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 Dae-jin (pianist)
김대진은 1962년 음악을 좋아하는 은행원인 아버지와 유관순열사와 함께 옥살이를 했던
외할머니, 한국 걸스카웃 연맹 총재를 지낸 어머니를 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가졌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 부터 수많은 음악을 듣고 성장한다.
9세때 뜻밖의 뇌막염에 걸려 학교를 가기못할 시기 외할머니가 가르쳐 준 피아노에
흥미를 느끼고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늦은 9살에 피아노를 시작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항상 들어온 클래식음악의 감성은 그를 빠른 피아니스트로 성장시켜 2년 후인 1973년에
국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이듬해인 1974년 데뷔 독주회를 한다.
1974년 예원콩쿨, 1975년 이화.경향콩쿨에 우승하고 예원을 거쳐 서울예고에 입학하여
예고 3학년인 1979년 동아콩쿨에서 대상을 받고 중앙음악콩쿨에서 우승을 한다.
서울대학교 재학중 줄리어드음대로 유학하고 줄리어드 재학중이던 1985년 클리브랜드에서
열린 제6회 카사드쉬 국제피아노 콩쿨(현,클리브랜드 국제콩쿨)에서 우승을 한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피아니스트로써는 대단히 늦은 9세에 피아노를 처음 접하지만
클래식음악을 어려서 부터 듣고 자란덕에 빠른 성장을 할 수 있게된다.
피아노를 처음 시작부터 좋은 환경,훌륭한 선생에게서 공부를 할수있었던 그는 빠르게
성장을 하고 서울 예고시절 부터 테크닉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동연배를 추월하고
대학생들과 겨룬 동아,중앙콩쿨에서 우승을하여 일찌감치 한국 피아노계를 대표 할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줄리어드를 마치고 그가 찾은 고국에서 모교인 서울음대 교수
채용에 두번씩이나 거절당해 커다란 시련을 맞이 하지만 때마쳐 개교한 한국 예술종합
학교 교수로 임명된다. 1994년 시절은 연주전문 피아니스트로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귀국 후 선택한 교수직은 그를 세계적 피아니스트 조련교수로
세계 음악계에 각인 시켜준다.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연주활동을 한 그는 서서히 많은 제자들을 발굴하여 탄탄한
피아니스트로 성장시킨다. 2001년 15세 그의 제자 손열음이 한국에서만 받은 음악교육으로
독일 에트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콩쿨에서 우승을한다. 3년 후 2004년 16세의 김선욱이
같은 콩쿨에서 우승,2006년 18세의 김선욱이 리츠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최연소 우승
2012년 16세의 문지영이 독일 에트링겐 콩쿨 우승을 시작으로 2014년 쥬네브 콩쿨 우승,
2015년 부조니 콩쿨에 우승하여 그의 제자들이 한국에서만 그에게 지도를 받고 세계
최상급 음악콩쿨에서 두각을 보인다,이는 우연의 결과가 결코아닌 그의 지도력이 출중하다고
밖엔 달리 생각할 수없는 결과물이다.필자가 예를 든 위의 세명의 제자뿐만아니라 그의 많은
다른 제자들이 우리나라 피아노계에서,세계무대에서 연주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다양한 자신들만의 특유한 음악적 칼라들을 가지고있다. 절대로 한
교수의 제자들이라고는 생각 할수없는 다양한 그의 제자들은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개개인
특성에 맞게 폭넓은 시각에서의 지도력이 아니라면 이루어 낼 수없는 결과일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의 제자중 두각을 나타내는 제자들은 자신에게 지도를 받지 않았더라도
현재 위치에 있을것이란 이야기 한다.그러나 필자는 그의 말에 동의 할수없다.물론 각자의
그릇이 있어 어느 위치까지는 도달 할수있을지 모르지만,잘못된 방향을 잡아주고,모난부분을
갈아내고, 성장에 맞는 혁신의계기를 심어주어 피아니스트로 발전되는 과정이 절대로 스스로
만이 이루어낼 수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그가 우리나라 피아노계 발전에 공헌한
부분은 그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질적으로 높이 평가를 해야하는 일 일것이다.
이렇듯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피아노 연주가로나 지도자로나 우리나라 음악계뿐만 아니라
세계 음악계에 이미 큰 족적을 남겼다.
2005년 부터 그는 타의에 의해 수원시향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 지휘자의 길을 병행하고
있는데 지휘자의 길은 그리 녹녹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그 자신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있던 그에게 갑자기 상임지휘자 자리를 맡아달라고 한 수원시향
관계자나 전혀 지휘자의 길을 생각하지도 않은 그가 상임지휘자를 맡은 결정이나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끔찍한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스코어를 잘 읽어내고 음악적 지식이 많이 있다고 해서 훌륭한 지휘자가 되는 것이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생리를 알아야 하고 그 못지않게 모든 악기의 특성이나 오케스트라 경영의
흐름등 종합적으로 파악이 되어야 하고 이는 적어도 20대때에 지휘자로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정하여 전문적인 지휘자의 길을 밟아 나가도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따라야 하는데 40이 넘은 나이에 새로이 지휘자의 길을 선택한 일은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레날드 번스타인이 지휘자 시절 이따금씩 피아노를 직접
치며 지휘를 했다. 그의 피아노에서 우리가 전달받은 느낌은 전문 피아니스트를 욕보이는
자신의 지나친 욕심의 결정체였다. 지휘자 정명훈이 다시 피아노연주를 하겠다면서
요즈음 가끔 연주회를 하는데 그 역시 욕심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본다.지휘와 피아니스트의
길은 전혀 다른 분야다. 두개를 병행한다는 그 자체가 성립이 되지않는다.
단 하루라도 연습을 게을리 하면 퇴보를 느끼는 것이 클래식 음악에서 프로의 세계다.
지휘자로써 10년의 경력을 쌓은 그를 필자가 볼때 초반기보다는
분명히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을 하나 지휘자로써 김대진은 아직까지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뿐이다. 이점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지휘공부에 빼았긴
시간을 피아노나 후배양성에 쏟았다면 하는 생각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제 그도 50대 중반에 접어든다. 아직 에너지가 있을때 어떤길이 한국음악계, 아니 세계
음악계를 위하는길일까,그가 할수있는 일을 찾아 그일에 전념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필자 느낌의 글보다 객관적인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봅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을 잘 이해할수있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감성과 논리를 지적으로 단아하면서도 명석한 음색을 창출하는 피아니스트. 유연한
테크닉과 개성이 강한 작품해석으로 독자적인 연주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정상급 연주자이다.
줄리어드 음대에 재학중이던 1985년 클리블랜드 에서 개최된 제6회 로베르 카사드쉬 국제
피아노 콩쿨(현, 클리브랜드 국제 콩쿨)에서 영예의 1위에 입상하여 한국인의 음악적 예지를
빛낸 피아니스트로의 탄탄한 길을 약속 받게 되었다.1987년 미국 머킨홀에서 가진 뉴욕 데뷔
리싸이틀 에선 솔리스트가 되기 위한 모든 능력을 갖춘 훌륭한 연주자(뉴욕타임즈) 라는
찬사를 받았고 스위스의 티보 바르가 국제음악제, 미국 보드윈 국제음악제, 일본 이시카와
국제 페스티벌 등 유명음악제의 초청독주회 및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프랑스 빠드루
교향악단, 프랑스 릴 국립 교향악단, 뉴욕 화이트 플레인즈 오케스트라, 줄리아드 오케스트라
(남미 순회연주), KBS교향악단, 서울시향(88서울올림픽 문화 페스티발, 교향악 축제,
(한국의 아티스트 시리즈), 부천시향(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연주), 등 국내외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어느 작품을 대하든지 여러 가지 모양의 접근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연주자의 의식이 작품
속에 투영되어야 한다는 음악관을 갖고 있는 그는 줄리어드 음대와 대학원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친 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관한 연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감성과 논리를
지적으로 조화시켜 단아하면서도 명석한 음색을 창출하는 피아니스트. 유연한 테크닉과 개성이
강한 작품해석으로 독자적인 연주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정상급 연주자이다.
항상 다양하고도 의욕적인 기획연주 시도와 자신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그는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독주회, 쇼팽 서거 150주년 기념 협주곡 전곡 연주회 등을 통해
호평을 받은바있다. 특히 2000년 4월 2일에 있었던 베토벤 협주곡 전곡 1일 연주회는
우리나라 악단의 한 획을 그은 연주회로 음악과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열정적 노력을
통해 청중을 감동시켜 그의 음악세계를 함께 공감하고픈 욕구를 만들어 줌으로써 많은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어 2001년 <낭만 콘체르토 시리즈 - 건반 위의 낭만>은 슈만,
그리그, 라흐마니노프의 명 협주곡을 한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만의 색채로 대곡들을 거뜬히
소화해내어 그야말로 건반 위에 그린 낭만이었다는 감탄과 찬사를 끌어내었다.
2002년 5월 호암아트홀에서 John Field Nocturnes 전곡연주회를 가졌고 <김대진 렉처
콘서트> 2001년에 시작한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회는 2004년 12월 막을 내리기까지
매회 마다 매진을 기록하였다.
음반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어, 2000년 Chopin 4 Ballade and Poulenc 8 Nocturnes이
수록된 음반이 Arcadia label로 출시되었고, 2001년 John Field the Complete Nocturnes
음반이 Monopoly label로 출시되었다. 2003년에는 Chopin Nocturnes 전곡이 출시되어
"연륜의 굴곡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정과 동의 세계가 한을 풀어내듯 허공을 향해 울려 퍼졌다"
라는 호평을 받았고, 2004년 Sony classic label로 폴란드국립라디오 교향악단과 함께한
Mozart Piano Concertos가 출시되다.
한국에서는 오정주 교수를 줄리어드 에서는 마틴 캐닌 교수를 사사한 그는 19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수한 제자들을 배출한 명교수로도 인정 받고 있으며
현재 가장 두터운 순수 팬을 확보하고 있는 연주자임과 동시에 헌신적인 교육자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2002년 12월에 한국음악협회에서 기악부문 한국음악상을 수상 받아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음악계에 큰 공헌을 인정 받은 그는 '주간 동아'가 선정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별
40대 리더 40인 중 유일하게 음악인으로 선정 되었고, 또 2003년과 2005년 '동아 일보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프로들이 뽑은 우리 분야 최고' 설문에서 '국내 최고의 연주가'로 연속
선정되었다. 또한, 2005년 문화관광부 올해의 예술상 음악부분, 예총예술문화상 음악부분에서
대상을 차지하였으며 2007년에는 2005년 1회 수상에 이어 금호음악스승상을 다시 수상하였다.
2003년 11월 26일 그는 마렉 야노프스키가 이끄는 역사적인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내한
공연에서 협연을 했으며, 한국예술실연자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제 5회 실연자 대상(음악부문)을
수상하였다. 2005년에는 미국 링컨 센터에서 독주회, 한국인 최초로 아일랜드 더블린 국립교향
악단과 협연, 프랑스 쿠쉬빌(Courchevel) 국제음악제 연주, 일본 삿포로 교향악단과 동경
산토리 홀에서의 협연을 했으며 같은 해 7월 강동석, 조영창과 함께 프라하심포니와의 협연을
가졌다. 또한, 2007년부터 금호아트홀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를 창단, 음악감독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클리브랜드(2005), 에트링겐(2006), 센다이(2007), 클라라 하스킬(2007) 파다레프스키
(2007), 라흐마니노프(2008)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5년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을 통해
지휘자로 데뷔하였으며 2008년 수원 시립 교향악단 6대 상임지휘자로 위촉되었다.
"김대진 home page 발췌"
랑랑(1994년),손열음(2000년),김선욱(2004년),문지영(2012년) 등을 배출한 독일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는 피아노 영재들의 소문난 등용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순수
국내파인 세 명의 한국인 우승자는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 김대진 교수의
제자들입니다. 김 교수 자신도 1973년 열한살의 나이로 국립교향악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다니는 동안 이화, 경향, 중앙, 동아 등 국내
음악 콩쿠르를 휩쓸었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서울대 음대 2학년이던 82년 줄리아드
음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85년 로베르 카자드쥐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세계적인
교향악단들과 협연을 계속하는 한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구로 줄리아드에서 흔치
않은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94년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 교수로 일하던 그가 갓 개교한
한예종 교수로 귀국한 것은 당시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귀국 후 그는
누구보다도 자주 무대에 서면서도 늘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전천후 피아니스트’로 평가
받았고, 제자를 키워 지속적으로 국제무대에 내보냈으며, ‘김대진 렉처 콘서트’ 등 클래식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기획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05년에는 지휘자로 데뷔하여
2008년부터 수원시향의 상임지휘자도 맡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키우는 데 일찍이
헌신한 뛰어난 스승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서울 서초동 한예종의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교습을 위한 두 대의 피아노가 나란히 놓인 연구실은 생각보다 좁고 추웠습니다. 옆방의
노래와 악기 소리도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노스웨스트를 끊고 가셨다가
대한항공으로 바꿔 일찍 귀국하다
사고당한 서울대 음대 오정주 교수
제자의 콩쿠르 준비 때문이었어요
교육자의 열정이 뭔지 깨달았죠
선생님 뒤를 잇겠다 생각했어요
불쑥불쑥 튀는 애들을 보면
잔디깎기 기계처럼 깎아냈어요
국제 콩쿠르에서 안 틀리고
입상은 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지구상에 딱 한명
‘오리지널’로 키우진 못했어요
한국 아이들, 무대 올라서면 살기 느껴져
-12월14일 고양 아람누리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베토벤 교향곡 5번 지휘하시는
걸 봤습니다. 손열음, 김선욱 등 제자들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지휘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평이 많던데, 그날 피아니스트 이진상과의 연주도 역시 좋더군요.
“협연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는 건 지휘자의 기본이에요.
협연자와 교감하지 못할 거면 지휘할 이유가 없죠.”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웬만한 클래식 애호가라면 전곡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라 지휘자에게도 부담이 클 텐데요.
“사실 엄청난 부담이죠. 그래서 그 곡으로 음반도 내고 연주도 여러 번 하면서 자신감을
쌓아왔어요. 연주자나 교향악단마다 그릇의 크기는 다 다르지만, 수원시향의 그릇을 우리가
노력해서 채웠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 있는 연주가 만들어지거든요. 그 진심과 열정이
전달될 때 감동이 있는 거죠.”
-고양 아람누리에 모인 청중의 반응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중도가 굉장히 높더군요.
“청중의 전반적인 수준도 올랐지만 그날 관객이 더 특별했던 것 같아요. 정말 음악이
듣고 싶어 온 분들인 걸 저도 느꼈거든요. 저는 연주 시작하기 전에 걸어 나가면서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껴요. 걸어 나갈 때 연주자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살짝 뜨고,
청중은 반대로 연주자를 누른다 싶게 살짝 가라앉은 분위기가 최상이에요. 우리나라
연주회는 번잡스럽게 약간 떠 있는 느낌일 때가 많거든요. 그날처럼 무게 있는 분위기에
나가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죠.”
-제자들 연주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 연주회와 겹칠 때 빼고는 다 가려고 노력해요. 저에게 큰 도움이 되니까요. 연습실에서
6개월을 가르친 것보다, 실제 연주회 한 번을 보면서 애의 성향을 더 많이 파악할 수 있거든요.
연습실은 의식의 세계지만, 무대는 무의식의 세계예요. 놀랄 때 ‘아이고’라고 외치는 것을
‘엄마야’로 바꾼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교육이 성공했는지를 알려면 실질적으로 애를 깜짝
놀라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연습실은 의식의 세계라 교육의 결과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무대에 올라야 평소에 내가 주문한 것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할 수 있죠.
의식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다 입력시켜, 무의식의 세계에서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교육이에요.”
-상당히 무서운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마도.(웃음) 그런데 지난 9월 영국의 리즈 콩쿠르 심사에 갔다가 가르침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국제 콩쿠르 심사를 처음 하는 게 아닌데, 그 전에 못 보던 걸 이번에 보게
되었거든요. 한국 애들과 유럽 애들의 차이가 눈에 확 들어온 거예요. 우리 애들이 무대에
올라오면 일단 무서워요. 어둡고 긴장되어 있는데 거의 살기가 느껴질 정도예요. 안 틀려서
입상해야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해요. 그런 애들을 보면 심사위원도 긴장이 돼요. 듣는 사람도
(몸을 바짝 세우고 앞을 무섭게 쳐다보며) 이렇게 딱 경직이 되기 마련이죠. 저도 그렇게 경직된
상태로 듣다가 ‘가만있어 봐. 왜 이러는 거지?’ 고민을 하게 됐어요. 유럽 애들은 기능적으로는
우리보다 떨어지지만, 어쨌든 자기 이야기를 하거든요. 무대 위에서 즐기며 연주하니까 듣는
사람도 편안하게 거기에 빨려 들어가며 감상을 할 수 있어요. 축구도 똑같더라고요. 축구공을
보면 무서운 코치만 생각나는 우리 애들과 축구공을 놀이로 생각하는 남미 애들의 차이랄까.”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과거에 저는 불쑥불쑥 튀어나온 특징 있는 애들을 보면 마치 잔디를 깎듯이 그 울퉁불퉁한
부분을 깎아냈어요. 시간도 오래 안 걸렸어요. 6개월이면 완벽하게 깎아서 객관적인 부분만
남길 수 있었죠. 걔네들이 국제 콩쿠르 나가서 실수 없이 상도 타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런
애들에게 자신만의 얼굴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잘 모르겠더군요. 후회가 밀려왔어요. 이 아이는
지구상에 딱 한 명이에요. 그 한 명이 자기 느낌을 표출하고 자기주장을 하는 게 진짜거든요.
오리지널! 남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거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든 튀지 않는 게 중요한 나라잖아요.”
-잔디 기계가 깎기 전에 잔디가 스스로 자기를 깎기도 하죠.
“정확한 표현이에요. 흔히 말하는 정석 코스, 즉 예원, 예고 나온 애들의 피아노 치는 게 다
흡사한 이유가 거기 있어요. 우리는 남과 다를까 걱정하고, 외국 애들은 남과 같아질까 걱정하죠.
물론 그림이 되려면 일단 액자 안에 들어가야 해요. 남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객관성이라는
틀을 갖춰야 하죠. 그러나 액자 안에 들어가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 아니라, 난생처음
본 그림이라는 느낌을 줘야 해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액자 만드는 방법만 가르친 게 아닌지
반성하고 있어요.”
Early performances (위키페디아 영어권 발췌)
In 1986, Kim made his New York debut and received a favorable review from the critic for The New York Times who wrote that "Daejin Kim demonstrated all the accouterments necessary for a successful solo career. Kim has what seems to be a foolproof technique and his careful choice of music showed a musician interested in subtleties, not just the usual frontal assaults of bravura repertory. This is a fine young musician, one with the physical means to express his considerable musical intelligence."
In 1987, he was invited to perform with the Cleveland Orchestra and since then his international career has taken him to major concert halls in Europe, Asia and the United States as soloist with the Juilliard Symphony Orchestra, the White Plains Symphony Orchestra, the Orchestra Nationale de Lille and the Pasdeloup Orchestra in France, and the Sofia State Symphony Orchestra among others, with such noted conductors as Dmitri Kitaenko, Kenneth Schermerhorn, Jahja Ling, Jean-Claude Casadesus and Marek Janowski.
Move to South Korea
In 1994, Kim and his family moved to South Korea. Since then he has been pursuing dual careers as a concert artist and a teacher. His master classes have drawn international recognition and at the same time, he has been able to maintain a full schedule of performances, besides many appearances as a chamber musician and collaborator, such as the national recital tour (1995), theSchubert Bicentennial Celebration recital (1997) and appearances with all the major symphony orchestras including the Korean Symphony Orchestra, the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He appeared under the direction of Dmitri Kitaenko with the KBS Symphony Orchestra playing Schumann Concerto and this performance led him to appear as soloist with the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to perform two consecutive Chopin's Piano Concertos in the 1998 Orchestra Festival, the most prestigious music festival in Korea presented by the Seoul Arts Center. In 2000, he gave a one-day performance of the complete Beethoven's Piano Concertos. In 2001, he has started the cycle of the complete Mozart Piano Concertos which will last until 2005. He has also released three recordings, "4 Ballades by Chopin & 8 Nocturnes by Poulenc" (Arcadia label), "The Complete Nocturnes of John Field", and "The Complete Nocturnes of Chopin" (Monopoly label). His new recording of Two Piano Concertos by Mozart, which he conducted the Polish National Symphony Orchestra from the keyboard, was released in October 2004.
Education and faculty positions
Kim holds Bachelor's, Master's and Doctoral degrees from the Juilliard School. He has been a member of the associate faculty at the Manhattan School of Music and guest artist faculty at the Ishikawa Music Academy in Japan. He is a currently Professor at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His students have won the prizes in the major international competitions such as the Busoni, the Viotti, the Ettlingen, the Oberlin, the Cleveland, the Sendai (Japan), the Epina, the Maria Canals International Competitions, Busoni Competition, and first prize at the 2005 Clara Haskil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and first prize at the 2006 Leeds Piano Competition.
Honors
In 1985, he won the first prize in the prestigious 6th Robert Casadesu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presently, the Cleveland Competition) held in Cleveland, Ohio, USA. In recognition of his achievements both in Korea and aboard, he also received the 18thNan-Pa Music Award, given to a musician who made the greatest contribution to the classical music world, by the Nan-Pa Society in honor of the late Hong Nan-pa, the maestro of Korea.
In 2002, he was awarded 'the musician of the year' prize by the Music Association of Korea, and he has been designated as "the most famous pianist in Korea" by national newspaper The Dong-a Ilbo. In 2006, he was decorated as "Artist of the Year" by South Korea's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He received an honorary invitation from Yale University and Rutgers University to be a visiting professor.
Other activities
Kim has been a jury member for competitions such as the Busoni, the Gina Bachauer, Clara Haskil, the Beethoven (Bonn), the Cleveland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the Sendai, the Hamamatsu in Japan and the Paderewski, the Rachmaninov (Moscow), the China International Competition among others. He will be on the jury for the Leeds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2012.
After close collaboration with the Suwon Philharmonic Orchestra as soloist and conductor for many years, he became its Conductor and Music Director in 2008. Recently,Kim and the Suwon Philharmonic Orchestra made their debut concert at Carnegie Hall. Kim is now making the complete cycle of Beethoven Symphonies and Concertos.
External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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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박종화 김철웅 조재혁 박종훈 김대진






franciscopaik.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루시아 작성시간 15.10.03 잘 읽었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 김대진/마빈 문 연주회 가는데 연주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가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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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sangyoung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10.03 도움이 되셨다니 글쓴 보람이 있군요.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앙상블에서 특히
좋은 연주자입니다. 좋은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pure 작성시간 15.10.05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인터뷰도 인상적이구요...감사합니다^^
사실 김대진 교수는 교육자와 지휘자, 심지어 피아니스트까지 양립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그분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선택과 집중의 프레임으로 보니 전혀 다른 해석과 결론이 나오네요... -
답댓글 작성자sangyoung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10.09 프로의 세계는 상상 할수없을 정도로 냉정합니다. 넓어진 클래식 음악세계에서
현대에는 지휘나 연주자들도 바로크,낭만,근대,현대음악 전문가들로 구분이 되어 있을
정도로 분업화?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보물로 성장한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한 우물만을
고집스럽게 연구하여 더둑 더 좋은 결과물을 전 세계에 내 놓기를 바라는 저의 마음에서
이런 글은 썼습니다.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