믿기에 마음이 편안 했다.
그러나 한 편, 엄마로서, 또 오페라극장에서 20년 동안 노래해온 선배로서 그 무엇인가
조언을 해줘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오페라하우스의 극장장들은
모두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권위적이고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아주 반대인 아들 다니엘이 그런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주의를 줘야할 것 같아 아들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사랑하는 다니엘아, 우선 네가 그런 좋은 기회를 받게 된 것에 대해 엄마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최선을 다하고 준비된 자들에게만 오는 특별한 기회이기에
그 어떤 결과를 떠나서 네게 축하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엄마는 네가 몹시 자랑스럽구나, 네가 이번 극장장님과의 만남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다음 사항을
유의해주면 좋겠어, 엄마의 노파심이나 잔소리라고 생각지 말고, 경험이 있는 선배의 충고라고 받아들여주면
고맙겠다.
1.) 너의 머리가 너무 길고 어수선해 보이니 미장원에 가서 손질 좀 하길 바란다.
2.) 만남에서 첫인상이 참으로 중요하니 네가 갖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정장 차림으로
가주길 바란다.(아들은 정말 멋을 내지않는 너무도 검소한 독일 청년이다.)
3.)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부디 친절한 인상을 주도록 힘써다오.
(아들은 말하기보다 남의 말을 듣는 편이며, 말 할 때는 자신의 생각을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비사교적(?)인 타입이라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4.) 그리고 그동안 신문에 났던 모든 좋은 평들을 다 준비해서 가져가거라, 지금은 자기 PR 시대이니까
주저할 것이 없단다.( 아들은 자랑하는 것을 잘 못하는 타입이다)
며칠 후 아들에게서 이런 답장이 왔다.
“ 사랑하는 엄마, 엄마의 좋은 조언에 감사드려요. 극장장님과의 만남은 아주 기분 좋고 편하게
잘 이루어졌어요. 그분은 내가 작곡하는 음악을 좋아하셨고, 그분은 지난주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우리 연주회 때, 그분의 대리자를 보내서 우리들의 음악을 이미 다 듣게 했고, 앞으로 더 긴밀하게
나의 작품 활동을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40~50대의 호주사람인데, 그분의 사무실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고, 그분은 나처럼 모자 달린 두꺼운 티를 입고 있었으며, 눈썹 위에는 피어싱을 해서 보석이 반짝였어요.
엄마, 이제 세상이 변할 걸 아셔야 해요. “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가 온 것이다.
나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내 안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서둘러 시작해야겠다.
아들은 내가 보낸 조언에 감사했지만, 단 하나도 엄마가 바라는 대로 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입고 행동하여 또 다른 자유로운 영혼을 그곳에서 만난 것이었다.
한국의 엄마들이여,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도록 꿈에서 깨어나자.
이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 가치관의 잣대로
아이들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며, 우리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엄마들로 추락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서, 그들의 삶이 빛 안에 머물며,
그들의 삶이 다른 이들을 위해 열매 맺도록 기도하는 일 뿐이다.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노랑나비 작성시간 11.11.17 젊은 대학생들과 살아온 엄마도 게임이 않되는데....우리 세대들은 그들과 말이 통하지 않지요 그러나 엄마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할려는 그 마음을 통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며 숨을 쉬어야 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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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펠라 작성시간 11.11.28 ㅎㅎ 다니엘의 답장이 정말 귀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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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milejina 작성시간 11.12.15 ㅋㅋㅋ 교수님 저두 이번에 제 딸아이의 진로를 놓고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편안한 길을 선택할것인가, 뜻하지않게 찾아온 도전과 모험의 길을 선택할건가,,,,, 많은 고민끝에 넓은 세상과 도전 모험 부모의 보살핌이 없는 갹팍한 환경으로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편견과 옳지않은 결정이라는 비난과 혹 실패하면 어쩌나하는 우려와 두려움등등과 싸웠고 많은흔들림을 경험했어요.결핍이 있는 환경에서 그 결핍을 스스로 이겨내며 멋지게 성장할 제 딸아이의 모습에 화이팅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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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16 사랑하는지나, 참 잘했어요. 모든것 엄마의 사랑과 용기였지요. 그동안의 보살핌이 좋은 열매를
맺을거에요. 후원회일도 그렇게 열심히 했으니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그대의 아이들에게
축복을 주시겠어요? 정말 고맙고 축하를 보내요.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카페에서 만나요.
나도 힘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랑해요. -
작성자smilejina 작성시간 11.12.16 교수님 격려의 말씀에 또 힘이 나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