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을 정리하다 한 형제님과 주고 받은 편지를 보면서
이런 혼란과 분노를 우리 중 많은 분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이곳에 옮깁니다.
물론 지금 이분에게 답장을 한다면, 또는 이곳에 공개되는 형태로 썼다면
좀 더 온건하게 썼을 것입니다. ^L^
목회자되신 형제님들께서는 널리 양해해 주시길...
1. 08년 2월 한 형제가 보내온 편지
안녕하세요... ** 형제입니다.
아마도 #### 형제님으로부터 얘기를 들으셨을거라 생각됩니다.
이 카페의 아둘람으로 가는길 코너의 "**** 이야기"가 바로 제가 쓴 글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U.B.F출신입니다.
간다이님이 운영하는 "네비게이토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임"에서 ****이란 아이디로 올린 글들이
바로 제가 쓴 글들입니다.
지난주에 합정동 다운교회에 처음으로 갔었습니다.
몇 몇 네비지체들을 만났구요... 참으로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지금의 제모습은 UBF와 네비게이토 사상을 이어가는 BBB로 인한 후유증으로 많이 힘드네요...
정말이지, 요즘은 삶 자체가 너무 많이 힘듭니다.
교회를 떠난지도 5개월 가까이 되어갑니다.
갈렙 형제님... 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은데 20년 가까운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의 경험에서 잃어버린 신앙에 대한 회복,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회복,
한국기독교에 대한 신뢰의 회복등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제 마음은 많이 힘듭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도 결혼문제로 어머니와 약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힘듭니다. 이런 문제가 있을때마다 한국기독교에 대한 강한 증오심이 제 마음을 짓누릅니다.
네비출신들은 모임이라도 있는데 UBF는 모임조차 없습니다.
네비 모임에 나가도 UBF는 약간은 겉도는듯...
기쁨을 회복하고 싶지만, 요즘은 삶 자체가 지겹습니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많들어 놓은 선교단체가 증오스럽습니다.
캄캄한 앞길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2. 답장
형제님, 네비나 UBF의 문제가
형식주의, 율법주의, 획일주의 이런 것들에서 기인한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개혁한 더 복음적이고, 더 성경적이고
더 올바른 리더쉽과 제자도를 갖춘 선교회라면 문제가 없을까요?
저는 문제의 뿌리를 좀 다른 각도에서 봅니다.
그리고 이 들 양대 2기관이 부정적인 영향만 있었다고 할 수 없음도 우린 서로 잘 압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한 영혼이 소중하기에, 한 영혼이라도 걸려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제자 사역에 나선이들의 첫째 책임임을 인정하고 저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네비를 많이 비판하기도 했고
지금도 그 점에선 같은 생각입니다.
네비나 UBF, ENM이나 BBB, 등등 다른 어떤 형태의 제자사역을 하는 선교단체라 할지라도
간과하는 것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에 대한 혼동입니다.
성경공부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영적인 행위요
일반공부를 하고, 그들과 인간적인 정을 쌓고, 함께 술을 마시고, 같이 놀고 하는 등의 일은 육적인 것이라고 분류합니다.
저는 이것이 대단한 오만이요 편견이요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고 안하고가 영적이고 육적인 일을 가른다기 보다는 어떤 동기로 하느냐가 그것을 가른다고 믿습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오히려 그러한 편협한 이분법적 사상을 주입하고 가르치는 이들의 대부분이 육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당위 이면에 존재하는 육적인 동기 - 자신의 영향력 확대, 양적 공적의 확대, 존경, 세력의 크기가 안겨주는 경제적 안정 -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전문성을 높이고 보다 좋은 직업과 경력을 쌓기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아니 몇배로 더 고상한 영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지않는 이들과 깊은 우정을 쌓는 것, 바르게 음주하는 습관을 훈련하고 그 자리를 통해 허심탄회한 대화에 녹아드는 것도 얼마든지 영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역시도 책상머리에서 기도하며 성경을 지적으로 탐독하는 것과는 비견할 수 없는 영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자 양육을 선교회의 방식으로 잘 해내어 자신과 같은 비전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여러세대 키워내는 사람입니까?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이 아니라,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그러한 삶의 축복을 나누는 선한 간증이 넘쳐나는 사람입니까?
저는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니, 아무리 삶의 균형, 태도, 근본적 동기를 중요시하더라도
최소한 이러한 '영적 열매'는 궁극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영성의 실체를 달리 정의하고 발견하고 있습니다.
단 한 순간을 만났어도 평생에 잊혀지지 않는 참인간, 참하나님의 아들로 기억에 남을 수 있다면...
그는 그 누군가의 삶속에서 평생토록 그를 하나님께로 안내하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
네비나 UBF와 같은 사람들 대부분이 가까운 사람들에겐 무지 약합니다.
몇년을 같이 일한 동료들로부터 혐오와 배척까진 아니라도, 우려와 거리낌의 대상이 되거나,
조직이 바뀌는 이유등으로 흩어지고 나서는 궂이 다시 찾아 만나게 되지는 않는 사람들입니다.
옛적 동료들에게서 문득 안부의 인사가 오는 일도 없는...
여기에 영성의 실패가 있다고 봅니다.
<영적 가면을 벗어라>라는 책에서는 참된 영성의 실체를 다른 사람과 깊은 친교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서, 참된 영성의 실체는 변화되고 성화된 행위들, 외양에 있지 않고
내면의 변화에 있다고 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면의 '변화'(결과적 의미로서)보다는
내면의 변화를 갈구하고 도우심을 구하는 '태도'(과정의 의미로서)라고 봅니다.
좀전에 저의 아내가 밤잠을 못 이루고 깨어 나와 저에게 애통한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에게 충분히 관용하지 못하고 낮에 참다 못해 폭발했던 일(물론 사과하고 위로를 했다지만)
에 대한 후회로 인해 아내 마음은 많이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결과론적인 영성의 시각으로 보면 아내의 이런 모습은 판단받아 마땅한 모습일 것입니다.
매번 후회하면서 왜 그런 실수를 또하나 하는 마음이 저 자신의 마음한 켠에서도 불쑥 올라오고
낮에 저의 딸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이 못내 속상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 저의 아내는 저보다 몇 수 위의 영성의 사람임을 저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내의 깊은 갈망과 좌절 혼돈 느낌을 듣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많은 성경의 가르침이
현재적 사례를 통해 되살아나며 새롭게 저의 마음에 각인이 되곤 합니다.
저의 많은 글들이 아내와의 사소한 대화에서 길어내어진 것임이 이를 잘 반증합니다.
따라서, 아내의 그런 모습은 아직 미숙한 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이런저런 이유와 합리화를 하며 눌러 앉지 않고
그리스도가 약속한 천국의 삶 - 멀리 나가 사랑하는 게 아닌, 자기가 속한 장소로부터 사랑의 근원이 되어가는 부르심 - 을 위해
끊임 없이 자기을 개혁하려고 도전하고, 반복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사랑에 자신의 눈을 고정하고
현재적 좌절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는 태도 - 예수님이 복을 선언하신 그 가난함, 그 애통함
그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생각... - 에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실례로, 저의 아내는 아이들을 더 잘 품고 어린 마음을 다치지 않고 돌볼 수 있는 그 변화 한가지를 구하기 위해
벌써 일년이 넘도록 새벽기도를 나가고 있습니다. 몸이 약하여, 잠이 부족하면 머리가 잘 아프면서도 말이죠...
내면의 변화는 그것을 참되게 추구해본 사람만이 그것이 얼마나 어러운 것인가를 알게됩니다.
사랑의 행위를 일시적으로 해 내기는 쉬워도,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참된 변화를 추구하며 자신의 한계에 눈을 뜬 사람만이 참되게 그의 존전앞에 무릎꿇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교회 방식의 영적 리더쉽이 해로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소위 '영적'이라는 표현을 통해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을 통제하고 추구하는 만큼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 한다는 사상을 자연스럽게 요구하고
자신이 타인의 전 삶을 주관할 수 있다는 오만에 너무 쉽게 빠진다는 것입니다.
획일화의 근본원인도 리더의 스타일, 삶의 방향성, 하나님 이해, 신앙의 색깔, 이 모든 것들이 개별성의 차원을 넘어
표준이 되고, 목표가 되어 답습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획일주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것에 모든 것이 무릎꿇어야 하고, 자신들이 영적인 것의 진수를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오만함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의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한 소시민이자 필부로서
한 가정과 아이들을 부양하고 교육시키고 또 부모님을 공양하는 의무속에 살면서
자신의 작은 믿음을 지키고, 복음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의 비밀을 체험적으로 살아내어보지 못한 사람은
온전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전인적 리더쉽은 결코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들이 말하는 리더란, 성경교사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성경공부로서 끝나야 하는 수준이죠.
형제님이 여러 선교기관에 실망하시고 교회에 실망하신 점은 애석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들에게 번번히 실망하시면서도 그들에게 삶의 '온전한'리더쉽을 기대한 자체가 무리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무리한 기대의 이면에는 위에서 설명드린 바 참된영성과 영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 안에 뿌리 깊은 오해가 문제의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형제님 자신을 바르게 위하는 것.
아! 주를 위해 무엇도 포기하고 무엇도 하지 않고 살겠다는 그 어떤 결심보다도
'아! 그로 인하여 살맛난다~'하는 이 한마디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더 귀한지요.
천국은 설명하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천국의 삶을 사는 것 자체로서 증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속에서 종교적 퍼포먼스에 심취한 상태에서 느끼는 천국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일상적 틀속에서 우리 내면의 변화, 태도의 변화, 시각의 변화,
그리고 일상의 관용과 작은 행복을 향유할 줄 아는 여유, 그리고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의 태도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발견되어지고, 누리는 그런 천국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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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레몬향기 작성시간 10.12.13 저의 잘못된 생각을 돌아보게 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만선 작성시간 11.11.29 공감합니다. 그러나 길을 잃더라도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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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pikei 작성시간 14.03.03 과거의 자신에 대한 안타까운 실수. 애통함. 그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대한 승복. 이젠 누구도 만나기 꺼려지고, 더 이상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어서 너무 괴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글들이 제게 많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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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석류쥬스 작성시간 12.06.16 내면의 변화, 태도와 시각의 변화가 정말 중요함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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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포도나무 작성시간 24.02.27 성경공부교사에머물렀던수준인데 저의삶을 재생산할수는없다고 힘겨웠던시간들인데 왜 더 빨리나오지못했을까 후회됩니다ㆍ복음이라도 전하자라는 마음으로 있었는데ㆍ그 복음도 나의삶이 풍성해지지않으면 생명력있게 전달이안됩니다ㆍ 결국 평신도로써 자립하고 가꾸어가야할 가정을 잘세우지못하면 무너져버립니다 ㆍ아무도 책임져주지않습니다ㆍ또다른 충성된 젊은이를 찾아나서는 리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