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수사님이 지난달에 루수빌로를 떠나셨다.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카롱가에서 보내시며 미라클 기술학교를 만드셨고 루수빌로 공동체에서는 부원장의 직책을
맡아 많은 일들을 해내신 분이라 루수빌로가 텅 빈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피터 수사님이 안 계신 루수빌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루수빌로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고 고아들의 입에서도 그분의 이름이 오르내리질 않는다.
과연 한 달 만에 그분은 루수빌로에서 잊혀진 존재일까?
피터 수사님은 59세의 미국분으로 아프리카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오셨다고 한다.
20대에 평화봉사단으로 아프리카에 와서 봉사하다가 마리아 수도회에 입회하시어 오랜 세월을 수도자로서
지내시다가 루수빌로 공동체에 관여하게 되시면서 다른 소명을 느껴 6년전에 수도복을 벗고 선교사로서
계속 하느님의 일을 해 오신 특별한 분이다.
그분의 삶이나 영성은 그 어느 수도자보다도 거룩해서 사람들은 그분을 계속해서 수사님이라 불렀다.
내가 루수빌로 공동체에 오게 된 이유도 릴롱궤에서 수사님을 만나게 됨으로 이루어졌다.
피터수사님은 165cm정도의 작은 키와 작은 체구에 한쪽 어깨가 굽어진 외소한 모습의 선교사다.
그러나 그분이 루수빌로 공동체를 위해서 미국에서 들여온 재정적인 지원은 대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the little giant)
피터수사님은 얼마나 겸손하고 온유했는지 어린아이들부터 노인까지 그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의 사무실 앞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려 그분의 도움을 얻어가곤 했다.
자신의 집에는 냉장고도 없이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늘 관대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일컬어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가 아니라 “카롱가의 브라더 피터”라고 까지 할 정도로
존경을 받아온 선교사였다.
피터수사님은 미국 뉴욕 출신이지만 조상들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이민을 간 유럽계 미국인이다.
그래서인지 음악도 좋아하셨고 문학적인 면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
내가 카롱가로 오겠다고 결심했을 때, 피터수사님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며 만류하신 분이다.
카롱가는 말라위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고 기후도 덥고 사람들의 수준이 낮아서 나같은 예술가가 살기에는
안 어울리는 곳이라면서 큰 도시로 갈 것을 내게 권유했었다.
나는 그분께 ‘내가 이곳 말라위까지 오는 것은 예술가로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러 오는 것이니 잘 견디어 낼 것“이라며 그분을 안심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피터 수사님은 예민하시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그 누구보다 컸다.
그러나 그분의 여리고 고운 마음을 거친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주 상처를 입혔다.
그분의 선한 마음에 "No"를 못하시는 것을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지치게 했다.
루수빌로 공동체는 직원이 60여명이나 되는 큰 공동체다. 물론 다 말라위 사람들이다.
미국 카톨릭 재단이나 유니세프 등 여러 곳에서 후원을 받아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이 후원금이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를 피터 수사님이 늘 감독했기 때문에 말라위 직원들은 피터수사님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후원금은 들여오되, 돈은 우리맘대로 쓰겠다”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정서가 이곳에도 지배적이었던 것 같았다.
특히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하려들지 않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후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공동체에서도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이익을 어떻게
해서라도 챙겨 자기 호주머니를 채운다. 그래서 잘 사는 사람들은 아주 잘 살고 무지하고 선한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프리카 현실이다.
피터수사님의 정의롭고 순수한 의식이 이곳 루수빌로의 사람들과 잘 맞았을리가 없다.
심지어 원장 수녀님과도 갖고 있는 비전이 다르다며 고민하시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피터수사님이 루수빌로 카롱가를 떠나게 했던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후원금을 모아서 가져오신 다음날, 주일저녁에 강도 2명이 집에 들어와서 권총으로 협박하면서
미국에서 가져온 돈을 내 놓으라고 했단다. 그 강도들은 복면도 쓰지 않고 맨 얼굴로 수사님을 위협했는데
그 얼굴은 낯이 익은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언젠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낯이 익은 사람들이, 현금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
권총을 들고 나타났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같은 말라위 사람들이 한 짓이라 경찰들도 적극적으로 사건을 파고들지 않았는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피터수사님은 그후 충격으로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기 힘들어
집을 옮겨 가면서 깊은 고민 속에 빠졌다.때로는 목숨까지 위협 받은 두려움으로, 때로는 배신 당한 분노로 떨었다.
이 사건이 자신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고 많은 기도를 통해 자신은 더 이상 카롱가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수도복까지 벗어가면서 12년간 헌신해온 , 만 여 명의 고아들을 돌보셨던 이 공동체를 떠나야했던 선교사의 삶,
그것도 감사를 모르는 배신으로 얼룩진 이 불행한 사건은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이런 사건은 비단 피터 수사님뿐만 아니라 그 어떤 선교사에게도 일어날 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 목숨까지 빼앗아가려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있단 말인가!
이것은 우리들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피터 수사님의 부재는 루수빌로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그분은 내가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늘 관심과 도움으로 지켜주고 용기를 주셨으며
우리가 왜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지 소명을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모범적인 선교사였다.
피터수사님은 다른 선교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좌절을 맛보고 아주 아프리카 땅을 떠나 지금은 미국 뉴욕에
있는 마리아 수도회에 머물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자서전을 쓰고 있다는 메일을 나는 최근에 받았다.
그리고 피터 수사님은 내게 이런 격려의 말을 적어 보내주셨다.
“아그네스, 카롱가의 삶이 결코 쉽거나 순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두가
강한 사람이니 잘 견디어 낼 것입니다. 당신은 높은 비전과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 곧 당신이 카롱가에서 해야할 소명입니다.
당신은 음악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우리 인간들이 알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다른 일들을 그분께 맡기실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선교사를 하느님께서 가두어만 두시겠는가?
아프리카에 마음을 빼앗겨 30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은 그 언젠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온다.
예수님이 가신 길, 배신과 모욕, 육체적인 고통을 뛰어넘어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뒤를 쫒는 것이
참된 선교사의 길이라면, 아, 이 길은 진정 좁고도 험한 길이 틀림없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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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2.13 아기사슴님, 감사해요.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해치려고 마음을 먹으면 어쩔 수가
없겠지요.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악인들을 멀리 해주실 것입니다. 아멘! -
작성자smilejina 작성시간 12.02.15 ㅠ ㅠ........ 무엇이 그들을 변화하지 못하게 하는 건지......그들의 마음은 어쩌면 너무나도 오랜 역사적인 탄압 속에서 굳게 닫혀졌던건 아닌지...... 진정한 사랑의 호의가 그들을 움직이려면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건 아닌지....... 어쩌면 늘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사람은 어디나 있으니 그도 그중하나라는 심플한 생각도드네요... 여러가지 생각으로 잠시 마음이 복잡한 아침이네요... 그래도 힘내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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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2.15 지나님, 그렇지요, 때로는 너무 가슴이 답답해져요. 그러나 희망은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조금식씩 변화가 오고있어요.어느 공동체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힘들지만 개인 한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요. 마치 한방울의 비가 강과 바다를 넘치게 하듯이 말이에요. 선교사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희생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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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milejina 작성시간 12.02.19 결국 우리모두 특히 그곳에서 일하시는 교수님의 힘냄이 더 필요한 일이네요.....힘내세요....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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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펠라 작성시간 12.03.15 휴~ 아프리카에 십년을 지내온 저도 그들과 진정한 나눔을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선 더욱더 그들은 견제하곤 했었는데..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해내시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주신 용기를 잃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