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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세요]]인드리야와 아야따나의 같은점과 다른점

작성자후박나무|작성시간07.05.23|조회수413 목록 댓글 68

작년에 각묵스님과 이글에 대한 댓글로 한동안 대화를 이어나간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12연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육입의 해석이 달랐다는 것을 확인했고 삼세양중 인과론을 뒷받침하는 경전들을 보면서 삼세양중인과론으로 12연기를 설명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육입과 육근은 같은 것이지만 용도,사용하는 의도가 다르다는  내용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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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드리야(근, 기능)와 아야따나(처, 장소) 와 다뚜(계, 요소) 란 무엇인가?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

 

“ 안의비설신의의 여섯 가지는 어떤 문맥에서는 인드리야(근, 기능)라는 술어로 나타나고 어떤 문맥에서는 아야따나(처, 장소)라는 술어로도 나타나고 어떤 문맥에서는 다뚜(계, 요소)라는 술어로도 나타납니다. 인드리야와 아야따나와 다뚜는 다른 문맥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마노)의 여섯 가지에만 국한하여 보면 이 셋이 지칭하는 것은 꼭 같습니다. 

[indriya]

인드리야를 중국에서는 근으로 옮겼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기능이라 옮깁니다. 눈에는 형상을 보는 눈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기능과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보는 기능은 귀 코 혀 몸 등에는 절대로 없는 눈만의 고유한 기능이고 형상은 반드시 이러한 눈을 통해서만 인지가 됩니다. 그래서 눈은 형상이라는 대상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진 지배자(인드라)입니다. 지배자라는 의미를 살려서 인드리야(지배하는 것, 고유한 능력, 고유한 기능)라는 술어를 사용한다고 주석서들은 한결같이 설명합니다.

[ayatana] 

 그리고 눈이 보는 작용을 할 때 보는 작용과 관계된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눈을 장소로 하여 일어납니다. 그래서 눈은 장소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눈은 마음(알음알이, 식)과 마음부수들이 대상을 즉 형상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눈을 눈의 장소(짝쿠 아야따나)라 부릅니다.

[datu]

그리고 눈은 형상을 본다는 고유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을 강조할 때는 눈의 요소(짝쿠 다뚜)라고 부릅니다.

[dvara]

그리고 눈은 마음과 마음부수들이 대상을 만나는 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눈을 눈의 문(짝쿠 드와라)이라고 합니다.


안근(인드리야)은 안처(아야따나)이고 동시에 안계(다뚜)가 되고 ... 의근은 의처이고 의계입니다. 그러면 왜 같은 것을 두고 다른 명칭을 사용하느냐?  그 작용이나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홍길동이라는 사람을 상황이나 역할이나 작용 등에 따라서 아버지라고도 부르고 홍과장이라고도 부르고 남편이라고도 부르고 학부형이라고도 부르고 한국사람이라고도 부르는 등과 같습니다. 이처럼 같은 것을 그 역할이나 작용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는 것이지 눈의 기능이 따로 있고 눈의 장소가 따로 있고 눈의 요소가 따로 있고 눈의 문이 따로 있고 눈의 감성이 따로 있는 것이 절대로 결코 아닙니다.”


"저도 14-5년전에 빠알리를 처음 배워 우쭐 댈 때 이런 소리를 많이 하고 다닌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금강경 역해에서도 아야따나를 인드리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핵심이라고 떠들었는데 참 부끄럽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참 진땀이 납니다. 아직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버젓이 책으로나 말로나 글로 하고 다니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합니다."

 

* 이중표교수님의 주장을 반박하는 다른 증거는 비단금님이 지적한 것처럼 아래와 같이 2개의 한문경전에서 육입이 [허망한마음]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中阿含經卷第五十八  法樂比丘尼經]

有幾因幾緣從無想定起。尊者大拘絺羅 答曰。有三因三緣從無想定起。云何爲三。一者念一切想。二者不念無想界。 三者因此身因六處緣命根。是謂三因三緣。從無想定起。


[中阿含晡利多品 大拘絺羅經 ]

比丘從滅盡定起。作如是念。我從滅盡定起耶。法樂比丘尼答曰。比丘從滅盡定起時。不作是念。我從滅盡定起。然因此身及六處緣命根。是故從定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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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후박나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5.31 불교 교리를 깨는 것이아니라 잘못생각하고 있는(보는놈이 있다등등)관념을 부수는 것입니다.( 귀류논증에의한 파사현정)...그리고 끝에서는 맞는 불교교리는 깨는 것이 아니라 끌어 안습니다.(진제=속제).
  • 작성자후박나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5.30 [ 안근(인드리야)은 눈의 기능, 眼處(아야따나)는 識이 일어나는 장소] 라는 이해에 저도 동의 합니다. 의처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노(의처)는 오문전향과 의문전향 모두에 작용하기 때문에 [의근은 6경 모두를 활동 영역으로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것이고 [의를 내입처라 하는 색이 아닌 심, 의, 식이다.]라는 말도 별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로써 인드리야와 아야따나에 대한 정리가 잘 된듯합니다.이곳에 토론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토론은 참좋은것인데 내용에 대한 치열한 토론은 사라지고 반대 의견을 펴는 상대방에 대한 반감이 더욱 강화되는 것 같아 보기가 안좋습니다.
  • 작성자후박나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5.31 그런데도 흔들림없이 대화에 임하는 비단금님의 자세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중표 교수님의 문제는 육입만이 아니라 멸진정에 대한이해나 구차제정에 12연기,8정도를 대입해서 설명하는 것등에서도 많은 문제를 보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아함에 관한한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인데 ... 이것은 이교수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학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 열심히정진 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노랑 | 작성시간 07.06.02 님께서 인용을 해주신 두경의 인용문제점, 경들의 이름이 뒤 바뀐 점, 또 자세히 근거를 설명해주신 분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 작성자비단금 | 작성시간 07.05.31 제가 심, 의, 식을 언급한 것은 부파불교의 6식설이나 유식의 8식설이나 출발점은 같으며, 유식에선 심과 의에 대해 자세히 이론을 세워 풀어 간 것이구나 하는 저의 견해를 밝히고 싶었던 것이고, 의처와 심의식의 [의] 도 빨리어에서는 다른 단어를 같은 한문 意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아함에서 인용한 경들에서 의근의 활동영역으로 6경을 말하지만 대부분의 아함부경전에서는 법경만을 말하고 있음도 부언하고 싶군요. 이어질 후박나무님과 이곳 카페회원님들과의 토론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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