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1876년부터 1896년까지 무려 20년 동안이나 신경학자 겸 해부학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정신분석학의 거두가 된 이후 프로이트 자신이 그 사실을 숨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신경학자로서 프로이트의 삶은 정신분석학자로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신경학 연구에 뛰어든 데는 찰스 다윈의 영향이 가장 컸다.
신경학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프로이트는 생리학자 에른스트 브뤼케(1819~1892)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브뤼케는 흔쾌히 연구실에 자리를 내주면서 ‘가장 원시적 어류인 칠성장어의 신경계, 그 중에서도 척수 근처에 포진해 있는 라이스너 세포들을 살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브뤼케는 학창시절부터 40여년 동안 라이스너 세포를 연구해오고 있었지만 상굿도 이해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칠성장어의 치어에서 라이스너 세포의 전구체를 찾아내어 그것이 고등 어류의 후방 척수신경절 세포에 상응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발견으로, 브뤼케는 성어와 전혀 다른 치어를 연구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이어서 프로이트는 무척추동물인 가재의 신경계 연구에 돌입했다. 당시에는 무척추동물의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 요소가 척추동물과 다르다고 간주되었는데, 프로이트는 두 동물이 형태학적으로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두 동물 간의 근본적 차이는 세포 요소가 아니라 조직화 여부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프로이트는 비로소 진화론의 핵심인 ‘가장 보수적인 수단을 밑바탕으로 하여 점점 더 복잡한 신경계가 구축되어 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1882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프로이트는 신경해부학자이자 정신과학자인 테오도르 마이네르트의 연구실에 합류했다. 당시에는 인간의 정신과 뇌 사이에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관계가 성립한다고 간주되었는데, 프로이트는 이에 회의를 느껴 인간의 정신과 뇌에 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수행했다. 프로이트는 비엔나종합병원의 병동에서 숙식하면서 신경학자로서 임상적 관찰을 계속했다. 그는 수많은 사례를 분석하여 잇달아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1886년 프로이트는 비엔나에 신경과 병원을 개업했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뇌졸중과 신경증 환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했다. 프로이트는 공립 소아질환연구소에도 출근하여 매주 여러 차례 신경클리닉을 열었다. 여기서 얻은 경험은 영아 뇌성마비에 관한 세 권의 모노그래프로 출간되었는데, 당시에는 물론 요즘도 신경과 의사들에게 참고가 되고 있다. 이 기간에도 프로이트의 호기심‧상상력‧이론화 능력은 계속 증가하여 좀더 복잡하고 지적인 연구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뇌에 관한 역동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자리였다.
프로이트는 1891년에 출간된 「실어증」에 실어증(失語症) 환자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들을 자세하게 서술해놓았다. 새로운 언어가 상실되지만 모어는 보존되는 현상, 가장 자주 사용되는 단어와 연상들이 보존되는 현상, 한 단어 이상으로 구성된 일련의 단어들이 보존되는 현상, 자기가 의도한 말과 다른 말을 하고도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 등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관심을 끈 것은 외견상 무의미해 보이는 상투적 어구가 때로는 언어의 유일한 잔류물이며, 뇌졸중 직전인 환자의 마지막 발언이 될 수도 있다는 현상이었다.
프로이트는 실어증의 치료 방법으로 지금껏 수행되어오던 중추신경 대신 피질영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피질영역이란 대뇌피질의 넓은 범위를 말하는데, 이곳에는 다양한 기능들이 존재하며 그 중 일부는 촉진하고 일부는 서로 억제하여 역동적으로 작용한다. 훗날 정신분석학자들은 프로이트가 「실어증」에서 제시한 회귀 개념을 훨씬 더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실어증에 관한 프로이트의 견해가 중추 중심의 사고에서 뇌에 관한 역동적 견해로 진화함에 따라 히스테리에 관한 그의 견해도 비슷하게 진화해갔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심리학을 위한 프로젝트》라는 논문에서 정신상태의 신경적 기반을 상세히 기술하기 위해 고차원적인 이론화를 시도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1880년대부터 1890년대 사이에 정신의학 연구 쪽으로 서서히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1888년 어린이의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증상을 기술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1895년에는 그가 직접 경험했고 환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례가 관찰된 넓적다리무감각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프로이트가 평생 가장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기억의 본질이었다. 그는 실어증도 일종의 망각으로 간주했으며, 편두통의 초기 증상도 망각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다양한 수준에서 기억의 생리적 기초를 설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프로이트는 기억과 동기는 대단히 높은 수준에서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회상은 동기와 결합되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프로이트는 기억이란 국소적 뉴런의 흔적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기억이란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고 평생 동안 재조직되는 과정이었다. 기억의 힘은 정체성 형성의 핵심이며, 개인으로서 지속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기억은 변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복구되고 개정되고 再범주화되는 것이다. 모든 기억은 再창조 또는 再범주화라고 할 수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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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원섭 작성시간 19.02.01 내가 요즈음 실어증 증세가 있는 것 같더라고...
빤히 아는 말이 생각이 안 나는 거...
글을 쓰다가도 그런 경험을 숱하게 하거든...
이상타 이상타 했더니마는.. -
작성자은자 작성시간 19.02.01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꿈의 해석>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네요.
프로이트가 1900년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출판한 이래, 꿈은 정신분석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는 꿈을 통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본능적 욕망을 충족함으로써 낮 동안의 긴장을 해소한다. 또한 꿈은 억압된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꿈을 분석하다 보면 무의식 안에 갇힌 신경증이나 정신증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본능을 이해할 수 있다. 꿈의 분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몽’과는 다른 것으로, 이는 우리 내면의 무의식을 이해에 이해하려는 시도 ( 뒷부분 인터넷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