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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역사]

[발표자료]왜 조선은 삼사를 두었나?

작성자12 양수현|작성시간12.10.17|조회수1,309 목록 댓글 31

 왜 조선은 삼사를 두었나?

누리봄 모둠: 강두호, 김나연, 김이슬, 박소연

발표자: 양수현

 

 

★주제 선정 이유:

 '조선 시대는 어떻게 힘(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는가?'

이러한 의문점에서 출발한 저의 생각은 삼사(三司)라는 기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삼사는 왕권을 뒷받침하는 의정부와 6조의 행정기관과 상호 견제하는 위치에서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그 상황에서의 삼사의 중요성과 기능을 알고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고자 주제를 '왜 조선은 삼사를 두었나?' 라고 선정하였습니다.

 

★학습 목표

 조선 시대 권력의 견제기구였던 삼사를 알아보고, 의미를 모두 함께 살펴보자.

 

★조선의 정치기구

 

 

 조선왕조 시대 정치의 최고 기관은 의정부였다. 의정부는 고려 도평의사사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 그 수반인 3정승 즉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회의기관이었다. 3정승은 국가의 중요한 정사를 논의하여 그 합의사항을 국왕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국왕의 결재를 받으면, 이는 또한 의정부를 거쳐서 해당 관부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고려의 도평의사사에 비하여 그 인원이 대폭 줄고, 또 중요한 정무를 많이 6조에 이관하여 3정승은 점점 실권을 잃었다. 이에 대해서 6조는 담당 정무를 직접 국왕에게 직계 하여 그 결재를 받아 시행할 수 있는 6조직계제가 성립되었다. 6조는 고려의 6부와 각기 맡은 임무가 별 차이가 없었으나 정치적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 이것은 조선의 정치기구가 고려보다 관료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승정원: 국왕 비서기관

- 의금부: 나라의 큰죄인을 다스림

- 사헌부: 관리의 비행감찰

- 사간원: 왕이 바른정치를 하도록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당

- 홍문관:국왕의 정치에 대한의견에 답해주고 왕명을 대신 글로 씁니다.

- 춘추관: 역사 편찬 담당

- 성균관: 조선최고 수준의 학교

 

○태종이 6조 직계제 시행→ 태조대의 정도전이 이룩해 놓은 재상정치를 혁파하고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6조 직계제 시행.

 

○세종이 의정부 서사제 시행→ 태종대에 이룩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현명한 재상을 통한 정치를 펼치려는, 즉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삼사의 역할

 

-홍문관: 집현전의 후신으로서 경적을 모아 옛 제도를 연구하고 문한을 다스리며, 국왕에게 경서를 강의하는 경연을 관장함으로써 국왕의 고문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사헌부: 감찰기관으로서 정치의 득실을 논하고 관리의 잘못을 규찰하고 풍기,습속을 교정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등의 일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사간원: 국왕의 잘못을 간하고, 관리의 공정치 못한 임명을 논박,시정하는 임무를 맡은 기관이었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이를 합하여 대간(臺諫)이라 하고 그 관원을 언관(言官)이라고도 하였다.

   +대간은 서경이라 하여 임명된 관리의 신분, 경력 등을 조사하여 그 가부를 승인하는 임무를 겸하였음. 따라서, 국왕의 전제적인 권리를 제약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3사는 의정부 및 6조의 행정기관과 상호 견제하는 위치에 있어서 권력이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막았다. 또한, 3사의 존재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하는 양반사회의 일면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삼사의 중요성

 힘(권력)이 있는 자의 '횡포'라는 칼에 맞설 수 있는 방패가 우리에게는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왕권에 있으면 왕권을 견제할 신권에 힘을 나누어 주어야 하고, 신권에 있으면 왕권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러한 힘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잘 잡아주고 힘의견제를 잘 해낸것이 삼사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어떻게 다룰지는 권력을 가진 자의 인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권력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그로 인해 혼란된 상황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정치기구가 있어야 비로소 권력이 안정됩니다. 삼사는 각자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분담하여 왕권이 크게 성장하여 횡포를 일삼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 행정적인 측면에서 힘의 견제기구가 존재하였다는 것에 삼사의 중요성이 인정되며, 그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힘의 순환에 이바지하였다는 것에 우리는 배울 점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삼사를 통해 '균형'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균형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 부분에서든지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에서는 중용의 덕을 갖추어야 하고 몸의 건강을 위해서도 항상 신체의 모든 장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편안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균형의 의미를 조선 시대에 삼사는 힘(권력)이라는 부분에 적용하여 왕권과 신권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보며 균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공동체로서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합니다.   

 

 

누리봄 모둠 선정 [조선왕조 전기] 5대 중요 사실

 

 

 우선순위 년도 중요사실  선정이유 
1392  조선건국 태조의 군사력은 그가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는 데 큰 힘이 되었지만, 태조를 뒷받침해 준 사대부들의 힘이 없었다면 그는 조선의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개국공신이라는 새로운 힘의 출연과 유교적 이상정치를 표명한 새로운 국가건설은 역사적 큰 사건이다. 
2 1400 태종의 6조직계제 시행  개국공신들의 커가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태종의 6조직계제 시행은 힘의 균형을 위한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종의 결단 덕분에 세종은 뛰어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조선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1443

훈민정음 창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획기적인 발상이었고 오늘날에도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훌륭한 글자이다.
1485  경국대전 반포  조선시대 통치의 기본이 되는 법전을 반포한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법전이란 국가를 통치하는데의 기준이 되고 국가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1592 임진왜란  왜란을 겪고 난 전후가 조선의 국가적 성향을 바꿔 놓았기 때문에 임진왜란은 조선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민족과 역사] 연표

1. 발표 범위 : 양반사회의 성립~사림세력의 등장

2. 발표 주제 : 왜 조선은 삼사를 두었나? 

3. 관련 연표 :

 

 년.월.일  한국사  세계사  비고
 1392  조선건국    
 1400  태종의 6조직계제 시행    
 1443  훈민정음 창제     
 1450    금속활자 발명   
 1458  경국대전 반포    
     14~16C 르네상스   
 1467    일본 오닌의 난(전국시대 시작)  
 1492    콜럼버스 아메리카 대륙발견  
 1526    무굴왕조 건국  
 1533    잉카제국 멸망  
 1541    칼뱅 종교개혁  
 1590    도요토미히데요시 일본통일  
 1592  임진왜란     
 1597  정유재란    

 

 

 

첨부파일 조선-삼사.hwp

 

 

첨부파일 왜 조선은 삼사를 두었나.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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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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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늘당신과함께할 | 작성시간 12.11.03 * 강두호 : 1) 누군가는 권력에 복종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권력을 견제해야합니다. -> 2) 권력을 잡은사람은 처음 마음 먹은 것과는 달리 권력을 잘 못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 3) 왕이 옳지 못 한 정책을 할 때 옆에서 견제 해주던 삼사가 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오래 유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4) 우리 삶속에서도 누군가는 권력을 잡고 있습니다. ->> 5) 그때 옆에서 어느 누구든지 조언을 해주고 따금한 충고를 해줘야 발전 할 수 있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12 강두호 | 작성시간 12.11.05 수정하였습니다.
  • 작성자12 강동영 | 작성시간 12.11.05 “균형 감각이란 양극단의 중간지점이 아니라 양극단을 오고 가면서 끊임없이 최적점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다.” 라는 시오노 나나미의 금언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역동적으로 움직여야만 진정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삼사가 왕권의 비대한 성장을 역동적으로 경계하여 횡포를 일삼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권력이 균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는 어느 쪽에 치우치기 마련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무릇 대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잃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균형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12 양수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1.07 과제 불이행= 없음
    보완필요= 없음
    집계: 11월 6일 11:59
  • 작성자이건희 | 작성시간 12.11.07 어느 시대든 힘은 견제되어야 합니다. 힘을 가지지 않을 때는 그 위험성을 잘 모르지만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잘못하면 그 힘을 남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앞의 무인정권을 단기 몰락이 그 예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삼사는 조선 시대에 중요한 균형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서도 힘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쌍용자동차 사건이나 용산참사의 경우를 봐도 힘은 견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일찍 힘이 견제되었더라면 현대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안 될 불참사는 발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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