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은 우리로 길을 나서게 하고
높은 성취를 향한 희생과 모험을 감행할 용기와 힘을 북돋아 준다
그 과정에서 보람과 만족, 기쁨이 찾아오고, 그가 발견한 그 확신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그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에 사랑이 없음을 자각하게 되면
아니, 사랑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쌓아 올린 높은 성취의 탑을 유지할만한 사랑이 없음을 발견하게 되면
그 확신에 찬 업적, 관계는 붕괴되고 만다”
<출처 : ??.. MBA 관련 서적에서..>
1. 서언 – 만남과 신뢰
“만남”만큼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신앙하며 전하는 분들과의 만남의 기회는 언제든 소중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성숙해지는 과정의 중심에도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설명해 주는 아무리 많은 설명자료, 논문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너무 액면이 완벽한 사람은 믿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옛 성현의 조언을 마음 한켠에 기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 한번의 진실된 만남에서는 그에 대한 수많은 역사와 사실들을 모른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어떤 믿음, 신뢰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참된 만남을 가진 이는 그에 대해 송사하는 확고한 증거를 만나더라도
“그럴 사람이 아닌데.. 뭔가 오해가 있거나,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라는 믿음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믿음은 사실적 세계의 논증보다 하위의 개념이거나
비이성적이고 나약한 인간이 의지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신비롭고도 매우 지혜로운 것
통찰과 인격적 통합이 요구되는 전인적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2. 확신의 길, 믿음의 길
믿음의 길과 확신의 길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다른 것 같습니다
확신을 위해서는 분명한 어떤 개념, 논리, 예외와 전제가 없는 절대적 사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위대한 신학자, 신앙인이라도
그분을 제대로 해석할 수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으며
더더욱 그분을 어떤 진리체계와 논리적이고 지적인 신학적 논증의 틀 속에 담거나,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압니다.
그렇다고 그분은 알 수 없는 어떤 분, 모호한 분이 아니라,
말씀과 교회와 그의 역사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각 사람의 심령을 찾아오시는 성령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다가오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우리에게 알리는 절대적 사실들은 많습니다.
- 하나님의 살아계심
- 우리 각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심
- 그분은 지고한 공의와 사랑의 표상이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라는 점,
-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자기 행위대로 심판 받을 인생이라는 점,
- 그는 믿는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시라는 점
- 어떤 인생도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하지만 우리의 어떤 의로운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구원이 있다는 점,
-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
등등 이러한 많은 사실, 개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신앙함의 본질을 “무슨 무슨 확신~” 이라는 기계적이고 정적인 “개념적 체계”로 담기에는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확신” 사조가 이데아를 사모하고 분명한 모토에 잘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들, 대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고 지금도 남아 있지만,
복음서를 통해 예수께서 전하시고 보이신 하늘 아버지는
인간이 관념 속에서 만들어내는, 또는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어떤 절대자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것이었으며
심지어 그의 옛적역사와 선지자를 통한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을 찾아온 메시야의 진위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유대인들조차 알아볼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전하신 하늘 아버지, 그리고 자기 자신이 곧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시며 사람들을 혼미 속에 던지신 것은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허상, 고정관념,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개념의 틀 속에 안주함을 깨트리고
살아있는 신앙!
신앙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참되게 하는 신앙!
온갖 종교적 의무에 천착하지만 인간미를 잃어버리게하는 그릇된 종교성에 찌든 인간이 아니라,
모든 이의 생명의 근원인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서 속에서 오늘을 참되게 살아가게 하는 그런 신앙으로!,
그래서, 참된 인간으로!
돌보시는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자 함이었다고 믿습니다.
전도는 4영리를 펼쳐서 능숙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성 가운데 사는 모든 시간, 모든 사소한 사건들이라고 믿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으로 인해 사는 삶을 살 때,
나와의 진정한 만남을 갖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의 모든 생활을 통해 증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은 만남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은 확신의 길을 초월하기 때문에, 확신을 붙드는 데 천착하다보면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믿음의 광대한 길을 놓치고 편협된 믿음의 길을 갈 위험이 큽니다.
우리가 친구와 "믿음"의 관계가 자랄 때에,
그 어느 누구도 자 이제 너와의 관계를 확신하였으니 "이제 (그만 만나고) 우리 각자 열심히 의를 위해 살아가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친구의 우정과 믿음이란, 서로를 더 깊이 신뢰하고 자신을 열어보이며 교류하게 하는 통로이지,
무엇을 하게 하는 수단이 아닐 것이기에.
그래서 믿음의 길(만남과 연합, 교류, 가슴, 은혜을 향한 길)은
어쩌면 확신의 길(원칙과 계약, 실행, 지식, 율법을 향한 길)과
대립된 길일지도 모릅니다.
"확신"을 강조하던 네비게이토 리더쉽 상당수가
"믿음"의 본질에서 떠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개념"과 대치된 개념은 죄나 의심,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갈2:19)
우리 자신의 상황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항상 하나님 안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진실되고 새롭게 만나야겠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사는 삶에는 항상 참회가 있고, 기도가 있고, 은혜가 있고
자기 자신과 상대(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이러한 돌이킴과 연합, 발견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 생기와 창조성이 가득한 생을 살게 한다고 믿습니다.
진정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삶의 개인적 기저에는
확신과 열정으로 실행력을 갖추고 사는 사람이 보기에는 수준 낮아 보일지는 몰라도,
진정, 참된 두려움과 건강한 자기이해/한계인식에서 오는 회의와 주저함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외양적으로 약한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저는 이제
어떠한 확신의 틀보다도, 믿음으로 사는 하루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야 라는 "확신"으로 사는 사람은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에 대한 분변을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다만, 시작할 때 가졌던 목표에 이르도록,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열정이 꺼지지 않고,
자원이 공급되길 바라는 기도에 한정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야 라는 "확신"으로 사는 사람에겐 아이러이니하게도
하나님은 자신을 충분히 보여줄 수 가 없고, 깊은 인격적 만남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아버지를 이미 잘 안다고 자부하던 '그들'을 일컬어 소경이라고 하셨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확신에 차서 설명할 수 있기에 다른 이들의 정직한 의심과
타당한 혼란을 한심한 것으로만 여길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선한자에게 복주시고 악한자를 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확신으로 욥을 정죄한
3명의 친구들은 결국 회계와 욥의 용서를 필요로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무너졌을 때, 그의 흔들리는 믿음을 그대로 정직하게 시인하며
하나님의 답하심, 만남을 끝가지 궁구한 욥은, 이제 귀로만 듣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밖에서
더욱 분명하게 알게되는 경지를 소망할 정도로 (이것은 그가 "이제 눈으로 주를 뵈온다"의 표현에
이어진 것으로서, 그의 긴 고난과 변론 끝에 드디어 하나님을 만났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가 더 깊이 만나고 확신하는 하나님 마져 "이후에" 육체밖에서 만나고 알게 될
그 하나님의 본체에 이르지 못함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을 깨닫게 되었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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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누리 작성시간 07.10.23 그러고 보니 이곳에 죽음으로 내 몰렸던 형제 자매님들이 너무나 많네요^^...앞으로 장차 주님 오실때 바리새인들과 똑같이 심판대에 오를 하땡님을 비롯한 네비의 몇몇 골수들을 생각하니 불쌍하단 생각까지 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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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리키 작성시간 07.10.2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관계라는 생각이 문듯 드는군요..어딜 가든지 '사람'이 문제라는 말처럼 신앙생활 또한 관계가 참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_^ 그리고 형제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저도 잘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몸조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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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갈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0.27 ^_^, 리키형제 방가워~~ 보고싶구만.... 간간히 소식남겨줘서 고맙구,, 이 기사 많이 생각하고 쓴 건데 리키형제의 답변이 있으니 더욱 격려가 되는 구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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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리키 작성시간 07.11.03 갈렙 형제님의 글은 항상 '정성'어려서 그런지 많은 도움이 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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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갈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1.19 댓글달린 글 그대로 공개공간으로 옮겼습니다. 댓글주신분들의 인사이트와 고백이 넘 귀하고, 이 주제를 고뇌하는 분들에게 섬김이 될 듯 해서...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