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마다 심의기구가 있죠. 기사를 심의하는 곳입니다. 주된 업무는 팩트의 사실성과 논리성, 기사의 가치 및 중요도, 그리고 문장의 완결성 등을 살피고 따지는 것입니다. 나아가 오자도 잡지요. 심의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면 신문의 질이 높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취재 파트와의 갈등 등을 고려해서 글을 살살 다루는 편이지요. 일은 대충 흉내만 내고 잠시 쉬다 가는, 고참 기자의 휴식처 쯤으로 인식되는 곳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하는 시늉은 내야 합니다. 그래서 주로 하는 일이 오탈자 잡아내기, 맞춤법 외래어 표기 준수 여부, 자시의 표기 준칙 준수여부, 겹말성 표현 등등 소소한 것들입니다. 즉 과녁이 어문부서 쪽에 주로 쏠려 있지요. ‘지난 15일’에서 ‘지난’은 빼야 하네, 아니 넣어야 하네 등등을 따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끔 그들의 능력 대비 생산성을 어림셈해보곤 하지요.
각설하고, 얼마 전 우리 심의실에서 두 가지 표현을 두고 유권해석을 요청해 왔습니다. 하나는 ‘향년 90세’가 겹말이므로 ‘향년 80’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장을 담그다’는 ‘김장을 하다’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향년 80세’에서 ‘세’를 빼야 한다? 그 논리를 반박할 논리를 찾을 수 없더군요. 하지만 사전에 보면 ‘향년 90세’가 예문으로 나와 있고, 또 ‘세’을 빼고 쓴 신문들을 찾아보기도 어려워서 “일리는 있는데…”라고 답변하면서도 선뜻 동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관용적 표현으로 보아 사용해도 무방할 듯하다는 정도로 설명했습니다.
이번엔 ‘김장을 담그다’가 어색해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장’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 또는 그렇게 담근 김치’라고 풀이되어 있더군요. 즉 ‘김장’이란 말 속에 ‘담그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김장을 담그다’라고 하면 ‘담그다’가 두 번 들어간 겹말인 셈이지요. ‘아 우리 심의가 이처럼 세세하고 주의깊게 우리말을 다루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김장 담그다’ 역시 사전에 예문으로 나오고, 일반 언중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이라서 ‘말이 안 되는 표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더군요. 또 ‘간장 담그다, 고추장 담그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상황에서 ‘김장 담그다’가 안 된다고 강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습니다. 물론 간장, 고추장의 장과 김장의 장은 어원이 다르기는 하지만요(간장 고추장의 장은 한자어 ‘醬’인데 김장의 장은 순우리말이더군요). 어쨌든 저는 이 역시 관용어로 인정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겹말과 관용어를 구별하는 기준은? 사전의 예문인가? 애매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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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글타령 작성시간 11.11.21 우리집도 김장해야 되는데.... 김장하다, 김치를 담그다, 김장을 담그다, 다 의미가 같지요. 중복 표현에 너무 민감한 규범에 얽매이는, 맞다, 틀리다는 흑백논리에 전 논리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많이 말하면 그게 중심에 자리 잡아 생명력을 갖지요. 그러나 말과 글은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각 특성이 있기에 간결 명확에 중점을 두고 어느 게 좋은 글 표현인지를 따져 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흑백논리가 아니라 더 나은 글인지 가치논리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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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말그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1.21 아, 방금 네이버 지식인을 찾아봤더니 '김장 담그다'는 틀린 표현이라고 해 놓았군요. 아마 우리 회사 사람도 그걸 보고 문제를 제기한 듯. 지식인 답변을 믿고 다들 틀린 표현으로 인식하겠군요. '대략난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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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글타령 작성시간 11.11.21 김치를 담그다, 김장을 담그다,보다는 '김장 김치를 담그다'가 더 자연스럽고 의미가 명확한 것 같습니다. 사시장철 아무때나 만드는 게 아닌, 겨우내 먹을 김치를 만들어 보관한다는 뜻에서........ 김장이 의미변화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사시장철 어느때나 배추가 있기에 김장이란 옛 의미가 퇴색한 것 같고요, 그래도 일반적으로 만들어 먹는 것과 달리 옛날처럼 한꺼번에 많이 김치를 담그는 것을 가리키니까요 일반가정에서는 옛날처럼 거의 하지 않고 그냥 사서 먹고, 식당이나 무슨 행사장 보여주기로 많이 하고,,,시골에서는 김장을 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