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일본식 한자어

작성자07박윤석| 작성시간07.10.25| 조회수219| 댓글 5

댓글 리스트

  • 작성자 늘당신과함께할 작성시간07.10.27 윤석이가 게시판지기를 맡으면서 [바르고 고운 우리말] 코너에 읽을거리가 풍성해지고 있네요. 이번 '일본식 한자어'를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말고도 오늘의 우리말 속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지요. 다음 두 문제에서 일본어 내지 일제의 영향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아 보도록 하세요. 1)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 중에서) 2)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정지용의 시, [향수鄕愁] 중에서)
  • 작성자 07박윤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0.30 私の住んだ故郷は 에서 の가 명사와 명사를 수식하는 ~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는 "수식어+피수식어"의 관계가 되어야 하지만 또한, 나의 고향, 살던 고향의 이중적 수식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살던 고향"이 되어야 옳다. 위와 같은 오류의 예로 '血の淚'는 '血淚'가 되어야 옳다. 두번째 것은 잘 모르겠네요 ㅠㅠ
  • 답댓글 작성자 늘당신과함께할 작성시간07.11.01 앞서의 경우와 달리 내용 면에서 생각해보세요.^^
  • 답댓글 작성자 늘당신과함께할 작성시간08.02.28 고래로부터 우리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여 온 소는 황소지요. 우리의 황소는 얼룩백이이질 않습니다. 누렁이지요. 얼룩백이라면 젖소를 말하는 것이지요. 정지용이 일본 유학시절에 지은 詩라는 점에서 그가 보고 노래한 '소'란 젖을 짜는 얼룩백이 젖소였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두 번째 경우는 표현 방식의 차이에 따른 앞의 경우와 달리 사물에 대한 우리 민족 고유의 인식에 미친 일제 식민 통치의 결과라 하겠습니다.
  • 작성자 늘당신과함께할 작성시간09.08.04 * 박윤석 : 1) 비슷한말로 -> 2) 애매등등... -> 애매 등등... 3) 자제하는게 좋을 듯싶습니다. ->> 자제하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