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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 & 컬처

[영화]유스(Youth,2015) - 늙은 예술가의 초상

작성자율리시즈|작성시간16.01.14|조회수1,138 목록 댓글 14


“장려(壯麗)했나니, 우리 그 낙일(落日) - 이문열(1984)”

삶의 말년에 다다른 예술가의 인생에게 있어서 예술가는 어떻게 영감을 얻고 작품을 펼칠 수가 있을까, 혹은 그 인생으로서의 노인은 젊음의 사고와 시선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 혹은 이 양자의 모든 것들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언제까지 남았을지 모를 인생을 그저 즐기며 마무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 벨린저는 스위스의 한 고급호텔에 묵으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여기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영화 감독인 믹이 자신의 스텝들과 함께 자신의 차기 작품을 위한 각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벨린저는 건강을 위한 운동과 여가활동 등으로 딱히 다른 일 없이 소일거리를 보내던 중 영국 여왕의 특사가 방문하여 왕자 생일의 특별 콘서트에 자신의 대표곡인 심플 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은퇴를 선언한 벨린저는 영국여왕의 이같은 요청마저 거절하게 되는데...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영화 <유스(Youth)>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 노년을 보내는 삶의 실존에 대해 잠언의 한 구절과도 같은 영상기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 아닌 질문, 영감어린 이야기를 선사하고 있다. 소렌티노 감독은 이전 작품인 <그레이트 뷰티>를 통해서 이미 노년에 처한 예술가의 삶에 대해 아름답고도 영감어린 시선을 통해 꾸준한 관심을 보인 바 있는데 이는 그의 실제 나이가 40대 중반임을 생각한다면 놀랍고도 재밌는 일이다.

<유스>에서 소렌티노 감독은 은퇴한 지휘자와 여전히 영화작품 활동중인 감독이라는 두 친구의 시선을 통해서 노년의 삶과 예술을 질문하고 얘기하는 방식을 펼치는데 이는 영화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지휘자란 직업은 특별한 건강상의 이유만 없다면 세상을 떠날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인데도 은퇴를 선언하고 더군다나 영국여왕이 그의 대표곡인 심플 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마저 거절한다는 것은 자신의 확고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그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나타난다). 애호가나 팬들의 입장에서 지휘자는 살아 생전 자주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영감의 지속성이 없다고 느껴지거나 혹은 연주활동의 내적 동력이 다했다고 판단된다면 노년이든 아니든 언제든 은퇴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지휘는 기계적인 팔놀림이 아니고 예술활동은 자동적으로 생산되는 노동력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후에 밝혀지지만 벨린저의 은퇴 이유는 순애보적인 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충분한 개연성이 된다. 예술의 영감과 순수와 젊음의 시선은 어느 하나가 빠져도 먼가 부족한 그 무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자 친구인 믹은 작품활동의 지속성을 죽을 때까지 놓치 않으려는 입장으로 나오는데 이 지속적인 활동의 의욕은 자기 존재 이유 삶의 주된 이유로 작용한다. 믹은 어느 작품이 될지 모르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대로 쉬운 일인가. 오손 웰즈는 불과 20대에 언론사주를 통해 바라보는 현대자본가의 문제의식을 딥 포커스라는 기술적 방식으로 <시민 케인>을 만들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텍스트를 남겼지만 그 젊음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그것을 넘는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은 예술의 영감과 원천이 무한정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민 케인> 이후에 오손 웰즈가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하더라도(실제로 그는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세익스피어 원작을 영화화하여 많은 인상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회자되고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100여편이 훨씬 넘는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임권택 감독이 <길소뜸> 혹은 <서편제> 어느 하나만 남겼더라도 영화감독으로 충분히 회자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믹이 자신의 마지작 작품이 최고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남은 작품으로도 그는 대접받을 만한 지위와 나이에 있다. 모든 예술에 등수를 매기고 베스트를 정하는 것은 후의 호사가들이 하는 혹은 취미거리를 가진 이들의 편의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가들은 남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내적 베스트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렇기에 노년의 믹이 작업하는 영화활동은 작품의 결과가 우위를 정하는 범위를 벗어나 자신의 삶의 존재 근거로 작용하는 기제인 셈이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에서 나타나는 예술작품의 영감과 고뇌의 에피소드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의 연장선상에 있고 노년의 삶에 대한 지혜로운 잠언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구름 저편에>의 시선에 닿아 있다. 이는 이태리 예술 작가영화의 계보, 그 적자로 파올로 소렌티노가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소렌티노 감독이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의 훌륭한 역사의 수혜를 직간접적으로 입었든, 펠리니와 안토니오니의 작품들에서 영감의 전수를 받았든 그와는 별개로 노년의 삶과 예술의 문제를 현대적 시선에서 꾸준히 천착하면서 관객과 대화하는 뛰어난 작가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유스>의 영상과 시선은 현대 유럽의 문명과 자연 중에서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는 풍경을 롱 테이크에 가까운 영상으로, 마치 패스트푸드에 반해 슬로우푸드가 관심을 받는 것처럼 긴 호흡의 시선으로 유장하게 흘러간다. 특히 내가 느낀 것을 꼽으라면 벨린저가 들판에서 소들을 보면서 지휘하는 모습, 벨린저와 믹이 사우나 스파에서 미스 유니버스와 조우하는 장면, 믹이 예전에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바라보는 장면 등은 모두 눈부시다.

배트맨 시리즈에서부터 <인셉션>, <인터스텔라>까지 여전히 영화활동을 멈추지 않는 노배우의 표상이라고 할만한 마이클 케인과 <율리시즈의 시선>으로 인생영화의 한 정점을 보여 주었던 하비 케이틀, 젊은 시절 <바바렐라>로 철없을 정도의 발랄함을 보여준 제인 폰다라는 노배우들로부터 최근의 레이첼 와이즈, 폴 다노같은 젊은 배우들까지 모든 연기자들의 유장한 호흡과 조화는 이 영화의 뚜렷한 매력이다. 특히 후반부의 바이올린 주자로 등장하는 빅토리아 뮬로바와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 영화의 매력을 흥미롭게 마감짓는다.

소렌티노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 영화는 넓게 보면 노회한 유럽 문명에 대한 성찰로 볼 수도 있다. 흔히 우스갯 소리로 유럽인들은 과거 조상들이 남긴 전통문명 덕분에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 할지라도 자연이든 유적이든 우아하고 품위있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한편으론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서 무엇이 더 새롭고 영감을 주는 젊음의 시선을 지닐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한편으로 들 때가 있다. 현대의 유럽 지성이나 예술가들은 이런 문제의 화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문명은 이미 예전부터 황혼을 맞이했다. 그 황혼을 보며 무작정 슬퍼하기 보다는 그 황혼과 함께 하며 그 모습을 삶으로 예술로 투영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생물에게 나이가 있는 것처럼, 유럽문명은 지고 있고 미국문명은 정점을 지나고 있고 한국문명은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사회는 정돈되어 있는 아름다움보다는 하루만에 파헤쳐지고 뒤바뀌고 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변화가 너무 심하여 외적 추함처럼 보이는 그 모습을 평가절하하지 말기를. 그 모습이 모두 정돈되어 아름답게 보일 때가 되고 나면 우리는 다시 과거를 반추하며 바뀌고 변하던 시대의 그 역동성을 그리워 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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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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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pure | 작성시간 16.01.16 이제서야 보았네요... 이 영화 보면서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가 떠올랐어요. <아무르> 보다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노년의 삶을 그려내서 즐겁게 보았어요. 근데 주제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인간의 삶과 문명의 흥망성쇠를 대비한 율리시즈님의 시선은 참 독특하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율리시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16 미카엘 하네케는 라스 폰 트리에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개성적인 감독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르>도 관심이 가는 군요^.^
  • 답댓글 작성자pure | 작성시간 16.01.17 저도 동감합니다. 이 두 감독의 독창성은 실로 대단하죠.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나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으로 이어지는 최근 작품들이 더 눈에 띄게 좋습니다. 미카엘 하네케야 워낙 스릴러장르의 대가로 작품들마다 빈틈없이 완벽하죠. 그러나 <아무르>는 하네케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결이 좀 다릅니다...
  • 답댓글 작성자pure | 작성시간 16.01.17 <아무르>는 음악가 노부부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두사람에게만 집중해서 마치 현미경을 통해 보는 느낌입니다. 이에 비해 <유스>는 망원경으로 보는 느낌이 강하죠. 두 예술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요. <아무르>에도 주인공이 음악가 출신이라 베토벤과 슈베르트 등 클래식 음악도 자주 나오고 특히 알렉상드로 타로가 제자로 출연해서 직접 연주도 합니다. 제 느낌으로는 율리시즈님도 이 우아한 영화를 보시면 반드시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 답댓글 작성자율리시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19 아무르는 현미경이고 유스는 망원경이라니. 정말 멋진 표현이네요. 알렉상드로 타로까지 출연한다고 하니 퓨어님 덕분에 아무르까지 찾아봐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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