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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연, 지구의 자연

작성자물밤| 작성시간24.06.23| 조회수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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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물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23 <들뢰즈의 별명이 혈거인이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굴속에서도 세상을 주유하는 노마드라고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는데, 이해는 할 것 같다. 그래도 일 년에 한번 굴속을 비추는 동지의 빛을 그리워한다. 요가 수행자 같은 안트완이 구걸하여, 키 만큼 큰 360개 크랩(밀가루 전)장을 메고서, 폐허가 된 성에 처박혀 뱀과 지네 등 온갖 벌레와 일년이 지나면, 빛이 들어와, 다시 구걸하러 나갔다가 이를 반복하여 성 앙트완은 득도를 했다고(크리스트교에서는 예수를 만났다나 하느님을 만났다나) 한다. 왕자 출신인 싯달다는 나무그늘 밑이었지만, 중생은 동굴이라도 그게 어디인가. (57QLJMA)>
  • 작성자 물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23 <혈거인(troglodyte): 󰡔철학지(Philosophie)(n 47. 1995, 9월호)는 들뢰즈가 세상을 떠난 후, 바로 들뢰즈 특집호를 냈는데, 첫 꼭지가 조사 겸 존경의 글을 베르노(André Bernold 1958-)가 썼다. 그는 “수이다스(Suidas, 고대 철학자 인명록)”이란 제목에서 들뢰즈를 혈거인이라 표현한 것이다. 그 두 쪽의 조사는 고대 그리스 사상에 비추어서 서술했는데, 나로서는 들뢰즈를 그리스의 퀴니코스 현자인 디오게네스가 관통 속에 살았다는 것을 빗대어 현대에서도 퀴니코스 현자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 글속에 잘 알 수 없는 그리스 여러 학자들에 빗대어 들뢰즈가 그와 같은 작업을 했다고 하다. 이 글은 말년에 들뢰즈의 생각과 일치한다. “들뢰즈가 󰡔철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philosophie?, 1991)󰡕 다음으로 이 논문 「플라톤과 그리스인들」(1992)를 수정하여 1993년에 다시 쓴 것은 ‘내재성의 환원불가능’을 다시 강조한 것인데, 초월성의 제국적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57QMC)
  • 작성자 물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23 <그런데 들뢰즈는 문학잡지에 실리 어느 대담에서(「철학에 관하여(Sur la philosophie, 1988)」, 토인비(Toynbee, 1889-1975)의 구절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노마드들은 꿈적이지 않는 자들이고, 이들은 떠나지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에 노마드들이 된다.”인데, 이것을 달리 생각해보자, 그는 이미 철기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규소의 시대, 즉 디지털 시대. 전자파는 빛과 달리 동굴 속에서도 수신과 송신이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 같다. 그는 혈거인이란 별명과 달리 노마드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푸꼬는 전지구를 돌아다녔지만, 들뢰즈는 그렇지 않았다. 둘 다, 각자(覺者)의 성불(成佛)을 꿈(소크라테스의 욕망)을 실현해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59Q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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