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인문수다

인간의 자연, 지구의 자연

작성자물밤|작성시간24.06.23|조회수49 목록 댓글 3

변화하는 자연, 변화하는 인간.

*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지만, 자연과 지구도 변하고 있고, “그 속에서” 인간들의 삶의 과정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절대 권력을 누리던 영웅의 시대는 정복을 통한 약탈의 부를 획득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권력이, 시대적 과정을 정리하는 종교의 권세와 결탁하여, 가끔은 약탈과 민중의 수탈을 병행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의 사이의 연관이 불합리를 수학(기하학)과 논리(산술학)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통일성이 있다는 것으로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 보면 상징과 표시를 추상적으로 체계를 세운 논리적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구시대의 민중은 하늘의 360도를 재고 있을 수도 없고, 식량과 가축의 수를 산술적으로만 세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결과를 측정하는 권력은 그렇게 성립했을 것이다. 수학과 언어는 일찍이 결탁하였고 샤만과 같은 참주(황제)의 시대를 이어갔을 것이다

     수학과 논리의 적용이 하늘과 땅에 거의 맞아 들어가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겠지만, 혹시라도 제기자가 있으면 제거하거나 상부에 포획하여 편입시키는 것은 간단했을 것이다. 강압과 폭력으로 편입하지 못하는 사건이 브루노를 산채로 태워 죽이는 짓이었다. 우주와 물질계는 권력의 강압에 의해 또는 종교의 권세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고, 게다가 봄 다음 여름이듯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이법은 따로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천문학과 물리학이 권력과 권세에 벗어났다. 아직도 두 패거리는 지식분자인 지자들을 포획하여 편입시키려 노력했고, 자연체계와 물질체계가 원리에 복속되기나 하는 듯이, 이런 지자들은 패거리에 끌어들이려 했다. 뉴턴과 다윈은 아직도 자신들이 발견한 자연의 이법이 권세와 권위보다 상위에 있는 신과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아이슈타인까지도 이 패거리와 같이 통일성이 먼저 있다고 생각하여, 겉보기와 달리 패거리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복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삶과 과정들을 보면 그렇다.

   권력, 권세, 권위가 식민지 정책과 제국주의에 포획된 것만큼이나, 이 패거리들은 포섭되지 않는 부류들을, 지자들과 상층 철학자들을 통해서 단죄하고자 했다. 절대공간을 넘어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은하계를 넘어서는 천문학이, 열역학과 원자 내부 물리학이, 화학에서 원자들의 결합방식이, 생물학의 발생 기원이, 심리학에서 본능과 습관을 다루는 현자들이 세 패거리에 저항하고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를 누르는 방식은 세 패거리의 방식으로 되지 않아서, 제국주의(l’empirisme) 구성보다 상위의 ‘제국(l’empire)’을 구축하고, 그 상징과 표시로서 달러는 금과도 상관없는 상징기호로(구조주의 표현으로 기표로) 대체했다. 그 대체물이 꼭 자본이어야 하는지를 문제 삼는 것이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다. 통일성과 그 위의 상징계가, 실재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제기되고 있었다.

   그래도 자본 제국이 최상위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달러라기보다, 무기이다. 무기는 무기/도구시대, 즉 철기시대의 마지막이다. 1953년 시작한 규소시대가, 철기 3천년에 비해, 아직 백년도 안 되었지만, 그럼에도 철기시대의 에너지가 재래식 광물이거나, 발달된 원자와 수소인데 비해, 이 규소의 시대는 태양이 에너지라는 것이다. 겨우 70년 밖에 안 되었지만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거나 또는 분출하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70여년의 속도로 보아, 그리고 유인원, 현생인, 구석기, 신석기 등등으로 전개되었던 속도에 비하면, 규소의 시대는 어마어마한 속도라서, 미래가 더욱 비결정이다. 제국이 패거리들이 더 이상 예언, 점쟁이가 아니라, 사기꾼을 넘어서 약장수 야바위꾼이 될 판이다. 이 판을 유지해 주는 것이 투기로서 주식시장이다.

       미래는 규정할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 집단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을 이어가는 방식을 답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방식과 과정에서 보아, 그에 앞선 인간들과 같은 궤도를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미래를 알 수 없으면서도, 그들과 같이 가고 있으면서, 앞에 나열한 그들처럼 미래를 포장하여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세상을 기만했듯이 그도 이 나라를 기만하고 있지 않는가? 뭐, 석유가 나온다고?

   촛불시위에 놀라 등장한 것에 반응으로, 5년 동안 꿍꿍이수작으로, 정치권에서는 내각제 개헌이란 소리가 들렸다. 인민의 동의 없이 또는 기본심급의 움직임과 흐름의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패거리(카르텔)들이 윤석열을 앞세워 예속 권력을 구축했다. 이 패거리들의 과거와 연결에는 1894년 동학을 무너뜨리고, 1919년 백성들이 시위에 놀라,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와 다른 한쪽은 만주로 갔다. 이 두 방향이, 우리 입말로 소통할 수 있는 79년 동안에 양진영처럼 보인다. 만주와 일본. 중국은 1919년 5.4운동이래로 일본에서 배우는 것에 벗어나 서구를 직접적으로 배웠다. 우리는 일제 침탈로 그럴 기회가 놓쳤다. 우선 일본에게, 그리고 전후에 미국에게 배움을 청했다.

   서양의 패거리 문화에 포획되고 포로가 되었다. 남한은 어쩌다가 제국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브루노처럼 제거하는 과정을 거쳤던가? 보도연맹, 조봉암, 인민혁명당, 민주청년연합, 남민전 등으로 계속되었다. 마남사냥에 겁먹은 경북은 결과를 원인으로 세우려는 박정희를 내세우려 하고 있고, 일본과 미국을 따르는 패거리들은 단절의 역사를 만들면서 이승만의 망상까지도 불러오려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제국,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등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여러번 이야기했고, 그리고 “천하루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을 배우자고? 미국은 유럽계의 패거리에 속하는 소수자가 상층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하부로 삼는 방식으로 이원화 되어 있고, 전쟁이후에 로마 황제 이상으로 옥상옥의 체계를 구축했다. 그 속에서 인민의 자주성과 자연의 자발성은 패거리의 속성상 배제된다. 일본과 같이 가자고? 일본은 입말과 말투, 문자로 정립에서 이원화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고 한다. 그 속에서 패거리가 승리를 구축한 것이 일본의 내각제이다.

   왜 미국도 일본도 아닌가? 남쪽에서 입말의 문자화가 87년 이후로 치면, 겨우 40년이 채 안되지만, 팔천만이 공유하는 입말의 씀씀이는 79년이나 된다. 게다가 문화적으로 우리는 천년의 불교, 오백년의 유학의 전통이 있고, 다른 한편 1446년 이래로 내재적으로 이어온 입말 있다. 이제 겨우 입말의 세대가 되어 인민이 계속하여 이끌어 갈 것이다. 그 입말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위계로서 이분화 된 내각제는 안 될 것이라 했다.

    입말의 문자화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서구의 저항과 혁명이 기나긴 종교와 근대과학에서 자연의 빛을 느끼는 “권능”에서 유지하고 있듯이, 우리에서는 권능이 있어서, 패거리 방식으로 일본 제국주의, 미국의 제국이라는 단절된 계급방식으로 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집단이 만주파가 아니라 섬나라파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내각제 물 건너갔다고 하면서도, 윤석열을 조기 퇴각시키면서 내각제로 갈려는 거대 양당의 말투가 있었다. 인민의 최종심급을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상부 패거리들이 계속적으로 정치를 하려 한다. 79년 동안에 인민은 자기 소통을 상부와 달리 이루어왔고, 거대한 촛불의 경험을 느끼고 산다. 인민이 헌법 제안권과 세 패거리에 굴종하는 자하고 사적이익을 취한 자들을 소환하는 소환권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권은 제도 속에서이고, 입말과 말투에서 인민이 주인이며 최종심급으로서 자연권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내각제가 아니라, 인민의 자연권에 대한 윤석열 집단에 대한 저항과 항거가 민주당 안에서 일어날 것 같다. 정당에서는 당원이 중심이 되고, 나라에서는 인민이 주인이란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사회권과 더불어 자연권이 소통될 때, 이때 생물학과 심리학이 내재성의 철학의 본류라는 것도 잘 소통될 것이다. 수학과 언어논리는 패거리의 담합의 도구(Organ)였다. (57AMB)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물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3 <들뢰즈의 별명이 혈거인이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굴속에서도 세상을 주유하는 노마드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는데, 이해는 할 것 같다. 그래도 일 년에 한번 굴속을 비추는 동지의 빛을 그리워한다. 요가 수행자 같은 안트완이 구걸하여, 키 만큼 큰 360개 크랩(밀가루 전)장을 메고서, 폐허가 된 성에 처박혀 뱀과 지네 등 온갖 벌레와 일년이 지나면, 빛이 들어와, 다시 구걸하러 나갔다가 이를 반복하여 성 앙트완은 득도를 했다고(크리스트교에서는 예수를 만났다나 하느님을 만났다나) 한다. 왕자 출신인 싯달다는 나무그늘 밑이었지만, 중생은 동굴이라도 그게 어디인가. (57QLJMA)>
  • 작성자물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3 <혈거인(troglodyte): 󰡔철학지(Philosophie)(n 47. 1995, 9월호)는 들뢰즈가 세상을 떠난 후, 바로 들뢰즈 특집호를 냈는데, 첫 꼭지가 조사 겸 존경의 글을 베르노(André Bernold 1958-)가 썼다. 그는 “수이다스(Suidas, 고대 철학자 인명록)”이란 제목에서 들뢰즈를 혈거인이라 표현한 것이다. 그 두 쪽의 조사는 고대 그리스 사상에 비추어서 서술했는데, 나로서는 들뢰즈를 그리스의 퀴니코스 현자인 디오게네스가 관통 속에 살았다는 것을 빗대어 현대에서도 퀴니코스 현자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 글속에 잘 알 수 없는 그리스 여러 학자들에 빗대어 들뢰즈가 그와 같은 작업을 했다고 하다. 이 글은 말년에 들뢰즈의 생각과 일치한다. “들뢰즈가 󰡔철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philosophie?, 1991)󰡕 다음으로 이 논문 「플라톤과 그리스인들」(1992)를 수정하여 1993년에 다시 쓴 것은 ‘내재성의 환원불가능’을 다시 강조한 것인데, 초월성의 제국적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57QMC)
  • 작성자물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3 <그런데 들뢰즈는 문학잡지에 실리 어느 대담에서(「철학에 관하여(Sur la philosophie, 1988)」, 토인비(Toynbee, 1889-1975)의 구절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노마드들은 꿈적이지 않는 자들이고, 이들은 떠나지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에 노마드들이 된다.”인데, 이것을 달리 생각해보자, 그는 이미 철기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규소의 시대, 즉 디지털 시대. 전자파는 빛과 달리 동굴 속에서도 수신과 송신이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 같다. 그는 혈거인이란 별명과 달리 노마드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푸꼬는 전지구를 돌아다녔지만, 들뢰즈는 그렇지 않았다. 둘 다, 각자(覺者)의 성불(成佛)을 꿈(소크라테스의 욕망)을 실현해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59QMD)>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