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해석: “돌에 새겨져 죽게 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주어져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 빛(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폐하여진 영광) 때문에 그 얼굴을 바라 볼 수 없었다면, 성령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럽지 않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2Co 3:7-18 NKR)
-해석: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은 모세의 얼굴을 변화 시켰다. 이에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덮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화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했을 것이기에, 그 대신에 모세가 주었던 돌판의 기록(script)에 주목했다. 그 돌판의 기록 역시(더욱 간접적인 방법으로) 영광, 곧 옛 언약의 진정한 목적인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사람을 증거한다. 그러나 돌판 자체를 목적(end)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돌판은 수건으로 덮여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주께 돌아오는 자들은 돌판을 통해서 그, 텔로스(목적), 곧 구약의 진정한 목적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들을 덮고 있던 수건은 벗겨지고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같이, 모세와 율법이 항상, 가려진 모습으로, 가리켰었던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3장 16절: 모세는 야훼(주, 칠십인역)에게로 돌아 갈때에 모세/토라의 수건이 벗겨지고,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갈 때에 모세/토라의 수건이 벗겨지고, 바울 서신의 독자들은 성령에게로 돌아 갈 때에 모세의 메타포의 수건이 벗겨진다. 이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메타포를 깨닫게 된다)---삼위일체를 보여준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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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lpkim 작성시간 17.10.06 율법이 폐해질 수 없는 이유도 되고, 율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를 보라는 것 같네요.
Richard B. Hay 교수는 역시 로마서 3-4장을 논하면서 율법을 복음, 즉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의 예표로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mennonit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10.06 목사님 반갑습니다.
모세가 수건을 덮은 것을 놓고, 율법이 폐하여 지고, 율법을 열등한 것으로 해석하여, 마치 바울과 율법/기록된것, 율법/그리스도의 영광 을 대립적으로 해석이 있지만, 그러나 헤이스는 가려진 것은 점차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가려진 것이 폐하여 지면, 영광이 어떻게 드러나겠는가? 라고 의문을 제시합니다. 가려진 것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숨겨져 있는 것이며, 이것을 모세는 성막(또는 시내산)에서 보았고, 바울도 동시에 고린도 교회 안에서 그 영광을 보았고, 따라서, 가려진 것에 안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시간 되시면, 레위기를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