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닷새를 지냈다. 옛날 친구들도 만나고 내가 예전에 다니던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즐거워 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토록 나를 자유롭게 할 줄이야....
뮌헨은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방의 중심지로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이다.
이곳에서 다니엘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국에서 지낸 3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까지
이곳에서 마쳤으니 다니엘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다. 나도 8년을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정이 많이 든 곳이다. 나의 친구들이 있고 내가 즐겨 걷던 아름다운 길들이 있다.
그러나 다니엘 아빠와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러 이혼을 하게 된 후부터 뮌헨은 나에게
고통의 기억을 되살리는 슬픈 도시로 변해버렸다. 다니엘을 만나러 이 도시에 왔었지만
나의 마음은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처받은 여인이었다.
내가 뮌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다니엘이 3살 되던 해, 다니엘의 아빠가 이곳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시작 되었다. 우리는 오버멘징 이라는 좋은 주택가에 작은 정원이 달린
연립주택을 세 들어 살게 되었는데, 우리옆집에는 젊은 의사부부가 다니엘 또래의 아들
둘을 데리고 살고 있어서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가 금새 좋은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담을 터주고 아이들이 정원에서 맘껒 뛰어놀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때부터 세 아이들은 형제처럼 지냈고 부모들도 자주 만나서 함께 요리도 해가며 가깝게
지냈다. 내가 연주 여행을 떠나면 옆집에서는 다니엘을 잘 보살펴주었기 때문에 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베풀곤 했다. 아주 이상적인 좋은 이웃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후,의사부부가 이혼하게 되면서 여의사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 곁에 살게 되었다.
우리부부는 측은한 마음에 더 많은 사랑으로 그 여자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었다.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가게 됨을 나는 몹시 기뻐했으나 다니엘 아빠와
다니엘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여행은 가지만 아주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추진하는 성격이라 나는 가족을 두고 혼자 한국으로 갔다.
언젠가 내가 자리를 잡고 그들을 설득하면 따라와 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나는 2년 동안 한국과 독일을 일 년에 다섯 번씩 오가면서 나의 일과 가정을 지키려 했지만,
우리의 결혼 생활은 파경에 이르렀고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요즘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들이 많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그 어떤 좋은 목적을 위해서는 쉽게 자신을 희생시키는데, 독일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어리석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다니엘의 아빠는 인간적으로 많이 외로웠고, 여자가 자신의 일을
가족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몹시 불만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부부의 신뢰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 했다.
결국 다니엘 아빠는 6년 동안 친밀하게 지내온 옆집 혼자 사는 나의 친구와 관계를
드러내면서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사랑이 끝나는 것은 참으로 아프다.
이혼한 후,나는 다니엘을 설득해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3년을 함께 지냈다.
그 시간들은 우리 모자에게 많은 상처가 입혀진 고난의 시기였다.
다니엘은 방학이 되면 독일 아빠에게 보내졌고 독일에서 돌아온 다니엘은 엄마대신
옆집 아줌마가 아빠 곁에 있는 그 상황을 못견뎌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쳐야하기 때문에 다시 독일로 간 다니엘을 만나러 방학이 되면
내가 뮌헨으로 갔다. 그 때는 아픔이 가시기전이라 얼마나 뮌헨이 싫었던지 모른다.
내가 하느님께 회개하고 영적인 삶을 살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이따금
몰려오는 그들에 대한 배신감은 나를 분노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나의 미움도 점점 껍질이 벗겨져 얇아짐을 느끼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나를 자유롭게 했던 것은 내가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심한 후 부터였다.
더 높은 곳을 향해서 가는 나에게 과거로 인한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은 사치품이었다.
하느님은 내게 또 하나의 축복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바로 2년 전의 일이었다.
다니엘이 이끄는 안드로메다 오케스트라의 음악회가 뮌헨에서 3일 동안 계속 되었다.
그 중 하루를 골라서 나의 친구들과 함께 연주회장으로 갔는데, 멀리서 아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다니엘 아빠와 그 여자가 음악회를 온 것이었다.
그동안 나와 만나는 것을 꺼려해서 몇 년 동안 안보고 지냈던 우리들이 마주보게 된 것이다.
내가 뮌헨에 온 것을 다니엘을 통해 들었을테고, 또 음악회가 3일 동안 계속되니
자신들이 원치 않으면 내가 오는 날을 피해서도 올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오늘 나타난 것은
화해를 원하는 내적인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했다.
나는 다니엘 아빠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면서 성공한 아들을 둔 아버지를 축하 했다.
그도 나에게 성공한 아들을 둔 어머니를 축하 한다며 오랫만에 함께 웃었다.
그것은 경직된 웃음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진정한 웃음이었다.
나는 다니엘 아빠 곁에 서있는 그의 여자, 나의 옛 친구를 향해 두 손을 번쩍 들며 달려가서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 다니엘을 그동안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녀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화해하도록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것이 분명했다.
용서는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은 어느 날 요란스럽게 왔다가 이렇게 말없이 떠나가는 것이다.
이제 나는 영원한 사랑을 갈망 한다. 그 사랑은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모두에게 유익한 많은 열매가 맺어 진다.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행복을위해서 나는 뮌헨을 떠난다.
나는 홀로 떠나지만 이제 더 이상 슬픈 여인이 아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Lucy714 작성시간 11.01.11 아네스님..!! *^^* 이 위대한 사랑을 주시려 주님께서 뮨휀의 고통으로 단련을 주셨네요..^^
용감하고.. 위대한 사랑.. 의 주인이신 주님의 딸 ..!!! 아프리카의 자녀들이 힘 받으려..!! 사랑 받으려.. !!
기다리고 있습니다. 샬~~~롬.!!! ^*~ -
작성자선생님딸 작성시간 11.01.12 사랑과 용서. 그 두가지가 평생에 우리의 삶에서 숙제로 남겨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과제인것 같아요. 선생님의 마음이 모두에게 그리고 저에게 항상 전해집니다. 주님이 그러신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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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1.13 나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는 그대들에게 감사해요. 누구나 한번 이상을 치루는 마음의 병을 앓고 나면 더욱 건강해 진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지요. 사랑으로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다시 치유되는 법! 죽는 날까지 더 많이 사랑하렵니다. -
작성자아기사슴 작성시간 11.01.14 과거 집착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시는 교수님의 인생 역정이 참으로 드라맡익하면서 그동안의 아픔이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음은 그만큼 영적으로 성숙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되어지는군요. 계속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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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요셉 작성시간 11.01.18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딸입니다.
울보로 나를 만드시는 교수님!
당신의 삶을 알아갈때마다 나의 삶의 소중한 이야기가 하나씩
늘어갑니다. 그래요 영화제목같은 뭰헨을 그렇게 떠날수 있는 당신은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진정한 여인이요 어머니요 신앙인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