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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넋두리방

'파파로티'와 선생님

작성자인디컴(신승태)|작성시간13.03.07|조회수133 목록 댓글 2

그제(3/5)는 오는 3/14일 개봉 예정인 한석규/이제훈/강소라/오달수 주연의 영화 '파파로티' 시사회를 봤다.

 

한 때 잘 나가던 성악가였지만 지금은 촌구석 예고의 음악 선생인 상진(한석규). 싸늘한 교육열, 까칠함만 충만한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미션이 떨어진다. 천부적 노래 실력을 지녔으나, 일찍이 주먹세계에 입문한 건달 장호(이제훈)를 가르쳐 콩쿨에서 입상 하라는 것. 전학 첫날 검은 승용차에 어깨들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것도 모자라, 수업 중에도 ‘큰 형님’의 전화는 꼭꼭 챙겨 받는 무늬만 학생인 장호가 못마땅한 상진. 장호의 노래를 들어볼 필요도 없이 결론을 내린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냐?!”

주먹과 노래 두 가지 재능을 타고났으나 막막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주먹 세계에 뛰어든 장호. 비록 현실은 ‘파바로티’의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는 건달이지만 성악가가 되고픈 꿈만은 잊은 적 없다. 이런 자신을 가르쳐 주긴커녕 툭하면 개나 소나 취미로 하는 게 클래식이냐며 사사건건 무시하는 쌤 상진의 태도에 발끈하는 장호.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장호는 험난하고 까칠한 상진과의 관계를 이어가는데...
“쌤요. 내 똥 아입니더!”

 

흘러가는 자막을 보니 어느 여성작가분께서 시나리오를 썼던데 사실 좀 엉성한 면이 제법 있었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한 70점???

'신세계'같이 좀 더 치열하고 빈틈 없는 시나리오를 쓸 수는 없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유머와 감동이 있는데다 요즘 국산영화가 대세인지라 2~300만 정도의 관객을 예상해 본다.

 

 

지난 2/26(화)일은 고교 3학년때 담임을 하셨던 문병완 영월교육장님의 퇴임식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당시도 목표는 오직 대학입시!!!

입시에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내느냐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의 고교는 입시열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열악한 시골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이 쉽지많은 않은 일이었지만,

선생님께서 담임을 하셨던 그 때는 3힉년을 가르치는 모든 선생님들이 정말 혼연일체가 되어 학생들을 지도하셨다.

55명에 불과한 문과에서 서울대 2명, 고려대 2명,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건국대, 서울시립대 등등

정말 말도 안되는 기적을 일구어냈다.

덕분에 선생님은 우리 기수를 끝으로 춘천으로 바로 스카우트되어 떠나셨다.

 

선생님께서 교장 진급을 하셨을 때 원래는 벽지의 중고교 교장으로 발령이 나야 하는데,

동문들이 강원교육청을 찾아가 선생님을 모교 교장으로 모시고 왔다.

선생님께서 모교 교장으로 재직시에도 매년 서울대를 비롯한 유수의 명문대에 후배들을 대거 합격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강원의 최고 명문인 춘천고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지 못할 때에도 영월고 만큼은 서울대를 보냈다.

이 기사가 신문에까지 날 정도였으니...

어쨋든 이제 영월고는 강원남부의 명문고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께서 퇴임사를 하는 동안 지나간 소회를 밝히셨는데, 너무 입시위주의 교육에 대해서 반성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마 현직 교육장 직위에 계셨으면 쉽게 하시지 못할 말씀인데 교육계를 떠나시다 보니 마음에 있는 말씀을 하신 것같다.

지나친 입시위주의 교육보다는 보다 더 인성을 중시하는 교육이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은 아직도...

 

본의아니게 여러 제자를 대표해서 내가 사은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스승의 은혜를 어찌 글로 다 표현하리오만 그래도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해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선생님께서는 향후 킬리만자로 등정을 도전하시겠다고 한다.

일단 꾸준히 등산을 해서 몸부터 만드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기회가 되면 같이 가셨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나로서는 선생님께서 멋진 도전을 성공하시기를 빌어본다.

 

아래는 제가 퇴임식 당일 낭독한 사은사입니다.

 

사은사(謝恩辭)

 

존경하는 문병완 교육장님!

 

그 어느 해보다도 동장군의 기세가 거칠었던 겨울을 뒤로 하고 멀리 남녁으로부터 올라오는 따스한 봄기운의 부드러움이 느껴지려는 즈음에, 저희들과 어언 30여년의 인연을 맺어오셨던 선생님께서 천직으로 여기고 소임과 봉사를 다해오신 교육계를 떠나신다고 하니, 한 편으로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한 편으로는 섭섭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궁핍하기만 했던 30여년 전 그 시절에 오로지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충만하셨던 선생님의 지도와 가르침은, 가치관이 흔들리고 방황하던 저희들을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고, 힘들고 지친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셨으며, 어려운 고비를 잘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셨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더 큰 세상을 위한, 더 높이 날기 위한 지혜를 주셨으며,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믿음과 도리 그리고 인성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어느 현직에 계신 분께서 선생님을 좋은 선생님, 보통 선생님, 나쁜 선생님의 세 부류로 분류해 놓은 글을 인터넷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전체 선생님중 약 5% 정도로 근본적으로 인성이 따뜻하고 사람을 좋아하며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 선생님으로서, 교재 준비도 철저하고 수업을 흥미롭게 이끌어간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편애하지 않고 불우한 환경의 제자에게 늘 관심을 가져주신다고 합니다.

또한 학생들이 단결하고 서로 배려할줄 알게 지도하며 학생 개개인의 문제와 성격, 가정환경 등을 파악하여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도하는 선생님이 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 시절 저희들을 가르치셨던 선생님들 모두가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와 열정이 대단하셨지만, 문병완 선생님께서는 특히 더없는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셨던 ‘좋은 선생님’의 본보기이십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맥주 몇 병과 과자 몇 봉지를 사들고 선생님댁을 방문할 때면 어김없이 따뜻하고 인자하게 맞아주시던 선생님과 사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해 있는 친구인 성균관대 함현찬교수의 추억에 의하면 3학년 5월경에 중학교 때부터 스토커처럼 편지를 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하루는 선생님과 상담을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당연히 만나야지”하시며 점심시간에 불러내서 약속장소로 가보라시며 교무실 문을 나서는데 “현찬아, 갔다와서 꼭 얘기해줘야 한다.”고 관심과 용기를 주셨다고 회상하더군요.

 

제가 그 당시 육군사관학교 지원문제로 이래저래 고민에 싸여 있었을 때 육사원서를 쓰는 문제로 선생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시절이었지만 어린 제 생각에도 마냥 군의 득세가 계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말씀드리지만 제가 마음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미래를 봐서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고 이는 제가 육사를 포기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당시 연구주임 선생님께서는 몇 번이나 저를 불러서 원서를 쓰라고 독촉하셨던,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그런 추억도 생각납니다.

 

이처럼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을 때로는 제자로서, 때로는 친동생처럼 마음으로 보살펴주시고 한없는 관심과 사랑과 정을 듬뿍 쏟아주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교육자를 일컬어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아무나 보고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게 일반화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제가 대학에 갔을 때 어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선생(先生)이란 호칭은 학문적으로나 덕망이 높은 사람, 혹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나 붙이는 것으로 퇴계 이황 정도는 되어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문병완 선생님은 진정한 의미의 ‘선생’님이십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랑하고 존경하는 영원한 스승님으로서 저희 마음속 깊은 곳에 선생님을 간직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자를 길러내셨습니다. 그 중에는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가진 제자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요즘들어서는 학사, 석사, 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가 네 개가 더 있다고 합니다.

 

그 학위는 밥사, 술사, 감사, 봉사인데 ‘밥사’는 동료를 위해 기꺼이 따뜻한 밥 한끼 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며, ‘술사’는 힘들때 고민을 함께 들어주며 술 한잔 사주는 사람이랍니다.

 

‘감사’는 욕망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며 매사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며, ‘봉사’는 남과 나누면서 더불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이제부터는 저희들이 학사, 석사, 박사의 학위를 다 걷어치우고 밥사, 술사, 감사, 봉사의 타이틀로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인생의 2막을 새롭게 출발하시는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한 모습으로 제자들의 마음속에 굳건하게 자리하셔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아쉬운 선생님의 퇴임 앞에 마음속 깊이 사은의 말씀을 올립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그리고 사랑합니다.

 

2013. 2. 26(화)일에

 

이 자리에 참석해준 친구들과

비록 참석은 못했지만 경향 각지에서 마음으로 성원하고 축하를 보내고 있을 영월고등학교 8회 제자를 대표해서

신승태가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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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카오(강경옥) | 작성시간 13.03.08 존경할만한 스승님이 계시다는건 참으로 부럽고 행복한 일입니다... 세종시가 행정도시라면 영월은 교육도시가 되야할거 같은데요?ㅎㅎ
  • 작성자우면산(김정만) | 작성시간 13.03.08 그 자리에 함께 할수 없었길레 지금에서야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제 고3때 담인 선생님이였지요. 우리도 문과 한반이 60명정도 되었는데 4년제 대학을 50여명 이상이 갔습니다.
    우리 선배 기수까지는 학급수가 2개 학급이였고 우리때는 인원이 늘어서 3개 학급이였는데 한 선생님이 4개 과목을 가르키기도 했지요.
    문병완 선생님께서 졸업 하기 전에 저에게 민병철 영어회화 테이프도 사 주셨는데....그걸로 대학에 들어가서 매일 카세트 테이프를 듣었던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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