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다시 헤어졌다.
우리가 28년 동안 이 얼마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 하면서 살아왔던가!
10살 때부터 한국으로 떠나간 엄마와 헤어져 살아온 다니엘은 방학이 되면 엄마를 만나러 한국으로 오곤 했다.
큰 기쁨으로 만나 한 달을 함께 보내고는 다시 헤어져야 할 때가 되면 우리 둘은 밤새도록 울어 퉁퉁 부운
눈으로 작별을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작은 어깨에 엄마가 싸준 먹을 것들로 가득 찬 백팩을 메고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파했던 나의 가슴속에 죄책감으로 멍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때도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느라 아들 곁을 떠나온 이기적인 엄마였다.
28살의 청년으로 자란 아들은 오늘도 여전히 백팩을 메고 사라졌지만, 그는 웃음으로 손을 들었고
나도 눈물 없이 힘차게 손을 흔들며 아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아들은 어른이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자 친구가 있는 독일로 기쁨과 기대를 안고
떠나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비록 열악한 땅이지만 이곳에 남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별은 결코 슬프지 않았다.
떠나기 전날, 아들이 좋아하는 콩장을 만들어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185cm나 되는 거구의 아들이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나와 눈물을 흘리며 내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 엄마 정말 사랑해요, 엄마는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 어떤 일이라도 엄마에게 일어난다면
나는 모든 것을 제쳐놓고 엄마에게 달려올거에요. 그걸 알고 계셔야 해요.“
나도 눈물 섞인 목소리로 사랑한다 말하며 키 큰 아들을 힘껏 끌어안아 주었다.
릴롱궤에서 카롱가까지는 8시간이 걸린다. 혼자 돌아오는 그 길은 마치 80시간이나 되는 듯 길었다.
집에 들어오니 그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한 달 전에 이곳에 도착한 독일 뮤지션들을 보살피느라 분주했던, 때로는 지쳤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그들이 불어대던 색소폰 소리, 트럼펫 소리, 트롬본 과 기타 소리에 집안이 늘 축제 분위기였는데,
그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는 내방으로 들어가 촛불을 켰다. 그 잔잔한 빛이 내 마음속까지 비치니 다시 평화를 느낀다.
아, 이 고요함을 내가 잊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을 뛰어넘으면 그 뒤에는 거룩한 내적 고독이
찾아오고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만난다.
하느님은 어느 곳에나 계신다. 시끄런 시장 바닥이나 춤과 노래가 있는 곳에도 계신다.
허지만, 누가 사랑하는 사람과 파티에서 데이트를 하려 하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장 은밀한 곳에서 만난다. 가장 은밀한 만남은 내가 홀로일 때 만 이루어진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은총의 시기가 온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곳에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것은 그분이 주시는 선물이다.
내가 그분의 선물에만 마음을 두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섭섭하시겠는가?
이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힘을 얻고, 그분의 사랑을 이곳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내게는 없다. 이것이 내가 이곳에 남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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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2.05 사랑하는 노을님, 감사해요. 아들을 둔 엄마들은 잘 알고있지요. 늘 곁에는 없지만 든든함을 주는....
오늘 주님의 날에 오랫만에 조용한 아침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다시 나의 일상이 시작되었네요.
그대에게도 은총이 가득한 주일이 되길바래요. -
작성자노랑나비 작성시간 12.02.05 인간적인 슬픔을 더 승화된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은총의 시간을 보내시는 주님의 딸 ~~언제 어느곳에서나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랑받는 아녜스!!그대 하느님의 사랑이 부럽네요~~하느님만이 모든것이 되심을 다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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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2.05 사랑하는 노랑나비님, 고마워요. 나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합니다.
그래요, 우리는 오직 " 주님, 당신은 나의 삶의 전부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 환경으로 나를 끌어들이셨으니 이곳은 영원한 피정의 집입니다.ㅎㅎ -
작성자아기사슴 작성시간 12.02.12 하느님과 아드님 다니엘의 든든한 후원자가 있으시니 참으로 든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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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펠라 작성시간 12.02.13 내적고독이 있는 은총의 시기.. 우리 모두가 꼭 가져할시간이지 않나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