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원이 한국 해경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지요. 이와 관련한 중국 정부의 반응이 적반하장 격이랍니다. 사과는 고사하고 자국 선원만 두둔한다는 거지요. 이걸 두고 신문에서 중국이 참으로 ‘경우가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한때 이 ‘ 경우(境遇)’는 ‘경위(涇渭)’의 잘못이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서 확인차 사전을 찾아 봤더니 둘 다 쓰이더군요.
근데, 사전에서 ‘경위’의 뜻풀이를 보다가 흥미로운 걸 발견했습니다. 뜻풀이는 다음과 같더군요.
‘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이러하고 저러함에 대한 분별. 중국의 징수이(涇水) 강의 강물은 흐리고 웨이수이(渭水) 강의 강물은 맑아 뚜렷이 구별된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경위의 한자말이 ‘涇渭’인데 이것이 ‘징수이(涇水)’와 ‘웨이수이(渭水)’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설명한다면 ‘경위’는 ‘징웨이’로 바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중국 지명을 우리식으로 읽을 것인가 중국식으로 읽을 것인가 하는 논란 속에서, 그런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대표적인 예 같습니다. 이태백의 유명한 시 장진주(將進酒)에 ‘君不見 黃河之水 天上來(군불견 황하지수 천상래) 奔流到海 不復廻(분류도해 불부회)…’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에 ‘황하’가 나오는데, 이 시를 읽을 때 이것만 ‘황허’라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없겠지요. ‘장강만리’를 ‘창장만리’라고 읽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테고요.
그렇다거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따질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위수’의 뜻을 풀이하면서 ‘징수이’ ‘웨이수이’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교조적이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 뿐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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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경향지킴이 작성시간 11.12.14 境遇가 "놓여 있는 사정이나 사정이나 형편"이지만 "사리나 도리'라는 뜻도 있지요. 물론 涇渭도 "사리의 옳고 그름과 시비의 분간"이라는 뜻도 있고요. 그러나 언중이 '사리나 도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는 것은 '경위'보다 '경우'입니다. 발음하기가 경위보다 경우가 편해서이지요. 경위는 經緯(일이 전개되어온 과정)의 의미로 많이 쓰지요. 어원은 涇渭이지만 언중이 境遇를 많이 쓰다보니 국립국어원에서 '境遇' 에 '涇渭'의 뜻을 넣은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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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말그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14 제 글도 경향지킴이님과 같은 의도로 쓴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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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담2 작성시간 11.12.15 境遇에 '사리나 도리'라는 뜻도 있다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요? <표준>에서 그런 뜻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어떤 국어사전도 그런 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도리'의 뜻으로 '경우'를 쓰는 것은 잘못으로 처리해 왔습니다. 우리말 규범서들도 그것이 오류라는 지적을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표준>에서 '경우'도 옳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언어 현실의 변화를 인정하자는 태도로 보입니다. 그 점에서 대해서는 저도 특별히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원이 되는 한자를 境遇로 본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 境遇에 예전부터 '도리'의 뜻이 있었다면 전거를 밝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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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경향지킴이 작성시간 11.12.16 네. 그렇습니다. 말그리님의 말씀대로....... 중국어 사전에 나온 境遇도 '사리나 도리'라는 뜻은 없네요. 境遇에 왜 '사리'나 '도리'의 의미가 담겼는지 자료를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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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말그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15 경향지킴이 님의 말씀은, 境遇에 본래 그런 뜻이 있더라는 것이 아니고, 사전(표준)이 境遇의 뜻을 풀이하면서 두 번째 항목에서 그렇게 설명했다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