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당하다’가 맞는 표기인가>
-박지성 관련 ‘부상당한’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을 포함해 ‘피해를 입은’ ‘피습 당한’ 같은 표현이 맞는지,틀리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우리 신문이 뚜렷한 원칙을 세워야 하겠다.<우리 회사 심의실 지적>
*말그리 답변
아래는 우리의 말글 정책을 다루는 정부 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밝힌 공식 견해입니다.
-부상당하다’에서 ‘부상’은 ‘몸에 상처를 입음’이라는 의미의 명사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피동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상’에서 파생된 ‘부상하다’라는 동사만으로도 피동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상하다’가 맞는 표현이라고 해서 ‘부상당하다’라고 쓰는 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상’은 ‘부상을 입다’, ‘부상을 당하다’, ‘부상당하다’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저도 위의 공식 견해를 따르는 게 좋다고 봅니다. ‘부상당하다’는 단어의 구조로 볼 때 이중 피동의 혐의가 강하긴 합니다. 그 때문에 과거 이오덕 같은 재야 말글문화운동가들이 금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일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언어 습관이 변하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口訣에 ‘하다(하고, 하여)’는 있어도 ‘되다(되고, 되어)’는 없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들이 한자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문해가들이어서 피동형에 굳이 ‘되다’를 넣지 않아도 뜻을 파악하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자 세대가 아니어서 한자어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피동인지 능동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한자어의 경우 단어의 구조를 일일이 따져가며 사용하지 않고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뉘앙스를 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예컨대 ‘결실(結實)’은 원뜻이 ‘열매를 맺음’인데 지금은 뜻이 확대되어 ‘열매’라는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결실’이 곧 ‘열매’라는 해석은 사전에도 나옵니다. 여기서 ‘열매’는 곧 내재적 뉘앙스를 가리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실을 맺다’가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것입니다. 이 역시 사전에 사용가능한 표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구조상으로만 보자면 ‘결실하다’가 자연스러운 형태인데 이렇게 표현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상하다’, ‘피습하다’도 ‘부상당하다, 피습당하다’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어색합니다. 왜 어색한가 하면, ‘하다’라는 단어에는 ‘능동적으로 행위를 하다’라는 속성이 이 강하게 들어 있는데 이를 피동형에까지 사용함으로써 의미의 충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즘 들어 신문 등에서 그런 표현을 많이 쓰다 보니, 그 어색함이 반감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1900년대 초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被囚가 되면, 營廳에 囚禁을 當하되, 被捕되여, 敗滅을 當하게 되면...
물론 문법이 확립되지 않은 시절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왔다고 볼 수 있지만, 문법에 앞서는 것이 대중언어라고 봅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발을 걷어붙이고, 문닫고 들어와라’ 등은 문법을 떠난 관용어입니다.
-박지성 관련 ‘부상당한’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을 포함해 ‘피해를 입은’ ‘피습 당한’ 같은 표현이 맞는지,틀리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우리 신문이 뚜렷한 원칙을 세워야 하겠다.<우리 회사 심의실 지적>
*말그리 답변
아래는 우리의 말글 정책을 다루는 정부 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밝힌 공식 견해입니다.
-부상당하다’에서 ‘부상’은 ‘몸에 상처를 입음’이라는 의미의 명사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피동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상’에서 파생된 ‘부상하다’라는 동사만으로도 피동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상하다’가 맞는 표현이라고 해서 ‘부상당하다’라고 쓰는 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상’은 ‘부상을 입다’, ‘부상을 당하다’, ‘부상당하다’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저도 위의 공식 견해를 따르는 게 좋다고 봅니다. ‘부상당하다’는 단어의 구조로 볼 때 이중 피동의 혐의가 강하긴 합니다. 그 때문에 과거 이오덕 같은 재야 말글문화운동가들이 금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일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언어 습관이 변하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口訣에 ‘하다(하고, 하여)’는 있어도 ‘되다(되고, 되어)’는 없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들이 한자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문해가들이어서 피동형에 굳이 ‘되다’를 넣지 않아도 뜻을 파악하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자 세대가 아니어서 한자어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피동인지 능동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한자어의 경우 단어의 구조를 일일이 따져가며 사용하지 않고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뉘앙스를 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예컨대 ‘결실(結實)’은 원뜻이 ‘열매를 맺음’인데 지금은 뜻이 확대되어 ‘열매’라는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결실’이 곧 ‘열매’라는 해석은 사전에도 나옵니다. 여기서 ‘열매’는 곧 내재적 뉘앙스를 가리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실을 맺다’가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것입니다. 이 역시 사전에 사용가능한 표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구조상으로만 보자면 ‘결실하다’가 자연스러운 형태인데 이렇게 표현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상하다’, ‘피습하다’도 ‘부상당하다, 피습당하다’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어색합니다. 왜 어색한가 하면, ‘하다’라는 단어에는 ‘능동적으로 행위를 하다’라는 속성이 이 강하게 들어 있는데 이를 피동형에까지 사용함으로써 의미의 충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즘 들어 신문 등에서 그런 표현을 많이 쓰다 보니, 그 어색함이 반감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1900년대 초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被囚가 되면, 營廳에 囚禁을 當하되, 被捕되여, 敗滅을 當하게 되면...
물론 문법이 확립되지 않은 시절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왔다고 볼 수 있지만, 문법에 앞서는 것이 대중언어라고 봅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발을 걷어붙이고, 문닫고 들어와라’ 등은 문법을 떠난 관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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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천대홍 작성시간 06.07.20 심의실이 상당히 세심히 따지는가 봅니다. 지적까지 한 것을 보면 '부상당한'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고 느꼈군요.이중피동 아니냐, 잘못된 거 아니냐고 말그리님께 따졌군요.언어라는 것이 규격화된 틀이 있고 언제 만들어졌든 그 틀(규범)에서 벗어나면 틀렸다고 여기는 인식을 사람들은 좀 가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어휘의 의미는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변화의 속도가 감지되지만 문법이 변하는 속도는 아주 느려서 한 개인의 일생에선 느끼기 어려워 보입니다.1900년대와 현대의 글을 비교해 보면 어휘는 알기 어려울 만큼 다릅니다.그 시절 문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지는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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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천대홍 작성시간 06.07.20 국어에 규범문법이라는 것이 겨우 생기려고 움트는 시기였구요.그렇다고 현재와 확연히 다르진 않겠지요.부분적인 면에서 달라진 것들이 꽤 있을 겁니다.영어 등의 영향을 받은 것들 예를 들어 '~에 따르면, ~에 관하여 ~를 통해' 등의 서술 방식이 새로 들어와 쓰이고 있습니다. 다른 얘기로 약간 빠지려고 하네요.^^ 결실이나 부상 같은 단어가 한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다 가지고 쓰이기도 하지만 대개 합쳐져서 새로운 단어가 생긴 것으로 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본래의 한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집착해서 오해를 빚는 거 같습니다.새로운 뜻을 가진 단어의 탄생이라고 봤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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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천대홍 작성시간 06.07.20 말그님 말씀과 같은 의미이겠는데 대중언어가 문법을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한국어의 문법은 현재의 문법이어야 하고 문법을 정리하는 이들은 뒤늦게 변화하거나 새로 찾아낸 현상들을 정리하니까요.위 글에 대한 답글은 아니고 그냥 적어봤습니다. 두서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