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는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십니다.
이번 우리 아이들이 지리산 주변과 섬진강 가를 걸으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눈이 오면 눈길을,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는 구절이 마음에 오네요.
우리 아이들은 이번 순례처럼 잘 걸어가겠지요?
길을 걸으면 또 길이 나오고...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힘들어 죽을 것처럼 발이 아팠지만 밤새 자고 나면 또 다음을 걸어갈 수 있는 힘도 생긴다는 것을...
때론 외로울 때 이 길을 같이 걸었던 친구들을 생각하겠지요
길은 아이가 걸었는데 순례 후 몸살은 제가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이 손에 안 잡혀 미뤄두었던 집안 청소며 일간지 읽는 일, 동사무소 가는 일까지 오늘 했습니다.
전 이번 순례 때 아이들과 함께 하루는 온종일, 그리고 이틀은 토막 시간을 같이 하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맨 꽁지에 걸으며 아이들을 지켜주었던 경민샘 바로 앞에서 걸어야 했지요.
아이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그런 이유로 경민샘과 조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기는 우리 학교 이사인 이오석 목사님의 둘째 아들인데
공동체에 관심이 있어서 1년을 계획하고 왔다고.
성공회대 역사학과 휴학중이라고 본인 소개를 했습니다.
전 성공회대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인 신영복 선생님이 계신 것만으로
그냥 좋아하는 대학입니다.
고등학교는 대안학교인 전남 담양의 한빛고등학교를 나왔다기에 김용택 시인의 아들 민세를 물어봤더니 같이 공부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섬진강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씨의 시를 읽어주려고 가져왔단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전 우리 아이들에게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조심스레 전했습니다.
그 시가 워낙 다 긴 연작시이고, 지금부터 20년 전에 쓴 시들이라서 그 당시를 대항하는 시이기도하고....글쎄 그 시를 읽어주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들을 위해 사랑으로 헌신하는 것도 고마운데 시까지 준비했단 얘기를 듣고 참 고마웠습니다.
당분간 학교에 가면 그 청년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1년간 공동체에 머물 예정이란 소리로만도 그냥 든든했습니다. 순례 내내 아이들 발에 생긴 물집 치료를 도맡았더군요. 좋은 샘이자 형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이제 이 가을 속으로,
또 우리의 내면으로 침잠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가을같은 사색이 있는 10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순례 때의 느낌을 글로 옯겨보는 귀한 일도 꼭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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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혜인맘 작성시간 07.10.17 양희은이 최근앨범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불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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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요셉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0.17 건강한 육체의 힘이 느껴집니다. 도시에서 시를 읽는 것보다 들판에서 소 먹일 짚을 거두며 월동준비 하시는 회장님은 그대로 시인이십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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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경민아빠 작성시간 07.10.17 처음 보는 시에 처음 듣는 시인 입니다. 원래 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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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요셉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0.17 부끄럽긴요. 시 별로 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모르는 게 더 건강할 수 있기도 하고..워낙 다른 데 탁월하신 자칭 잡사님! 넘 많이 아셔도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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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요셉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0.22 묘하게도 주말 조선일보 연애시 난에 시인 정일근이 위 시를 소개했네요. 하나 놓친 게 있어서 옮겨요. 노란 꽃을 피우는 수선화는 가녀린 꽃대에 언밸런스하게 큰 꽃을 달고 온종일 해바라기를 하는 사랑법을 지녔답니다.꽃이 지면서까지 해바라기를 멈추지 않는 그의 꽃말은 "사랑에 답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