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QnA

찌그러진 백자 달항아리

작성자박찬희|작성시간17.09.18|조회수408 목록 댓글 3

(국립중앙박물관 3층 도자실에 있는 백자 달항아리)


  지난 토요일 몇몇 분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답사를 갔다. 3층 백자실에서 백자 달항아리를 볼 때였다. 빙빙 돌며 백자 달항아리를 살펴던 사람들이 눈이 동그래졌다.

  "찌그러졌어요. 이쪽하고 저쪽하고 달라요."

  한 쪽면만 보면 그나마 멀쩡한  같은데 이리보고 저리보면 모든 면이  다르다. "찌그러졌어요"라는 말에는 찌그러졌는데도 독립장에 전시를 하고 게다가 전시실 한가운데 자리잡았으며  최순우 선생이 사랑한 작품이라고 이름까지 붙였다는데 대한 의아심이다

  만약 달항아리가 찌그러지 않았다면? 어쩌면 달항아리는 신화가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미술사학자들이나 예술가들 일부가 중국이나 일본 미술과는 다른 한국 미술의 특징을 자연스러움에서 찾았는데 거기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 달항아리였다. 좌우가 완벽하게 균형이 맞았다면 자연스럽다는 말을 붙이기 어려웠을 터

  달항아리는 몇몇 유명한 사람들을 거쳐 강력한 신화가 되었다. 그들은 백자 달항아리를 만들었던 18세기 사람들이 아니라 20세기 사람들이었다. 다시말하면 20세기의 미감으로 평가한 달항아리였다. 한 사람은 그림으로, 또 한사람은 글로 달항아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김환기와 최순우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림과 글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달항아리에서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이야기했다

  일단 신화로 자리잡히면 신화는 끊임없 강회되어 확고한 아우라를 얻는다수많은 사람들이 달항아리 신화 대열에 동참했고 이런 흐름을 타고 여러 해 전 문화재청에서는 달항아리 콘테스트를 열어 몇몇 작품을 보물로 지정했다.

  나 역시 달항아리를 처음 본 날을 잊지 못한다. 연구실에서 달항아리를 직접 보았을 때 그 크기가 압도적이었다. 그동안 많은 백자들을 봤던 터라 그 충격이 더했다. 그리고 뽀얗고 은은한 하얀색이 따뜻했다. 흰색 가운데 차가운 흰색이 있는데, 그런 색은 사람들과 거리감을 만든다. 달항아리를 잡고 빙빙 돌리며 여러 면을 살펴보았는데 하나도 같은 면이 없었다. 변화무쌍하다. 대개 작은 백자 항아리들은 좌우균형이 잘 맞았는데 달항아리는 달랐다. 이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데 찌그러졌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불량품"같다고 느끼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절대불변하는 미감은 없으며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신화화된 작품일수록 규정된 권위에서 벗어나 내 감정이 솔직해졌을 때 오히려 작품이 살아난다고 믿는다. "무엇을 봐야 하는가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성래 | 작성시간 17.09.19 저는 개인적으로 오주석 선생님의 해석을 좋아합니다. " 조선에서는 사치를 삼가고 목가구며 그릇이며 무엇이듯 가능한 조촐하게 만들고 검소하게 생활한다는 정신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첫째가는 국시였습니다. 선비들이 도공들의 도자기를 받아들고, 왜 섬세하고 화려하게 만들지 않고 이렇게 어수룩하게 만들어왔냐고 화를 내며 내던져 버렸다면 우리는 아마 중국이나 일본 자기처럼 장식이 많은 '야한' 도자기를 생산했겠지요. 하지만 도자기는 실용기물일뿐입니다. 백자 같은 것은 실용 기물이었기때문에 사용에 불편함만 없고 넉넉한 아름다움이 있으면 그래, 애썼다 하고 선비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 작성자조성래 | 작성시간 17.09.19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나는 아주 소소한 것까지 기록하는 꼼꼼함에 대비되어 화려함 없이(마이센, 청화백자, 아라타자기와 구별되는) 무심한 달항아리가 저도 볼 때마다 마음에 듭니다.
  • 작성자박찬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9.19 "야한 도자기"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당시 백자 항아리들 가운데 용량이 큰 위아래로 길쭉한 항아리도 있는데(이런 항아리들은 그런대로 반듯합니다) 달항아리처럼 옆으로 넓게 만들어야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넓고 크게 만들다 보니 찌그러지는 걸 막기 위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 붙이는 방법을 택했고 구울 때 그 부분을 중심으로 일그러졌습니다. 현재로는 젖갈이나 게장 같은 음식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음식의 특성과 그릇의 생김새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구를 기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