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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메타포라 8기

4차시-오른손의 파업

작성자작은나무|작성시간21.06.06|조회수58 목록 댓글 6

 

오른손의 파업

 

하루의 절반을 노트북 앞에서 굽은 자세로 보냈다. 격주에 하루 쉬는 날 빼고, 마감시간에 쫓겨 사는 일상이 이어졌다. 내가 쓰는 기사 속 과로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착취에 가까운 업무량이었지만, ‘젊으니까’,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잠을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다그쳤다. 탈락을 거듭하다 들어간 첫 직장에서 버텨야만 하는 이유는 부모님 얼굴 말고도 차고 넘쳤으니까. 당시의 나에게 ‘몸’을 돌보는 건 사치였다.

 

이상 증세를 느낀 건 취직한 지 두 해쯤 지나서였다. 결혼식 전날 아침, 양치하다가 갑자기 칫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뭐지? 미끄러졌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칫솔을 다시 주우려는데 오른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상했다. 남편을 부르려는 찰나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몰려왔다. 손끝부터 팔뚝까지 미세한 바늘 수백 개가 뼛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손이 아프니 어느 병원을 가야할 지도 난감했다. 집 근처 큰 병원에 가서 바로 CT 촬영을 했다. 기계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점점 깊어지는 통증에 눈물이 맺혔다. 정말 살면서 그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신경외과 의사는 목디스크가 의심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조증상은 없었느냐고도 물었다. 평소 손이 약간 저리고 어깨에 큰 돌을 짊어진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몸이 보내는 신호인 줄은 몰랐다. 강한 진통제에 기대서 겨우 결혼식을 치렀고, 이내 회복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도 통증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러 병원을 돌아다닌 끝에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 인대 일부를 끊어내는 수술까지 했지만 손에 감각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내 몸에 붙어있는데 남의 살처럼 느껴졌다. 차갑거나 뜨겁다는 느낌도 어렴풋했다. 당연히 글씨를 쓰지 못했고, 샤워기를 들 수도 없어 씻는 것도 버거웠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돌부리처럼 걸렸다. 절망이 깊어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러다가 영영 손을 쓰지 못해서 장애인이 되면 어떡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늘 ‘젊고 건강한’ 줄로만 알았던 내 몸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감기처럼 금방 나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오른손은 생각보다 더 오래 아팠다. 사계절이 흘렀고, 절대 쉬지 못할 것 같았던 회사를 잠시 쉬었다. 아프기 이전의 손, 예민한 감각을 오롯이 느끼는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도 서서히 내려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펜을 쥘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생긴 손을 발견했다. 어린아이처럼 글씨가 삐뚤빼뚤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했다.

 

내가 ‘깃들어 사는 몸’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다. 늘 부족한 돈과 시간을 핑계로 미루던 운동을 시작했다. 퇴근 후 늦은 밤 꾸역꾸역 매트 위에서 몸을 굴렸고, 가끔은 강변을 뛰러 나갔다. 지금의 건강이 영원하지 않으며, 당연하지도 않으며 어느 한순간 갑자기 잃을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몸’을 오롯이 존중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건강하고 아름다운(그렇다고 여겨지는) 육체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안에는 여전히 ‘매일같이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재는 나’, ‘표준화 된 몸으로 살기를 열망하는 나’, ‘젊고 건강해보이고 싶은 나’가 뒤섞여있다. 내게 있어 몸은 여전히 극복과 통제의 대상이다. 내가 내 몸을 ‘깃들어 사는 몸’ 그 자체로 바라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늙고 아픈 몸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히 고민이다. 돌이켜보면 주변에 늘 아픈 사람이 있었지만, 내가 아프고 나서야 아픈 사람들이 보였다. 가깝게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와 고모가 암투병을 했거나 투병 중에 생을 마감했다. 그보다 ‘하찮게’ 여겨지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널렸다. 그들의 병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저 살면서 겪게 될 불운 중에 하나 정도로 여겼다. 동시에 나는 그 불운을 늘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들과 비교해서 나는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안도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아프고 늙어가는 일이 모든 인간의 조건이라 해도, 그것이 구체적인 나의 일’(54쪽)은 아니었던 거다.

 

내 자신이 ‘몸으로 사는 존재’임을 지독한 고통 속에서 (261쪽) 알게 되었으면서도 내 몸과의 화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지닌 채 살아야 하는 오른손을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내 몸이 겪게 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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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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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프롬(정예진) | 작성시간 21.06.07 늙고 아픈 몸을 두려워하는 것, ‘아프고 늙어가는 일이 모든 인간의 조건이라 해도, 그것이 구체적인 나의 일은 아니'라는 것 모두 폭풍공감입니다ㅠㅠ 꼭 아프고서야 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면서 건강을 추구하면서도, 한 편으론 늙음과 아픔을 결국 겪게 될 것인데 그걸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작성자고쌤 | 작성시간 21.06.11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식으로 교육 받고 살아오다 보니 몸과 정신이 마치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여길 때가 많았어요. 나이가 들면서 기력을 잃어가니까 드디어 정신도 몸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아직 작은나무 님처럼 큰 불편을 겪은 적은 없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두렵고 힘들지 이 글을 읽으면서 상상해보게 됐어요. 경험과 메시지가 분명한 글이라 좋았습니다.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1.06.13 결혼식 전날 이런일이 있으셨다니요. 독한 진통제에 의지해서 식을 마치고 신행을 다녀오셨을 작은나무님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미리미리 힘든 것도 이야기하고, 아픈 것도 표현하면 되는데 책임감이 큰 사람은 내가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그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짧게 스치듯 지나간 회사 이야기, 그곳에서 내가 놓고 싶지 않았던 것, 아프지만 그래도 버텼던 이유가 궁금해진 글이었어요. 뭔가를 읽고 쓰는게 수년간 일상을 채웠던 일이었을텐데, 그 상황에서 어려웠던 것들도 궁금하네요. 이렇게 댓글을 적다보니 다양한 소재가 보이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초록이 | 작성시간 21.06.13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몸’을 오롯이 존중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다." 저두요. 자라며 이런 연습을 해오지 않아서 '쓸모 있는' 몸만 정상이라 여기고 있지 않았나 반성했어요. 저 역시 작은나무님처럼 몸에 대해 통제도 심하고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생각해왔기에 문장 하나하나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휴직하며 파업한 오른손을 어찌 돌보기 위해 운동 외 어떤 치료를 했는지, 그 과정 중 작은나무님의 생각 변화 등도 궁금했어요. 제 사고를 더 많이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힘을 실어주는 글 고맙습니다.
  • 작성자글월 | 작성시간 21.06.14 "손끝부터 팔뚝까지 미세한 바늘 수백 개가 뼛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너무 실감나는 표현이라서 오싹했어요. 잘 읽었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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